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솔이와 3시간 남짓 걸었다.
원래 일하려고 했는데, 취소했다. 걸었다. 나는 일하는 게 싫다.
걷는 건 좋다. 일단은 산책이라고 할까나. 집 근처의 우리가 아는 길로
몸을 던진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는 않는다. 양발은 앞과 뒤로 서로 번갈아 자리한다.
우리는 최대한 안 가본 방향으로 발을 집어넣는다.
그러면 산책이었던 걷기가 모험화 된다.
용인 수지로 이사온 지 3년차. 아직도 안 가본 길이 많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 안에 내가 있고 한솔이가 있다.
우리는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 받으며 모험화 된 산책을 즐긴다.
노래도 부르고 가끔은 간단한 댄스로 구사해본다.
어떤 풍경이 나올지 모르나, 우리는 우리가 안 가본 곳을
제1 선택 사항으로 상정한다. 와봤던 길은 집 근처에 도사리고 있고,
와보지 않았던 길은 집과 멀수록 존재한다.
집으로 올 수 없는 건 서럽지만 집에만 있는 것도 서럽다.
어디에 있든 절반 이상은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가 자처한 순간 순간이다.
이 산책화 된 모험 속에서, 무엇을 보든 소소한 자산이 된다.
굳이 이런 산책화 된 산책을 감행하지
않았으면 아마 죽을 때까지 와볼 일 없을 곳에 우리는 있고,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은 매핑되어 나와 한솔이의 뇌에 남는다. 공동으로 뇌에 저장돼 있으므로
완연한 현실이 된다. 그 순간순간이 값지다.
그러므로 이렇게 걸을 땐 내 인생이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기분이고,
내 현실적인 인생도 대체적으로 값어치가 오르는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 나와 한솔이가 걸었던 그 루트를 돌이켜본다.
해야 할 일은 없다. 의무감에 일하고, 의무감에 글 쓰고, 의무감에 걷지 않기로 하자.
하면 좋을 일만 있다. 그래, 하면 좋은 거니까 하긴 하자. 대신 내일 하자.
내일이라는 모험도 잘 즐겨보자.
by vongm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