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축꾼

선택과 운명과 운

어디로 구를지 모를

by 고공비행

5분은 참으로 긴 시간이다. 청춘들에게 있어서 출석-지각-결석의 경계를 가르는 선이며, 호드리구가 시티를 상대로 엎어치기를 할 수도 있는 기반이기도 하다.


마치 우리를 잡스런 녀석들로 치부한 채 불나방처럼 달려오던 그들의 10분에 전혀 굴복할 이유가 없었다. 그 시간을 포함하여 약 45분 간 우리는 시종일관 상대를 두드렸고 마음속에 ‘전진 앞으로’의 한 마디만을 품었다. 말 그대로 두드린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전혀 열지 못했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경기 전 동료들에게 타임별 플랜을 설명했다. 5분은커녕 24/7 가리지 않고 MBTI를 따지는 청춘들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극단적 HMH(하면 함) 주의자로 스스로를 인지했으나 거대한 책임을 지닌 상황에서는 계획이 필요했다. 모두의 납득이라는 목적을 지닌 채로.


그 계획을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나름 짧지 않은 연습 기간과 팀 분석 과정을 거치면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받들어 스스로에 대한 파악과 객관화를 충분히 해냈다는 믿음의 선행.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니, 기본적으로 우리는 상대를 극강의 팀으로 인식했고, 가능성의 측면에서 패배가 더 큰 비율을 지닌다고 상정. 킥오프를 시작으로, 경기 종료 휘슬일 불릴 때까지 약 6-7단계로 세분화했던 것 같다. 그 과정을 거친 최종 국면에서 마땅한 선택할 것이며, 그 선택의 주체인 나로서는 책임을 지고 그 순간에 맞는 ‘직관’을 발휘하겠다 말하였다.


그 마지막 페이즈인 5분이 찾아왔고, 내게는 선택이 필요했다. 남은 5분 동안 최선을 다하여 하나의 득점을 만들어낼 것인지. 머리로는 전략적 패배(패배가 곧 탈락으로 이어지는 경기가 아니었다.) 내지는 안정의 추구를 외쳤으나 가슴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략적 선택의 향을 머금은 채로 그동안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동료들에게 잠시라도 시간을 부여하며 운명에 몸을 맡기는 경우의 수 또한 존재했다. 그렇게 몸을 맡겼다.




토너먼트라는 케이스의 특성상 기본적으로 시간 부여, 기회 제공이라는 말과 친하지 못하다는 점은 자명하다. 그러나 탈락이라는 경우가 배제되는 순간, 그 친하지 못한 녀석들과 잠시 조우하게 된다. 결과에 따라 그 어느 관문에 진입하더라도 최선의 수를 계산하고 최선의 대진표를 짰다고 다짐하였으니, 패배의 부담은 거의 없었다. 좌, 우의 갈림길 중 어디로 향하더라도, 쉬운 승리의 보장은 없으나 기필코 꺾어야만 의미를 지니는 상대들이 줄을 이었기에. 난 로마의 컨퍼런스 초대 우승을 폄하하는 이들과 단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패배를 너무나도 싫어하는 마음이, 자존심이 있었다. 더 따지자면 단순한 한 경기의 패배가 가져올 개인적 감정 같은 것보다는 단 5분일지라도 일종의 포기를 선언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내 선택이 모두의 선택이 된다는 것이 그러하였다. 향후 어떤 상황이 펼쳐지고 어떤 상대를 만난다 할지라도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 더 나은 대진을 꿈꾸며 계산적 행위를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 지금껏 살아오며 끊임없이 성찰하고 또 거부하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문제.




그 5분. 대단하면서도 뭣도 아닌 5분. 충분히 이길 수 있음에도 향후의 대진표를 믿고 운명에 승패를 맡기는 행위. 단순한 시각에선 스포츠맨십의 부분적 훼손. 심하게 말하자면, 누군가의 입장에선 가비지 타임. 선택이란 원자로 구성된 거대한 삶의 연속체 속에서도 분명히 커다란 선택들이 눈에 띌 것인데,

그 선택의 첫 단추를 이 시간에 꿰었다.


결국 대규모 교체를 선언했다. 향후 피 말리는 매 경기를 치르면서 경기 시간을 충분히 부여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동료들을 투입했다. 포지션은 엉망이었다. 해당 경기의 엔트리 참여자는 16명이었으나 공격 3, 미드 3, 수비 10이라는 기형적 스쿼드의 문제로 인하여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동시간에 다수의 교체를 한다는 점에서 분위기나 템포의 의도치 못할 큰 변화 또한 일어날 가능성이 컸으나 감안하기로 했다. 모든 상황을 고려했다. 이기는 것과 지는 것 모두 운명에 따르기로 다짐했다. 평생 내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계산적 선택을 하기로 다짐했다. 이 순간 나는 개인이 아니라 한 팀의 대표이자 모든 책임을 가지고 있었고, 나만의 행복이 아닌 모두의 기쁨을 위해 이 레이스에 참여했기 때문이라. 일종의 빅 픽처를 통해서, 어쩌면 삶에 다시없을지도 모를 대학 생활의 추억과 우승이란 맛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규모와 상관없이, 팀의 첫 전단위 공식 대회 우승 커리어를 이룩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운명은 그 폭풍 같던 5분 동안 그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승부차기라는, 축구라는 결투가 지닌 매혹적이면서도 너무나도 잔인한 피날레. 마지막 5분, 경기의 분위기가 급변한 것을 느낀 상대 - 체육계열이 공격을 많이 시도했던 것 같다. 결국 핑퐁의 시간을 거쳐 승부차기로 갔다. 최소한의 슛, 킥을 할 수 있다고 믿은 5명을 마지막에 배치했다. 5인에서 끝내겠다는 다짐.


내 첫 착오였다. 그 멤버들 중 1인이 실축을 하였다. 남은 사람들을 솔직히 믿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이전에 한 차례 페널티 킥을 선방하였고, 발목의 상태가 좋지 않은 골키퍼에게 6번째 키커를 맡겼다. 결과는 패배로 이어졌다. 그것이 축구다. 큰 틀에서는 이 경기의 흐름과 결과 또한 계획에 있었고, 99%의 과정 또한 충분히 아름다웠기에 더욱 계획에 부합한다고 느꼈다. 단지 아쉬운 점은 승부차기였던 것인데, 음. 완벽한 계획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 1%의 과정이 99%의 과정을 훼손하거나 결과를 뒤바꾸긴 충분하다. 그것이 축구다.


첫 실축의 1인을 5인 중 한 사람으로서 신뢰한 것은 내 책임이다. 골키퍼에게 6번째 순서를 맡긴 것도 내 책임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기형적 스쿼드에 기인한 키커의 부재 속에서, 일정 시간의 플레이 타임 부여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함과 동시에 승부차기의 결과가 어떻든 마음 편히 수용하겠다는 생각은 굳건했고 틀리지 않았다. 단지 그 과정에서, 모두가 납득하고 인정하며 결과를 얼른 잊었으나, 50분의 경기 시간이 아닌 승부차기 자체만을 놓고 보았을 때의 문제다. 그 짧으면서도 긴 승부차기를 통해 골키퍼를 맡은 동료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고,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경기 종료 후 다 나의 잘못이니 마음을 비우라고 말했다.


탈락의 무대에 서지 않았다. 단지 갈림길을 눈앞에 둔 채로 어려움과 쉬움, 좌와 우의 길 중 어디로 향할 것인지 그리고 그 향하고자 하는 마음이 온전히 우리의 의지인지의 문제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순수한 자의를 넘어서 운명, 불운 등의 요소가 개입하였으나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는 큰 그림에 기반할 때에 큰 문제를 직면하지는 않았다. 어빌리티와 별개로 리더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팀의 사기는 여전했다.


단지 내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만이 남았는데, 그것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가 돌아보고 또 돌아볼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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