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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 May 31. 2024

1.3 석사과정안 한국/중국/인도/그 외 그룹들의 차이

이미 인도 친구들 중에는 잡페어에서 인턴오퍼를 받는 친구들이 나오기 시작했어. 인텔 딜로이트컨설팅 등등..


내가 다니던 산업공학 석사과정은 대략 10%의 미국인, 15%의 남미+유럽, 20% 한국, 20% 중국+대만, 35% 인도 출신이었던 거 같아.


인도친구들의 특징은 명확했어. 박사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석사 2년도 대부분 장학금을 어떻게 해서든 구했어. 학점 잘 받고 하는 거에도 거의 관심 없고 무조건 구직에 매달렸지.


한국인들은 대부분 박사가 목표였어 석사는 자비로 공부하고 그때 교수들 눈에 들어서 박사 때 펀딩을 잡는 게 일반적인 루트였지 그래서 모두들 석사과정에도 공부를 열심히 했어 교수들 눈에 들려고.


중국이랑 대만은 한국과 비슷했어. 2000년도 초반만 해도 중국인 대학원 유학생들은 모두 헝그리 했고 똑똑한 친구들이 많았어.


미국+유럽+남미 친구들은 반반. 공부에 뜻있는 친구들은 박사준비하고 다른 친구들은 취업준비.. 하지만 가장 열심히 학창생활을 즐기는 그룹이었지.


나는 모든 그룹들하고 어울렸어. 기숙사를 통해 인도친구들하고 친해졌고 심지어 여름방학 때 인도 친구들은 다른 도시로 인턴을 떠날 때 나 렌트비 아끼라고 그들의 방을 쓰라고 나한테 주기도 했어 너무 고맙지. 그때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거든 1년 학비 생활비는 다 썼고. 다음학기 등록금이 없어서 결국 10%가 넘는 학자금 생활비 론을 PEFCU라는 대학신용조합을 통해서 빌렸어. 빨리 학비를 해결해야 했어 나는.


고맙게도 인도 친구들이 하루는 기계공학 Technology부서에 학부생 Lab수업 TA가 날 거라고 나한테 알려줬어 현재 TA가 인도사람인데 이번에 취업해서 졸업할 거라고. 그 말 듣고 나는 그 부서사무실에 레쥬메를 놓고 왔고 결국은 TA자리를 잡았어. 작지만 한 달에 $900불인가 생활비가 나오고 등록금과 보험이 포함된 조건이었어.


펀딩이 해결되고 나니 교수랑 연구프로젝트 잡기도 쉬웠어. 교수가 내 펀딩을 안 줘도 되니 난 무급으로 도와줄 수 있는 거지. 그래서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Veteran Affair병원 (한국으로 치면 재향군인회병원?) 프로젝트에도 들어갈 수 있었지.


석사는 보통 학점석사(30학점인가?) 학점만으로 졸업하는 석사랑 논문석사 (20학점인 가? 그리고 논문심사) 두 가지 루트가 있었어. 박사를 위해서는 논문석사를 해야 해. 난 어차피 취업도 안됐고 첫 1년에 거의 20학점을 다 들은 거 같아. 그리고 연구프로젝트 크레디트로 풀타임은 유지하고 일주일에 몇 시간 안 되는 Lab TA 하며 돈 벌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맘대로 쓸 수 있었어. 돈 받는 리서치가 아니니 누구도 나한테 푸쉬가 없고 편했어. 이때 정말 인도친구들 그리고 미국+유럽+남미친구들하고 많이 놀았어. 매주 파티에 가고 같이 운동하고 스키장 가고.. 영어는 안되지만 모든 모임에 절대 빠지지 않았어..


영어로 인한 해프닝도 많은데 하루는 내가 피크닉을 제안했어. 나랑 여자친구가 갈비를 준비하고 에반에게는 전화해서 아이스박스를 가져오라고 하고 크리스한테는 일회용 접시를 가져오라 했어. 에반은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오라는 말에 자꾸 전기이야기를 하는 거야 이넘이 왜 이러지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안 가지고 왔어. 왜냐면 미국에선 아이스박스를 Cooler라고 불러 내가 XBOX를 가져오라는지 알았데. 컥

크리스는 집그릇을 가져왔어. 내가 인스턴트플레이트를 가져와 했는데 (이건 Plastic plates라고 해야지) Eastern plate 즉 동양그릇을 가져오라는가 했데. 자기가 아시안이면서 서양애한테 아시안그릇이냐니. ㅋㅋ

아무튼 한참 웃고 넘긴 해프닝이지만 내 영어의 수준을 알려주는 단편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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