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알바생을 사랑한 남자 1화
------------12월 24일 오후 4시에 만난 바다----------
20년이 지나서 느껴지는 감사함도 있다.
오래오래 숙성된 감사는 꿈틀거려서 그 대상을 찾지 않으면 늘 마음이 마렵다.
똥이 마려우면 방귀가 잦듯이, 감사가 마려우면 죄책감이 잦다.
나의 마음속에서 20년 만에 감사한 마음으로 깨어난 아저씨가 있다.
내가 아저씨라고 불렀던 그분을 20년이 지나서 찾아갔다.
아저씨의 족적을 감사라는 명분으로 찾아 나선 이유는 그 존재가 실존의 인물이었는지
의문스러워서였다. 그때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의문투성이였다. 그 아저씨는 나의 과거에 실제로 존재하긴 했을까.
16세에 도시로 돈을 벌러 나온 나의 손을 잡아주었던 아저씨.
오래된 감사는 거룩하고 영롱하여 마치 신 또는 악마의 개입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 아저씨를 찾아 나섰다.
바다로 나간다는 의미의 로고가 크게 그려진 대문 앞에 섰다.
회사명은 바뀌었지만 로고는 20년 전 그대로였다. 그때보다 규모가 훨씬 작아 보였다.
경비실의 문을 조용히 두드렸다. 졸고 있던 경비 아저씨가 손짓으로 가라는 시늉을 했다.
"선생님, 혹시 이 회사에 박평화라는 분 계신가요?"
경비 아저씨는 귀찮다는 표정이었지만 혹시라도 찾는 이가 높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겨우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졌다.
"누구요? 박평화요? 박평목? 박평수요?"
경비가 자기 마음대로 출석 부르듯 이름을 말할 때마다 모두 들어봄직한 이름이었다.
"아니요, 박평화라는 20년 전에 노무과 직원이었던 분이오."
문득, 경비아저씨가 읊어대는 이름들을 들으며, 그 아저씨의 이름이 실루엣처럼 흔들렸다.
그 오래된 16세의 추웠던 날이 떠올랐다.
16세 겨울 방학 12월 24이었다. 방학을 하자마자 바로 도시로 나왔다.
동네의 옆집 언니가 소개한 '출렁미싱'이라는 회사였다.
출렁미싱은 그 어느 파도에도 출렁이지 않을 거대한 회사였다.
거대한 회사라서 고양이의 손이라도 보탤 인력을 필요로 함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동네 언니는 나를 어느 큰 사무실에 데려다주고 바삐 자신의 일터로 뛰어갔다.
세상에, 사회에, 직장에, 출렁미싱이라는 곳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아무런 걱정도 일지 않았다.
걱정도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어야 가능한 것을 실감했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걱정은 어설프게 알았을 때 생기는 마음의 부산스러움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신입생은 이미 신입생이 아니었다. 이미 사회인이거나 어른이었던 그들은 긴장한 자세로
이력서를 앞에 두고 근엄하게 앉아있었다.
그들은 숨도 크게 쉬지 않았고,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들을 보며, 마음이 부산스러울 때 오히려 몸과 마음은 경직된다는 간접체험을 했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나는 주머니에서 이력서도 꺼내지 않았다.
아는 것이 없어서 아무런 동요가 일지 않았다.
그 근엄한 분위기에서 졸음이 밀려왔다.
시골에서 하루 종일 야간열차를 타고 오는 동안의 피로가 밀려왔다.
졸다가 눈을 뜰 때마다 한 명씩 직원을 따라서 사라졌다.
졸다가 배가 고플 즈음에 눈을 떠보니, 모두 저마다 능력에 맞는 부서로 배치되어 사라졌다.
나 혼자 덜렁남아 눈치도 없이 꾸벅꾸벅 부지런히 졸고 있었다.
아는 것이 아예 없거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여유롭다.
그때 그 여유를 깨고, 박평화 아저씨가 등장했다.
박평화 아저씨는 이 대기실에 몇 번 오가며 계속 졸고 있는 나를 보았을 것이다.
"니 뭐꼬? 무슨 얼라가 왔노? 이력서 가져왔나?"
아저씨는 이력서를 말할 때, 손으로 직사각형을 그렸다.
나는 이력서도 모르는 어린아이로 취급받은 것이 살짝 기분이 나빠서 당당하게 이력서를 주머니에게 꺼냈다. 평화아저씨는 3월에 고등학교 예비 진학생이라고 적힌 부분을 보며 살짝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이력서를 들고 많이 고민하다가 따라오라고 했다.

이미 점심시간이 시작되어 많은 노동자들이 파랑 작업복을 입고 움직였다.
파랑작업복을 입고 식당을 향해 걷는 움직임이 마치 파도처럼 보였다.
울창한 숲의 나무와 논밭만 보고 살다가 갑자기 사람 물결을 휩싸이니 정신이 없었다.
자꾸 박평화 아저씨를 놓쳤다. 나는 그 순간 박평화 아저씨를 놓치면 파도에 떠밀릴 것만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푸른 어지럼증이 신선했다.
"아저씨, 아저씨"
급하게 아저씨를 부르며 뛰어가서 아저씨의 손을 잡았다. 아저씨의 손을 잡다가 옷깃을 잡고 매달리다시피
쫓아갔다. 따라갔다.
아저씨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넓은 식당이었다.
아저씨는 긴 줄에 합류했다. 나도 아저씨 뒤에 줄을 섰다.
무조건 아저씨를 따라서 했다. 수저를 집고, 식판을 들고, 반찬을 받고, 국을 받았다.
아저씨는 그날 분명히 이 말을 했다.
"니는 나이도 어리지만, 등치가 너무 작고, 게다가 너무 어려서 여기서 일을 못할 기다.
졸다가 일어나면 집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산골... 산골에서 왔더라.
근데 식당에 따라오는 거 보니, 마크 자르는 거라도 시켜보기로...."
아저씨가 말하는 산골은 내가 지금껏 자라온 고아원을 말한다.

나는 그날 입사가 되었다. 아저씨는 밥을 먹고 내 손을 잡고 노무과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아니, 밥을 먹자마자 내가 먼저 아저씨의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출렁미싱은 너무 거대해서 식당과 노무과의 거리도 멀었다. 마치 언덕을 넘어가는 듯한 거리.
아저씨는 노무과에서 직접 작업복을 주며, 부서 안내를 자세하게 해 주었다.
일부러 길게 설명하는 듯한 폼이었다. 마치 처음으로 해 본 듯한 아저씨의 첫말, 첫 제스처였다.
나중에 그런 태도를 어색함이라고 하는 걸 느꼈다. 20년 후에야.
처음으로 구사되는 말, 처음으로 표현되는 제스처는 길어도 지루하지 않고 설레고 신선하다.
박평화 아저씨가 나에게 그랬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처음인 묘한 관계였다.
박평화 아저씨는 오후 늦게 제일 작은 파랑 작업복을 주며 갈아입으라고 했다.
파랑 작업복을 입고, 또 아저씨의 손을 잡고 따라나섰다.

미싱이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저녁나절이 다 되어 노동자들의 움직임은 느슨했다.
머리에 세모 두건을 쓴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많은 사람들은
마치 해운대 여름의 저녁나절 파도처럼 보였다.
박평화 아저씨는 철재 계단 위쪽을 바라보며 손짓을 했다.
계단 위쪽에 '미싱 3계 사무실'이라고 적힌 난간에 완장을 두른 아저씨가 서있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다 들킨 중학생처럼 느슨하게 쥔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계속 우리를 주시했다.
박평화 아저씨는 그에게 한번 더 손짓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철컹철컹 철재 계단 소리가 요란했다.
"송반장, 이 애는 학생이라 방학 때만 일을 할겁니다.
나이가 어리니 마크 자르는 일만 시키세요."
박평화 아저씨는 내 손을 놓으며 송반장에게로 나를 밀었다.
그 순간, 나는 연어이야기가 뜬금없이 생각났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참았다.
박평화 아저씨 쪽으로 한 발을 주욱 뺐다. 여지없이 바다로 간 아기 연어가 떠올랐다.
다시 발을 송반장 쪽으로 내디뎠다.
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참았다.
엄마 연어는 아기 연어를 바다로 보낼 때 소풍 가자고 말한다고 한다.
아기 연어는 바다로 나가야 알을 낳을 수 있는 건강한 연어로 성장한다.
엄마 연어와 아기 언어가 손을 잡고 강과 바다의 경계에 다다르면
엄마 연어는 숨을 크게 몰아쉰다.
엄마 연어는 아기 연어를 바다로 흐르는 폭포로 세게 민다.
"아가, 바다로 바다로 가야 산다. 이제 바다로 가야 건강한 어른 연어가 될 수 있단다."
엄마 연어는 이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국어교과서에서 읽을 때도 혼자 울었다.
"선우휘, 여기서 마크자르는 일을 하면 된다.
오늘부터 네가 일할 부서다."
박평화 아저씨는 이 말을 하며, 나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돌아섰다.
박평화 아저씨의 깊은 숨소리를 나는 분명히 들었다.
나는 12월 24일 오후 4시에 미싱부서라는 바다에 첫발을 디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