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재점화인가?
싸우고 사랑하고, 또 싸우고 사랑하고
사실 그 빌어먹게 묘한 단어인 사랑 같은 것 따위를 붙이고 싶진 않지만
원한다면 언제든 소매를 걷은 채 싸울 준비를 또 하고는
빌어먹을 애증의 관계가 몇 년을 이어지면,
상황은 늪지대처럼 변화하여 내 두 발은
꼼짝도 못 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진정한 용이 되겠다고 다짐했으나 결국 뱀 새끼에 불과한 상태로의 종결이 예상되는 2024년.
감히 ‘이변’이라 불러도 될 법한, 우승후보로 나선 전반기 대회의 충격적인 8강 탈락.
체지방을 없애고 끊임없이 근육을 단련하더라도 100%로 돌아오지 않는 몸상태.
서울시 대학 축구 리그에서 차분히 쌓아나가던 승점 릴레이의 단절.
모호한 임계점을 돌파한 것처럼 느껴지는 양쪽 무릎의 연골이 마르고 닳도록.
드리블은 어땠고 슛은 어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를 포함하여.
5월은 푸르구나 노래를 흥얼거려도 부족할 그 계절의 따뜻함 속에서
시퍼런 멍이 든 것만 같은 몸과 정신은 도저히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브라운스톤의 뒷골목에서 메마른 모가지를 부여잡고 담배를 피워대며 상민에게 다시는 축구를 하지 않겠노라 너무나 쉽게 말을 뱉었고, 다음날 다시 주어 담곤 하였다.
2018년 송도에서 2024년까지, 팀의 중심이었던 형님과 연남동 길거리에서 새벽까지 싸웠던 봄이었다. 2019년 신촌부터 든든함에 기대며 따르곤 했던 큰 형님이 다시 함께 밭을 뛰자고 ‘부탁’을 하셨음에도, 결과적으로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끝도 없이 무너지던 상황 속에서 잔인한 공놀이는 이제 남의 일이 되었으니 남은 건 술과 책뿐인가? 하던 찰나, 갑작스러운 강서구청 부근으로의 콜이 전달되었고 그렇게 버스를 탔다.
‘왜 나인가?’ ‘왜 지금인가?’ 하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뇌를 두드렸다.
그렇게나 내가 소리를 쳐대며 나에게 팀을 맡기라 했을 때 역겨운 ‘순혈’을 핑계로 고개를 돌린 듯한 형들이 떠올랐다. 낭만이 어쩌고 현실이 어쩌고 눈앞의 소주병은 쉴 새 없이 비워대는 주제에 자신들 마음속에 작은 불씨 남은 것을 애써 모른 척한 채 털어대는 아가리(당시에는 아가리가 분명하다)들이 떠올랐다. 고통뿐이었던 2023년의 나와 대회들이 떠올랐다. 초과학기를 포함한 현재의 상황이 떠올랐다. 실력이 부족하거나 혹은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뭣도 모를 동생들이 떠올랐다. 자신들의 불리한 상황을 목도한 뒤로 허겁지겁 손 내미는 비열함이 떠올랐다.
부탁 속 진심을 느꼈다. 끊임없이 (너희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팀을 붙잡고 살리려고 한 과거의, 암묵적 외부인으로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사과하고 또 어긋남을 한탄하던 그들의 진심을 느꼈다. 의지할 기둥을 필요로 하는 동생들의 마음을 느꼈고,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을 다신 축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지랄 좀 적당히 해라”라고 말하는 친구들의 어처구니없는 믿음 또한 느꼈다. 강서구 어느 골목길의 고깃집에서 마주 앉아 나를 쳐다보시는 형님의 사랑을 느꼈고, 화백실에서 개고생 할 것이 분명함에도 “너가 뛰면 나도 뛰겠다”며 다른 팀의 제의까지 뿌리친 친구의 마음도 느꼈다.
수십 명이 저마다 가질 법한 나의 이미지도 느꼈다. 내 과거와 노력을 모르고 현재만을 보는 이들이지 않을까. 추측상 빼어난 실력과 도무지 찾을 수 없는 팀에 대한 로열티. 수많은 팀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 철새. 뱀. 그 외의 여러 키워드들. 요새 공놀이 러버들의 말로는 ‘강팀충’이라고도 하는 것 같다. 서울-고양-일산을 돌아다니는 방랑자였고, 내로라하는 팀에서 큰 스케일의 게임을 매주 치르는 사람이기도 하며, 엔트리지에 내 이름이 쓰이지 않은 지는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단한 연을 이은 채 매일 찾아오는 서포터. 긍정이든 부정이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혹은 듣지 못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시 온 현재의 관점에서는 돌아온 탕아라 할 수 있겠다.
상민에게 물었고 답을 들었다. ‘완장’은 인생에서 쉽게 얻기 힘든 타이틀이며, 단순한 부여나 인계를 넘어 수십 명의 내외적인 지지가 필요한 것이다. 나이를 먹은 채 얻는 완장은 신체 능력의 지지가 부재할 것이며, 완력으로 얻는 완장은 구성원들의 합일이 불가하다. 완장을 넘어, 몇 년에서 몇십 년의 인생을 살면서 쌓아온 나의 아이디어를 이 모두에게 전달하고 구현하는 것은 삶에 둘도 없을 경험이다. 지금 이 순간만이 유일한 가능의 세계다. 타이밍, 때, 저열함, 아쉬움 등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기회임을 부정할 수 없다. 모두의 신뢰를 기반으로, 나라는 개인의 철학을 현실에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열매다.
독이 든 성배인가? 독과 성배 중 무엇이 더 큰가? 독인 것 같다.
무수한 선수들이 커리어의 말미에 친정팀으로 돌아가는 낭만이란 것은, 오랜 시간 이어지며, 결실과 별개로 기억에 똬리를 트는 듯하다. 위의 모든 기억들을 차치해 두고서라도, 20대의 시작과 끝이 맞물리는 수미상관이다. 독이 묻어있더라도 그 매력을 뿌리치기 힘든데, 아 시 - 하고 욕이 나온다.
고깃집을 나서며 정상회담마냥 형님과 웃음 가득 큰 악수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6월은 끝이 났고
7월과 8월의 한여름, 어느 때처럼 많은 술을 마시고 많은 담배 연기를 마셨으며
실없는 얘기로 골목을 돌아다니는 연희동 구보의 생활을 이어나갔다.
눈으로 엿보기만 해도 근육량은 많이 늘었고, 폭염 속에서만 체중은 약 7kg를 감량했다.
또 싸우고 또 싸우며 보낼 11월이 왔다.
‘애’는 들어갈 수 있겠는데, 나는 사랑이란 단어를 안 좋아하니까 쓰지 않겠다.
이 집단에 머물렀거나, 현재 머무르거나, 혹은 잠시나마 거쳐간 이들까지 어림잡아 100명을 생각하며
애증의 관계를 마무리하고 싶다.
11월 30일, 신촌 어느 골목에서 시뻘게진 얼굴을 할 남정네 수십 명이
겨울을 맞이하는 이 달에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