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기름이 섞이길 바라는 망상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코 크고 쌍꺼풀 수술하고 집에 돈은 많은 형님께서
애용하시는 한 마디가 있었다.
“우리 소통 좀 해보자.”
사뭇 진지한 표정과 묵직한 음색으로 하시는 말씀이었기에 면전에 두고, 싫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건 어려웠다. 게다가 내용은 얼마나 건설적이란 말인가. 소통 좀 해보자. 소통. 소통은 곧 최고의 미덕으로 통하는 유행어 아니었나. 그 말의 파워는 한창 유행하던 몇 년 전보단 다소 경감된 감도 있지만,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고, 지금까지도 꽤 유효하다. 아직도 소통 강사들은 미디어를 오가며 얼굴을 들이밀며 대중과 소통하며 대중의, 대중에 의한 소통에 무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그 대가로 랜드로버 같은 외제차 7대 정도는 넉근히 보유하고 성 같은 집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소통강사 한 분을 아는데, 그 분의 휘황찬란한 삶을 감안하면, 소통은 금과옥조로 떠받들어져야 하는 만능열쇠 어휘일 수도 있겠다. 아닌 게 아니라 소통하자는데 소통하기 싫다고 하는 건,
전 사실 꽉 막힌 외골수에 나 자신밖에 모르는 지독한 이기주의자이며
어쩌면 타인들과의 관계와 관계와 관계를 파탄낼 수 있는 잠재적 악인입니다,
라고 묵언으로 선언한 것과 흡사한 효과를 줄 수 있다. 그러니 소통하자고 하면, 옙. 물론이지요. 우리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해보아요, 라고 대답하는 게 가장 편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코 크고 쌍꺼풀 수술한 집에 돈 많은 형님과 한 때 그토록 숱하게 소통을 시도해보았던 것이다. 격론을 펼치기도 했고 경청하며 나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여 나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도 해보았다. 그 끈질긴 노력의 결과 우리는,
이제 안 보는 사이가 되었다.
기름과 물처럼 섞일 수 없는 존재들이 양존하는 게 세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 하나의 단합된 과정과 결론을 도출하여 어떠한 결과가 펼쳐지든 이 모든 건 소통의 과정에 기반한 것이니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논리는 기름 섞인 물이나 물 섞인 기름처럼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야기하기도 한다. 소통을 요구하는 사람은 자신이 선을 행하는 거라 굳게 믿고 있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소통을 기피하는 나 같은 사람을 전도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나는 기름이다. 물과는 아무리 노력해도 섞일 수가 없으니 기름인 채로 있고 싶다. 말 몇 마디 교환한 것으로 풀릴 문제라면 그 문제는 문제도 뭣도 아니라 한낱 권태에 젖은 심심병 환자의 어리광에 가까운 것일 테다.
그냥 나 같은 기름이 여기 있고, 당신 같은 물이 거기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내겐 이 정도도 이미 활발한 소통인 것이다. 당신과 내가 다르다는 걸 아는 것. 그래서 기름인 내가 물을 더럽힐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것. 이 이상은 내게 벅찬 과업이니 더는 요구를 하지 마시라. 나는 나 자신과의 소통도 잘 안 되서 쩔쩔 매고 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이렇게 글을 쓰는 게 제일로 맘 편하다. 그러니, 당신이 요구하는 소통의 방법을 내게 강요하지 말아 달라. 나는 당신과 다르게 코도 작고 쌍꺼풀도 없고 집에 돈도 없다. 당신과는 명백히 다르다. 당신은 거기서 당신의 몫을 충분히 해내시라. 나 역시 기름으로서 내게 할당된 몫을 여기서 해내고 싶다. 나는 외골수도 이기주의자도 잠재적 악인도 아니다. 나는 그저 타인보단 나 자신과의 내적 대화를 통한 결과물로 내 나름의 이타를 실현하여 누군가에겐 악하지 않은 걸 전달하면 좋겠으나, 꼭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묵묵히 그저 오늘 하루 즐겁게 살고 싶은 소소한 인간일 뿐이다. 코 크고 쌍꺼풀 수술하고 집에 돈 많은 당신도 그건 마찬가지일 테니, 이해를 바란다.
라고 생각하나 이제 안 보는 사이인 당신에게 굳이 이런 내용의 글을 보내지는 않으련다.
끝으로 내가 아는 랜드로버 같은 외제차 7대 보유한 국민 소통강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그 소통강사님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한 아카데미에서 나는 ‘스토리텔링 어쩌고 저쩌고 강사’를 한 적이 있다. 알바였다. 돈 벌기 위해 한 거다. 그 아카데미엔 그 소통강사님 포함 총 세 분이 정규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분들은 수강생들에게 늘 소통을 역설하셨다. 자기들끼리도 늘 소통, 소통, 소통, 강조, 또 강조하더라. 그리고 정확히 1년 6개월 안에 서로를 헐뜯으며 소통 아카데미가 사라진 걸 보았다. 자기들끼리의 그 뒷담화들과 불통의 결과들을 모두 보았다. 소통은 개뿔. 이건 아마 성형외과 의사가 자기 눈 쌍수 못 하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 그래서인지 그가 TV에 나와 소통 강연하는 걸 볼 때마다 정말로 재밌고, 존경해 마지 않게 된다.
by vongm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