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다. 나는 나의 어버이와 등을 졌다. 나는 2012년 11월 30일 새벽, 귀가 도중 머리에 이상을 느껴 길바닥에 나자빠졌고 그렇게 2시간 정도 누워있었다. 대로변이었지만 새벽이라 행인은 없었으리라. 정신은 있었지만, 움직이기엔 벅찬 상태였다. 나자빠졌을 때 나는 자전거를 타던 도중이라 타박상은 느껴졌으나 골절상은 없는 게 다행이었다. 머리의 통증은 여전했다. 동 틀 무렵, 나는 일어나자고 맘 먹었고, 그렇게 10번 정도 맘 먹으니 정말로 일어날 수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집까지 15분 정도 걸어왔다. 머리통이 언제라도 박살이 날 것 같았으나 일단 집에 가 눕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 나는 병원에 갔다. 머리 통증은 경감돼 있었다.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어 큰 무리 없이 병원까지 갈 수 있었다. 검사를 받았다. CT. MRI. 돈이 줄줄 세어나갔다. 같이 병원에 갔던 어머니의 한숨도 세어나왔다. 원인은 아마도 '뇌혈류장애'인 것 같다고 했다. 약을 줄 테니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한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검사를 해봐도 이유를 모르겠네요. 근데 갑자기 쓰려졌다고 하니, 이런 경우엔 뇌혈류장애일 확률이 높아요. 뇌혈류장애는 고치는 방법이 없어요. 꾸준히 관리해야 돼요.'로 이해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두통을 달고 살았기에 비로소 나의 병명을 얻은 것에 조금은 기뻤다. 그저 내가 예민한 종자에 좁쌀 만한 성정을 지녀 두통이 온 것인줄 알고 살았다. 그러나 반대였다. 이유가 결과였고, 결과가 이유였다. 그래, 꾸준히 관리를 하자.
그날 저녁, 나는 짐을 쌌다. 안 그래도 더욱 극심해졌던 아버지의 언어폭력이 그날 비로소 피크를 찍었던 것이었다. '계속 글을 쓸 거면 나가 살아라'라고 수위를 낮춰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때 들었던 아버지의 구체적인 말씀들은, 나가뒈져라, 이 개좆같은 새끼야. 대가리로 안 좋은 게 무슨 글은 쓴다고 지랄을 해대서 대가리에 무리만 생겨서 집에 얼마 있지도 않은 돈을 빼먹는 거냐. 너 같은 개병신을 낳은 게 내 인생 최대의 수치다. 나가라. 집에 돈도 갖다주지 않고,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무슨 염병을 하고 돌아다니는 건지, 대가리에 이상한 병을 달고 와서 개좆같은 지랄을 집구석에 떠넘기냐블라블라.
술만 먹으면 그런 말씀은 그전에도 많이 하셨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최대한 귀를 닫고 아무일도 없다 여기려고 했으나, 아버지의 말씀처럼 개좆같은 나는 그렇게 되질 않았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식칼 한자루를 상상을 하고 했다. 그래도 그 칼은 이내 흐릿해지지고 나는 집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만나 허튼소리나 실실 내뱉으며 마음을 중화시켜왔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그 모든 게 그 전처럼 그저 사는 게 힘들어서 홧김에 내뱉는 본심에 없는 화풀이라 여겨지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그 모든 폭언과 그 내용이 모두 진심이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날은 아버지는 술도 안 마시고 잘도 그런 말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을 낳았고, 자식을 길러놨으니, 이제 나이도 먹었겠다 자식에게 최대한 용돈도 받고 의지하며 편하게 살고 싶었는데 그것을 해결해주지 않는 나에 대한 실망감과 미움이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발현된 것이라 판단했다.
나는 폭발했다.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했던 폭언의 톤앤매너와 유사한 대사를 쏟아내곤 내 옷들을 가방에 구겨넣었다. 그렇게 집을 나왔다. 다신 이 집에 오지 않겠다 다짐했으나, 통장엔 30만원 정도밖에 없었다. 부랴부랴 연락해 혼자 사는 친구 윤인석의 집에 몇 주간 머물렀었다. 뇌혈류장애는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해서 부모님 생각은 안 하려고 노력했으나, 노력할수록 더욱 생각이 났다. 약은 꾸준히 먹자, 당연히 계속 줄었고, 약을 또 구하러 병원에 가야 했지만, 그 돈이 아까워 참았다. 한참 후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문자 메시지를 보냈었다. 단칸방이라도 구할 수 있게 보증금 얼마라도 구해달라며 읍소했으나, 아무 응답도 없었다.
나는 윤인석에게 매번 신세를 지는 게 너무 미안해져서 얼마 후, 인석의 집을 나와 그때 준비하던 공연-<형제의 밤>을 단 몇회라도 상연하기 위해 모였던 형들, 친구들과 사무실을 내는 데 동참했다. 나는 돈이 없었으므로 월세의 얼마 정도를 부담할 테니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로 했다. 매일 밤, 자려고 사무실 소파에 몸을 눕히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그 못난, 그 못된 두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등 너머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돈 없음과 욕설과 무관심이 내 머리로 들어온다. 나는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제일 못난, 가장 못된 인간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니, 등 뒤와 등 위가 무거워진다. 이렇게 죽을 때까지 가야 한다.
by vongm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