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발언 소설]그녀의 남자들

처조카를 사랑한 남자 2 (최종회)

[세상에서 가장 약한 가해자]

-처참한 여섯 살을 함께 지낸

팔성, 선우휘 둘 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은 분노 또는 슬픔으로 남는다--




팔성은 여섯 살이었던 자신을 대변 또는 변호하는 심경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가해자 선우휘의 눈빛은 여전히 빛났다.

팔성은 말을 이었다.

어린 팔성은 칠성이가 쳐낸 대나무 잔가지들은 대나무 밭으로 마구 던졌다. 형의 피가 튀긴 잔가지들을

움켜쥐면서 팔성이의 손이 긁히고 베였다. 통통하고 작은 팔성의 손에 피가 맺혔다.

그 대나무 가지들은 그해 모두 대나무로 자랐다. 마치 대나무 꽃꽂이라도 되듯.

그 잔가지들은 죽순의 과정을 생략하고 대나무로 자랐다. 그 신기한 대나무를 보며 팔성은

죽창을 상상했다. 여섯 살의 마음속에 죽창을 품었다.

팔성은 그 후 더 이상 엄마, 아빠에게 막내의 재롱을 부리지 않았다. 선우휘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도

다시는 아랫채로 내려가지 않았다.


팔성은 팔방미인 공무원이 된 선우휘에게 아이스아메리카노 얼음을 아작아작 씹으며 물었다.

"너는 좋은 대학 나와서 신문에도 나오는 공무원이 되었나 보네.

우리는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

선우휘 너 때문에 우리 팔 형제의 삶은 무너졌다."

선우휘는 깜짝 놀랐다. 팔성의 오해가 너무도 깊어 설명한 길이 너무도 멀었다.

설명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좋은 대학?"

팔성의 피해의식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은 마치 부모를 죽인 원수를 보는 듯했다.

"팔성아, 뭔가 오해가 있는 듯 해."

팔성이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고민했다.

"팔성아, 나는 대학을 다니지 못했어, 아니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팔성은 커피잔을 둔탁하게 내려놓으며 소리 질렀다.

"그럼, 우리 아부지, 너의 고모부가 매번 갖다 바친 농작물들은 어디로 갔는데?"


선우휘는 자신이 고모집에 머물렀던 시간을 1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팔성은 그 기간을 3년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고통스러운 시간의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 수 있다.

그 고통의 터널을 먼저 통과한 사람이 아직 헤매는 사람을 기다려줘야 한다.

터널을 향해 등불을 비추며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동일한 사건과 그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 간의 차이를 좁히는 방법은

터널 밖에서 빛나는 반딧불이가 희망이 되기도 한다.


선우휘는 까마득히 잊었던 고숙 박씨를 다시 떠올렸다.

고숙은 선우휘의 가족이 해양시로 이사를 하고, 몇 번 왔었던 기억이 났다.

고숙에게 처가였던 선우휘의 집.

고숙과 고모가 나란히 방문했을 때는 모든 것이 당연했었다.

고숙은 매년 추수하여 쌀과 밭곡식들을 그득그득 처가에 가져다주긴 했었다.

고숙이 보내준 쌀과 곡식은 선우휘의 가족이 반년 정도 연명할 수 있는 식량이었다.

그런데 고모가 사십 대 후반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이후는 달랐다.

고모부는 어떤 튼실한 아줌마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 아줌마를 재혼한 새고모라고 소개했다.

그 튼실한 아줌마는 엄마에게 큰절을 올리며 신고식을 했다.

"여기를 이제부터 임자의 친정으로 알어, 새로운 곡식이 생기면 여기 친정부터 보내주도록

허시게."

재혼한 여자에게 전처의 친정을 섬기라는 고숙의 명령이었다.

그 고숙의 재혼녀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표정이었다.

학교 갔다 돌아온 선우휘를 마치 공주를 맞이하듯 고숙내외가 대했다.

"우리 휘왔구나!! 고숙이 새고모 데리고 왔어.

너한테 인사시키려고."

고숙의 재혼녀는 선우휘에게 절을 할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때는 고숙의 그 태도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일반적이지 않는 행동이었다.

고숙과 재혼한 여자라고 해서 선우휘의 새 고모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고숙이 내세운 재혼 조건은 전처의 친정에 식량을 상납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식보다 고종사촌을 더 챙기는 것에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은 아버지가 새어머니마저 설득하여 옛 처가를 우선으로 섬기는 꼴은

팔성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여섯 살 때 품은 팔성의 죽창은 날로 날카로워졌다.

이 날카로운 죽창은 청년이 된 팔성의 삶은 더욱 위태롭고 불안하게 했다.



선우휘는 팔성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돌보는 청소년을 떠올렸다.

중학생인 길태는 여성혐오가 심각했다. 길태의 여성혐오는 발화되지 못한 자기 어머니에 대한 혐오였다. 길태의 어머니는 어린 길태에게 심한 욕을 서슴지 않고 퍼부었다.

길태의 뺨을 때리는 행동은 일상이었다.

길태가 5학년 때, 그는 가슴에 야구방망이를 심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방에서 처음 본 아저씨와 엄마가 나란히 나왔다.

길태는 그날 엄마에게 생트집을 잡아서 덤볐다. 컵라면에 불을 부어주고 부랴부랴 외출하려는

엄마에게 소리쳤다.

"왜 이렇게 라면이 퉁퉁 불었어, 에이....."

길태는 컵라면을 바닥에 내패댕이 치고 엄마의 가방을 붙잡고, 난동을 부렸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컵라면이 쏟아지고, 엄마의 가방끈이 널브러진 거실 풍경을 마주했다.

아버지는 눈을 부라리며 무엇인가를 급하게 찾았다. 베란다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온 아버지.

그 야구방망이는 길태를 향했다. 아버지는 키가 작아 5학년인 길태보다 살짝 컸다. 그는 벌써 자신과 체격이 비슷해진 아들이 두려웠다.

"이 호로새끼야, 어디 엄마에게 덤벼.

엄마에게 덤비는 놈은 살려둘 필요가 없다."

길태는 그날 이후 야구방망이가 무서워 엄마를 '어머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날 야구방망이는 두 동강이 나서 쓰레기통에 버려졌지만

길태의 가슴에 들어와 살았다. 길태의 가슴에서 살던 야구방망이는 1년이 지나 실력발휘를 시작했다.

6학년 때 일이다. 함께 프로그램을 하다가 여자 아이들이 말 없는 길태를 놀렸다.

"너 길에서 태어나서 길태야?"라고 슬쩍 밀었다.

그 분위기에 동요한 또 한 명의 여자 아이가 "기찻길 옆, 길태집"이라고 하였다.

순간, 길태의 가슴속 야구방망이가 재빠르게 튀어나왔다.

주먹으로 두 여자 아이를 쳤다. 넘어진 여자 아이의 팔을 발로 밟았다.

길태의 발에 밟힌 여자 아이의 팔이 부러졌다. 길태는 경찰서에 조사를 받았다.

부모들끼리 잘 협의하여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길태의 마음속 야구방망이는 더 힘이 세졌다.

선우휘는 공무원이 되어 아동복지를 담당하며 가장 힘들었던 길태를 떠올렸다.

길태는 아버지로부터 단 한번 야구방망이로 맞았다. 하지만 길태의 피해의식은 여성으로 향했다.

야구방망이 사건으로 터진 길태의 피해의식은 어머니로부터 비롯되었다.

어머니에게 다하지 못한 말들,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 쌓여있었다.

그 출구 없는 억압이 아버지에 의해 완전 봉쇄되었다.

선우휘는 길태를 상담하며 왠지 뭔가 익숙했다. 그리고 길태의 여성혐오를 해결할 자신감도 있었다.

아동복지 수혜자인 길태는 중학생이 되면서 마음속에 야구방망이를

조용히 반납했다.


팔성은 선우휘가 자기 아버지의 지원을 받으며 편안하게 대학을 졸업한 줄 알았다.

오해였다. 선우휘는 대학 졸업장 없이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선우휘를 팔도미인이라고 신문에서 소개한 이유도 따로 있었다.

세상의 그 누구도 선우휘를 팔도미인이라고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된 선우휘의 마음속에는 고모집의 뒤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선우휘가 고모집의 뒤안에서 울었던 이유는 그 뒤안의 해 질 녘 풍경 때문이었다.

해가 지면 굴뚝의 모습이 떠나온 자기 집의 굴뚝과 똑같았다.

알고 보니 고모집의 굴뚝은 선우휘의 아버지가 만들었다고 한다.

선우휘의 아버지는 하나뿐인 여동생의 집 지을 자금을 아낌없이 주었다.

누이의 집이 완성되자 굴뚝을 손수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니 두 집의 굴뚝 풍경은 비슷했다. 이 분위기의 느낌을 선우휘는 용케 알아보았다.

여섯 살 선우휘는 아버지의 손길이 담긴 굴뚝에서 자기 본가의 안정감을 느꼈다.

해 질 녘 뒤안에서 굴뚝을 두 팔고 안고 있으면 마치 집에 온듯한 포근함을 느꼈다.

그런데 고숙 박씨는 이미 죽은 처남이 만든 굴뚝을 안고 있는 선우휘의 모습이 기괴하고 불쌍했다.

그래서 고숙은 선우휘를 굴뚝에서 떼어내려고 했다.

선우휘는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정감, 포근함을 해 질 녘에 누리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 굴뚝에 있고 싶어서 울었던 것이다.


팔성은 선우휘가 전해주는 해 질 녘 뒤안 스토리를 들으며 모자를 푹 내렸다.

선우휘는 팔성의 격하게 흔들리는 어깨를 토닥거렸다.

팔성은 여섯 살 선우휘처럼 오래오래 울었다. 선우휘의 어깨에 기대어 뜨거운 굴뚝의 눈물을 뿜어냈다.


선우휘와 팔성은 그 카페를 나왔다.

"팔도미인 복지사님, 또 만나요."라는 카페 사장의 격하게 배웅하는 인사말이 응원처럼 울려 퍼졌다.

팔성과 선우휘는 낮은 굴다리를 자세를 낮추어 걸었다.

선우휘의 고모집살이로 이야기 꽃을 피우며 집에 도착했다.

외숙모가 차려놓은 밥상에 앉았다.

팔성과 선우휘는 후련하게 그들의 어린 시절을 반찬으로 추가했다.

"엄마, 내가 1년 동안 고모집에서 살았을 때 정말 많이 울었어..."

"외숙모, 휘가 우리 집에서 3년 살았을 때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뭐라고? 휘는 고모집에서 3개월 동안 지냈었어, 니들이 많이 힘들었나 보네.

이제 괜찮다."

사실 선우휘는 고모집에서 3개월 기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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