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축꾼

탈락

그것이 축구다.

by 고공비행


탈락의 고통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얼마든지 밤을 새워 떠들어댈 수는 있으나, 그 말의 뒤에 놓인 한스러움이 있다. 우연이든, 운명이든 그 무언가의 개입이 있었다 할지라도 모든 것을 바친 이에겐 필연적으로 잊지 못할 기억이 된다. 축구는 결과다.


한 달이 넘게 지났으나, 그 고통 범벅의 기억을 되새길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몸이 뜨거워지고 잠은 멀리 달아나곤 하는데 결국에는 연기 가득한 골목길 속에서 밤하늘을 쳐다보고 한숨을 실컷 내쉬고는 한다.


이 영역의 위에서 성공의 조각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기회라도 주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만으로 20대의 중반을 넘은 나이의 나는 곧 대학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중요하다. 기억 또한 중요하다. 완벽한 ‘실패’로 부를 법한, 더러운 기억이라 봐도 무방할 이 조각들을 직면하고 간직해야 마땅하다. 당장의 내가 온전한 대면을 해내지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시도하고 이를 안고 가야만 앞이 있을 것 같아서다. 눈물을 흘리는 디발라에게, 세르비아에서 온 거구의 남성이 “That’s Football.”이라고 담담히 말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온 국민의 손가락질과 전 세계인들의 조롱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던, 정상에서 바닥으로 끌려내려 온 한 남자가 기억난다. 로베르토 바조는 인생에서 지우고 싶을 그 기억을,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마주하고 스스로 입을 열었다.


축구는 결과론이다. 인간사 결과의 가치가 덜한 영역은 거의 없으나, 너무나 직관적이고 원시적인 스포츠로서의 축구는 더욱 그 결과가 돋보인다. 특히 외부인들의 시선에서 경기를 치르기 전후의 과정이 잘 엿보이지 않기에, 결과는 더욱 부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상에 넘쳐흐르는 흔하디 흔한 대학생의 아마추어 축구 대회 일기는 더욱 단순히 요약된다.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단순한 열정을 가지고 허슬을 하였으나 결국 조기에 대회를 마감해 버리는 아쉬운 젊음의 추억. 그 말을 실제로 들었을 때엔 어금니를 꽉 깨물었으나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내 팀은 대회를 일찍 마감하였다.



구체적으로 느낀 어떤 분노나, 실패의 원인에 대한 분석은 당장 생각하지 않을 예정이다. 팀원들에게 전달하진 않겠지만(이미 끝난 대회이고 추후의 기회는 더 이상 없을 듯하다) 나름대로 인지해야 마땅하다고 보는 경기의 보완점 등은 추후 정리를 한 뒤에 나만이 간직할 것이다.


IMG_2743.HEIC 대회 전날의 감각 유지


여전히 지각을 하는 소수의 멤버들이 있었다. 경기 시작 1시간 전, 서류 및 엔트리지 작성을 하는 동시에 멤버들을 집합시켰고 단순한 말로 타일렀던 것 같다. 눈치 빠른 녀석들은 잠자코 듣고 있는데,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친구가 웃음을 보였다. “일찍 온 사람들 얼어 죽는 줄 알았자나~”와 같은 멘트로 분위기를 리드한 것의 잘못된 결과인 것 같은데… 그렇게 정색을 동반한 “웃어?”의 대답이 나왔다.


경기 전 몸을 푸는 과정에서,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았다. 반드시 한 골을 만들고야 말겠다고 포부를 외치는 녀석, 무조건 이긴다고 다짐하는 녀석들. 참 보기 좋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자만심이 되어버렸다.


상대 멤버 중 몇 명이 전날 음주를 한 사실이 알려지고. 몸상태가 완전히 좋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역대 전적으로 단 한 번도 패배를 하지 않은 것을 넘어, 무승부만을 기록해도 기분이 좋지 않은 팀이라는 점. 여러 사실들은 결국 무의식적으로 오만함의 표출로 나아간 듯했다.


경기는 늘 그랬듯 압도하는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두 달 동안 타이트하게 연습한 전방압박, 볼 탈취 후 빠른 전개 및 마무리, 수비 복귀. 나를 중심으로 한 후방 빌드업 등. 물론 마무리는 잘 되지 않았고, 예상치 못한 부상과 쓸데없는 상대와의 기싸움이 있었다.


경기 종료 10분 전(정확히는 약 7분 전), 내가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다음날 예비군 동원을 가는 이유로, 본가행 KTX를 예약했다. 기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경기 종료 10분 전부터 미리 환복 및 카카오택시 호출이 필요했다. 그 10분이 문제의 10분이 되었다.


일상복과 운동화로 갈아입고, 택시를 호출하는 과정에서 속수무책으로 경기를 밀리며 역전을 당해버리는 팀을 보았다. 필터링을 전혀 거치지 않은 순수한 욕설들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고, 경기는 종료되었다.


IMG_2749.HEIC 뜨거움과 결과는 비례하지 않음


택시, KTX.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놓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은 채로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팀원들에게 다가갔다. 분노, 화, 슬픔, 억울함, 고마움, 미안함. 그 모든 울컥한 감정을 삼킨 채 “고생했다” 한 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의 감정을 표출하는 게 뭔가 옳지 않다는 직감 아래에서, 이를 꽉 깨문 채로 이성을 발휘하여 당장의 결과에 따른 멘트를 해야 마땅했다. 아쉬움은 때로는 삭히거나,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당장 팀원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 그 순간에만 표현 가능한 말은 감사함와 미안함의 말 뿐이었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 뒤 다가오는 상대팀 선수들의 박수를 받았다. 사실 이때에는 기분이 당연히 최악의 상황이었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상대팀 주장이 다가와서, 굳이 팔짱을 끼고 있는 내 손을 빼내 맞잡은 채, “고생했어요!”라고 말을 하고 가는 상황은, 분노를 뛰어넘은 살기를 보일 수밖에 없었으나, 결국 난 패배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역대 처음으로 해당 팀에게 패배하였다는 것은, 내 퍼포먼스나 당일의 경기력을 넘어서 결과론적으로 나의 패배이기도 하며, 이는 주장으로서의 책임으론 더욱 그렇다. 결과에 따른 수치고, 모욕이었다. 상대의 진심이나 다른 마음씨는 추측할 수 없겠으나, 이는 결국 패배라는 결과에 수반되는 수치스러움이고, 내가 안고 가야만 한다.


IMG_3126 2.HEIC 훈련소로 다시


그렇게 팀원들을 뒤로한 채, 택시를 탔고 KTX를 탔다. 사나이로서 감히 흘릴 수 없는 게 눈물인데, 그 눈물이 날듯 말 듯 한 이 묘한 상황을 꾹 견디며 창밖의 무수한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귀에 끼워진 에어팟 속엔 그 어떤 가락도 흐르지 않았다. 내가 떠난 뒤 이 경기의 아쉬움과 분노가 팽배했을 그 벤치에서, 대회에 모든 것을 바치고 최선을 다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 사람들 사이의 다툼이 벌어졌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 뭔가 잘못되었다. 그러나 이미 경기는 종료되었다. 휘슬은 불렸고, 패배가 선언되었고. 그렇게 대회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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