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마지막주.
멀지 않은 과거에 함께 단어를 끄적이거나 뱉던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들과 유사 상담 모임을 빙자한 커피와 대화의 시간을 진행했습니다. 평생 가늘고 불성실하게 다듬어온 체계 속 투쟁심과 승부욕 등을 아무리 떠들어제끼고 경쟁심과 차별적으로 묘사하고자 해도, 결국 큰 틀에서는 도토리 키재기란 점을 긴 대화를 통해 자각했습니다.
원체 타인의 시선을 덜 의식하는 편이라고 자부했습니다. 나아가 이제는 시선이란 개념 자체를 잊어버린 듯한 상태로 외길 인생을 묵묵히 걸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타인의 시선이란 존재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 무수한 시선들 속에서는 불투명한 적의나 막연한 비호감도 물론 있었을 테고요. 어쩌면 상당히 많은 칼날이 담겨 있을 수도 있겠지요. 허나 그것을 매번 귀로 들었을 때 “아, 진짜?”라고 경상도인 특유의 반응으로 흘러 넘기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더군요. 그러고 보니 최근 젊은 지성인들의 배움을 이어나가는 모임에서 선배와 후배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적이 있습니다. 뒤에서 자신을 험담한 사람이라 얼굴을 맞대고 오해받았을 때에는, 잔잔한 호수와 같은 마음을 유지하기 꽤 힘들었습니다.
아직 멀었나 봅니다.
과거를 돌아보니, 2년 전의 질풍노도와 같은 전역 후 캠퍼스 생활에서 한 단체를 되살리고자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 투쟁을 이어나가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우연한 만남이 술 한 잔으로 바뀌었던 지난주에, 오랜 벗들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그 시절의 어떠한 일화를 앞에 앉은 한 녀석이 제게 전하더군요. 전혀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에 특정하진 않겠습니다만, 당시 한 무리가 저를 험담한 적이 있었답니다. 매우 단편적인 정보와 오해에 기반하였기에, 납득하기는 너무나 쉬운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도 훌륭한 사람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를 의심한다고 저 또한 의심했고, 추후에는 실제로 그러한 마음이 사실이었다며 사과했던 벗들이 당시 강하게 저를 옹호했다는 사실이 꽤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무수한 벗들을, 이 글을 마친 후에 모두 만날 텐데 묘한 부끄러움과 감사함이 갑자기 찾아옵니다. 꽤나 따스한 시선들이 있었고, 그것에 감사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만약 타인의 시선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 혹은 그렇지 않아도 알기 힘든 그 시선들과 거리를 더 벌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시선들이 온통 부정 투성이일 것이라 단정 짓긴 어려운가 봅니다. 이제는 떠나간 위치에 놓인 녀석이지만 과거의 수많은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기에, 긴 밤 동안 함께 그 기억들을 되짚었습니다. 과거의 무수한 결과들이 현재의 사실과 연결되는 것은 자명하니까요.
어지럽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이 또 있다면, 그 무리의 분들은 현재 저를 꽤 좋아하십니다. 아니, 적어도 약간 좋게 생각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보, 오해, 호감 등 모든 자료와 감정은 시간과 필연적으로 맞물리는 것 같습니다. 필연적인 업다운의 형태로 말이죠.
그 사실을 깨닫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하던 중, 강릉 최 씨와 추가적인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이 시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또 어지럽습니다.
아무튼 그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서울을 관통하는 강을 건너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정신없이 술을 먹는 와중에,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짚어주시더군요. 오랜 세월, 제 노력과 땀, 고통을 이해받을 생각이 없었고 애초에 그 평가나 인정도 원하진 않았습니다만, 은연중에 그러한 마음이 드러난 것인지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조용히 스스로를 숨기고 지냈나 봅니다.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 자격이 충분하다 못해 과도하게 넘치는 데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과도하게 낮추는 데에서 발생하는 간극.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하여 당신들이 저를 무한히 언급하고 내세울 터이니, 기꺼이 너 자신을 알리고 내세우며 평생 이 조직에서 기억될 인물로 남으라는 말. 출신에 구애받지 말고, 독보적인 능력과 긴 과정을 직접 보이라는 말씀은 많은 생각을 낳았습니다. 아직도 생각이 잘 멈추지 않고 있고요. 10년이 지났을 때, 거쳐간 인물 중 하나가 될 것인지 혹은 한 시기를 지탱한 사람이 될 것인지의 선택을 요구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치열한 투쟁으로 범벅된 대회 기간의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과거의 결과보다 훨씬 더 중요한 현재의 사실들은 많으니까요.
다시 버스를 타고 연희동으로 돌아왔습니다. 취한 상태로 자신을 부른다며 투덜대는 상민을 만났습니다. 몇 시간 전에 함께 시간을 보내던 이들과도 똑같이 끈끈한 관계를 지닌 사람이었기에, 어떤 대화를 나누었고 감정을 느꼈는지 대화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상당히 취해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거의 격일마다 뵌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익숙한 사장님께서도 그 사실을 친히 언급해 주셨습니다. 그 취기 위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과거만을 소재로 삼진 않았습니다. 우린 결국 내년의 계절을 맞이할 테고, 또 어느 필드로 나아갈지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주를 콸콸 부어 넣은 강행군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다시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하던 찰나, 강 씨의 연락이 왔습니다. 일주일에 2번 이상은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곤 하던 녀석인데, 최근 2-3주는 잘 만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소홀했습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숙취 해소만이 머리에 맴돌아, 강릉 최 씨의 헬스 동행 제안에 “절대 불가능”이란 메시지만을 남긴 채 카페로 향했습니다. 글을 썼고, 책을 읽었습니다. 토를 할 것만 같아, 육개장 컵라면 2개를 먹으러 집으로 잠시 향했습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고 느껴서인지, 강 씨와 합류하여 늘 그렇듯 야식포차로 향했는데요. 지난 며칠간의 이야기들과 최근 대회를 둘러싸고 있었던 여러 일들(사건이라고 봐야 할)에 대한 소회도 풀었습니다. 제일 큰 화두는 아무래도 행사와 불참의 건이었는데, 여기서 이야기할 것은 아닌 듯하여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 봐도 밉지 않은 벗과 먼 과거부터 최근의 일들까지 다양한 시간대들을 살폈다는 점이었습니다. 세세한 내용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어떤 점에서는 둘 모두가 반성을 했고, 누군가는 후회도 했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단 것입니다. 명분과 실리, 개개인이 가질 법한 서운함도 있었습니다. 결국 모든 중심은 대회와 행사였습니다. 빠르게 음악으로 주제를 돌린 채, 즐거움만 가득한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뒤늦게 합류한 기타리스트와 함께 연남동으로 자리를 옮긴 뒤, 헤비메탈 넘치는 맥주의 밤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평일의 마지막, 상민과 또 만나고는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이 강행군의 끝이 보입니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난다면, 이전과는 꽤 다른 시선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무수한 칭찬 혹은 비판이 가득할 수도 있고, 무관심이 유지될 수도 있겠지요. 예상을 하긴 어렵습니다. 과거의 미화도, 재평가도, 오해도, 낙천적인 마음도 모두 온전한 주권을 지니지 않았기에 제 손을 때로는 떠나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제 행위가 단서가 될 것이고, 그 결과로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임은 확실합니다. 이번 주가 그리하였고 지난 약 7년의 시간이 그리하였듯 앞으로도 나를 아는 사람들과 긴 이야기를 써야겠습니다. 이제 토요일을 준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