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G를 달성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지난해의 시작부터 끼익-, 뚜둑- 소리가 나는 무릎은 환청이 아니라 굿 모닝 알람 소리로 탈바꿈했다. 일상의 동행자로 통증은 자리하였다. 나아질 것이란 근거 없는 믿음은 1년 동안 이어졌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 중 찾은 운동 중에 (선배의 청첩장 모임 1단계였다) 또다시 파열된 우측 발목을 볼 때엔 웃음만이 뒤를 이었다.
자포자기의 끝은 필경 파멸일 터이다! 기왕 삶이 이렇게 바닥으로 내려 꽂힌 김에 몸무게도 더 키우고(덩치를 키우자는 뜻이다), 건강도 한 번 제치자는 굿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어디까지 스스로가 망가질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나는 일절 들어본 적도 없는 지역 핫플 맛집에서의 런치 타임을 회사 사람들과 갖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 점심마다 약 3~4 공기의 밥을 위장에 침투시켰고, 숟가락은 가투소에 혓바닥은 피를로였으나 아, 멀고도 먼 그 땅은 마치 신기루처럼 눈앞에 아른거릴 뿐 도저히 다가오지를 않았다. 그렇게 2024년의 포문을 연 자기 파괴적 삼시세끼 라이프는 약 94KG에서 강제 종료가 되었다.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만 종료에 있어 나름 세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임한, 회기 인근의 2024년 첫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다 보니 마음의 불씨가 온전히 꺼지질 않았다. 3일간의 연이은 일정이었고 나는 후반의 이틀만을 참가했는데, 서울 곳곳의 내로라하는 20대들이 모인 이 시간은 참으로 아름다운 강행군이었다… 다시금 정상으로 가는 길에 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의 축제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두 번째로는 비슷한 시기에 다른 팀에서 참가한 작은 대회에서 비록 전패 탈락을 하였으나, 뒤뚱거리면서 곧잘 퍼포먼스를 보이는 스스로가 stay humble을 해도 꽤나 재밌었단 점이 있었다. 서초와 강남의 레벨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체감하며 스스로의 하방이 꽤나 안정적으로 높다는 점을 깨닫기도 하였는데, 특히 한국 아마추어의 성지와 같은 효창이 그 시절의 향기와 흥분을 다시 밀어 넣어줘서인 것 같다. 이 시기 자주 가던 짬뽕집의 런치 볶음밥 곱빼기보다도 더 달았다.
마지막으로는 복학과 동시에 요리조리 공부하며 꽤나 치열함을 달고 사는 학생들의 무리에 합류한다는 선택이 있는데, 자기 파괴적 삼시 세 끼는 필연적이고 과도한 음주의 동반이 마땅하나 아무래도 나 또한 예의범절을 잘 아는 사람인지라 그 필연성을 때로는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종료 이후에는 당연히 어느 방향일진 몰라도 재부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 큰 뜻을 품고 뭔가를 해내겠다는 의지에는 못 미칠 라이트급 마인드를 지닌 채 3월을 맞이하였다. 경쟁, 경쟁, 경쟁. 꽤 지쳐있던 심신이 이러한 상태를 지속하기엔 어려울 듯하여 마지못해 선택한 방법은 ‘그냥 하자’와 ‘따라 하자’의 마음먹기가 있었고, ‘양치기’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좋게 판단했다.
수업, 운동, 회의, 수업, 운동, 술, 수업, 운동, 술, 주말, 술, 운동의 기괴한 라이프스타일은 현시점에서는 저 두 마음과 ‘양치기’라는 방식의 결합체로 보이는데, 이게 꽤 효과가 탁월했는지 순식간에 10KG를 감량하게 되었다. 여기서 참고로 술은 뭔지에 대한 의문을 굳이 해소시켜 주자면, 당신들이 쏘카를 반납하기 전에 기름을 채우듯 내 하루를 밤잠에 반납하기 전에 연료를 주입하는 것과 동일하다. 물론 벌었으면 써야 한다는 생각도 한몫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상 속의 반복되는 운동(이제 술 얘기는 하지 않겠다)은 상승의 길에 진입하진 못하더라도 몸의 주인인 나의 하락 또한 방지해 주었다. 거시적인 상태 유지로 느꼈는데, 이것의 장점은 얼핏 권태기로 봐도 무방할 나와 축구의 관계를 유지해 주는 마지막 손아귀로 작용하기도 하고 일상의 권태 또한 탈피해 주는 최소한의 바깥 액션이었다는 사실이다.
관성적인 삶, 운동의 순환은 당연스럽게도 계절과 맞물리기 마련인데, 알 놈은 알 만한 총장배의 계절은 결국 신촌에 뿌리를 내린 독수리 사내들의 마음을 흔들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그렇게 순환 기반의 Spring Semester이 오픈되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뜨겁고 어여쁜 시기로 기억되는데 이를 화양연화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당연히 각자의 바쁜 일상을 속에 품으면서도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밤에 모여 시간을 보내고 서로의 발전을 논하는 것도 좋았고 개인 전용 출석판을 만들어주겠다 하시던 운동장 관리자 선생님도 감사했는데, 아쉬운 점은 언제나 계획이 결과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뒤의 구체적인 결과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기에 굳이 주렁주렁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음, 잘 모르겠다. 별 것도 아닌 스코어 용지 한 장은 어찌나 인간의 마음도 건드는지, 계절은 허무하게 조기 종료를 하였다.
그럼에도 이유 모를 약간의 필요성을 감지하기에 시기별 기억 쪼가리들을 억지로 덧붙여보겠다. 헬스에 다시금 손을 뻗었고 체형 개조가 다시 시작되었다. 여름에는 신체 노동도 많이 접했는데, 다른 차원의 공동체들을 다수 접할 수 있어서 꽤 신선했다. 페이는 말할 것도 없고.
타이핑을 치던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을 놓칠 뻔했는데, 잔디를 밟을 때마다 오랜 시간 피부 껍질처럼 착용하던 무릎 보호대를 책상 서랍에 집어처-넣었다는 사실이 있다! 악담 같은 덕담을 주시던 정형외과 선생님도 뵙지 않은지 꽤 되었고, 무엇보다 몇 년 간 자신들 가슴 깊이 눌러 담았던 불꽃과 아이컨택을 다시 행한 친구들의 귀환이라는 사실도. 요 시기 글을 연이어 쓰는 과정에서, 우울로 점철된 썩어빠진 한 해라는 초반의 인식이 점차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데, 음.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나 자신 또한 애써 외면하던 그 썩은 해의 전반전을 다시 직면하고 곱씹는 것이 중요할 터인데, 그 전반전을 요약하자면, 전사의 관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미치광이에 비견될 법한 타오름에 휩싸인 춤을 추진 못했으나, 서부의 인간들이나 게임 캐릭터들처럼 강인하진 못해도 다시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는 보루가 있을 것이다. 걷거나 뛰진 못해도 스스로 서서 보자기를 내지 않고 주먹을 낼 수 있었다는 점은 마지막 위안이다. 다시 일어선다는 사실은 확장에 있어서도 중요한 인간으로서의 태도다.
지난한 권태기는 한 차례 전환하여, 매일의 한탄을 연희동 골목 바닥에 내뱉는 시기가 찾아왔다. 그 이후에는 다시 1편의 글자군집으로 이어졌다. 순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