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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3 일기

한 가지로 살 수가 없어

210713

한 가지로 살 수가 없어



나의 특질 중에서도 절대로 바뀔 리 없는 것들을

나타내주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성별, 나이, 8살의 나는 몇 학년 몇 반이었는지 등등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나는 여자로 태어났고, 나 또한 나를 여자로 인식하고 있으며

나를 둘러 싼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절대불변의 사실이므로

이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전혀 바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한 이에게 어떤 시기에는 그 누구보다 여성이었다가,

동일한 한 이에게 어떤 시기에는 여자라기보다는 무성(無性)의 친구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가, 다시 세상에 둘도 없는 여자가 되기도 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는 늘 변함없이 여성이지만, 나를 둘러싼 타인의 변화를 내가 감지하는 순간

나는 다른 이를 통하여 여자로도, 때로는 무성으로도, 더 나아가 어떤 동물에게는 엄마나

아빠처럼도 변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나이도 마찬가지다.

나이야말로 절대 다시 어려질 수도, 더 늙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현재 2021년의 인간인 우리는

그저 내가 93년생이면 29살, 84년생이면 38살, 75년생이면 47살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조차 틀린 생각이었다!


‘부모한테 자식은 영원한 애기야~’

이런 류의 말은 당연히 아니다.


만약 내가 언제 태어난 인간인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알 수 없다면?

나는 생김새로 보아 23세 정도인데 신체 나이는 45세, 뇌 나이는 32세라면?

나는 도대체 몇 살의 인간인 것인가.

현대 의학과 과학의 도움으로 치아와 뼈에서 분석된 나이를 토대로

나의 나이를 2n살로 추정했다 해도,

그 ‘추정’이라는 단어에는 얼만큼의 오차 범위가 있는 것일까?

이틀? 한달? 육개월?

그럼 나는 총 몇일을 살아온 인간인 것인가.

나는 몇 살인 것인가.



내가 인식하는 내가 나인 것인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들과 조금씩 바뀌는 것들,

그리고 바뀔 수 있음에도 바뀌기를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지점들에 있는 것들

그 모든 것들이 모여서 나인 것인가

아니면 내가 인식하는 나도, 특정 단어로 지칭되는 나도

외부에서 ‘나’를 ‘나’로 인식하는 그 모든 것들도

어쩌면 그 시기에 ‘나’인 것이고,

7년 하고도 23일 후에 ‘나’는 또 그 단어들 중 몇 개는 빗맞게 되는 그런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아주 어렸을 적 나는 집에서 한별이라 불린 적도 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한솔이라는 이름으로 쭉 살아갔다.

그 두 인간은 한 인간이면서도 다른 두 인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나’라는 한명의 인간이면서

‘나’와 가장 많이 대화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가끔은 정말로 내 내면에 나와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내가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괴상한 생각도 해본다.


나는 누군가에게는 갑이기도, 또 을이기도 병이기도 정이기도 하면서

누군가의 친구이자 누군가의 적.

누군가의 가장 가까운 인연이자 누군가와 평생 마주칠 일도 없는 타인.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한 가지로는 살 수가 없다.

없다!



210713 이한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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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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