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조무사를 사랑한 그 남자 1화

무심공원에서 만난 그 여자

사람들은 서로 알지 못해도, 서로 다른 곳에 살아도, 같은 장소를 선호하는 것만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남자는 무심공원에 쓰러져 있던 그 여자를 발견하고

스스로 그 여자의 구원자가 되었다. 쓰러진 여자를 구해주고 구애자가 될 줄 아무도 몰랐다. 우연히 가고 싶은 곳은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다.




그 남자는 비가 내리기 직전의 압력이 느껴지면 방에 있지 못한다.

비 내리기 직전의 저기압은 뇌압을 누르고, 온몸의 땀구멍이 터져 나오는 기분이 든다.

그의 몸에 덜 나은 모기 물린 자국이나 긁힌 자국이라도 있으면

그 자리에 두드러기로 폭발한다. 이런 증상이 비 오는 날이면 발작을 하거나 밖으로 나가야 한다. 자신의 몸을 자연에 배분하여 압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방에 있으면 그 증상이 더욱 심해지기 때문에, 공원으로 나가야 한다.

그 남자는 몸에 두드러기의 형상을 살펴보는 재미를 억지로 느끼며

가려움증에서 잠시 벗어나려고 애썼다. 두드러기의 모양을

3월의 봄날, 유난히 따뜻했다. 날씨가 따뜻해서 벚꽃도 활짝, 개나리도 활짝

세상은 온통 꽃밭으로 넘쳤다.

이런 봄날이면 의례 비가 쏟아지기 마련이다.

그 남자는 이런 저기압을 무시하려고 책을 펼쳐 소리 내 읽었다.

어느 순간 허벅지를 긁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이미 나은 흉터까지 부풀어 올랐다.

허벅지는 두드러기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그 남자는 주섬주섬 겨울 외투를 챙겨 입었다.

휘파람을 불며, 자신의 온몸 가득 들어온 기압을 휘파람으로 분출했다.

그 남자가 방에서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안'을 소리 내 읽으며, 버텨본 것은

공원이 한적해지는 시간을 자기의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sticker sticker

무심공원, 그 공원의 이름처럼 무심하고 고요했다.

무심공원은 주택가에서 3킬로미터 떨어지고 산 아래의 암자에서 1킬로미터 즈음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그 남자가 자주 찾는 무심공원이다. 무심공원은 이름처럼 마음도 무심해진다.

그 남자는 긁적이며 암자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안개로 흐릿한 암자는 표고버섯처럼 아담했다. 무심공원의 풍경에 마음을 돌리면 두드러기도 사라지고 어느덧 평온해졌다.

남자의 긁기에 가속도가 붙은 한 손은 점퍼 속으로 넣어 등을 긁으며, 한 손은 암자를 쥐어보는 흉내를 냈다. 누군가 염불을 외고 있을 암자를 한 손에 넣고, 스마트폰에 저장할 수 있는 낭만은 자신도 모르는 욕구를 채우는 일상이었다.

암자가 그 남자의 손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으면,

암자의 스님의 고요한 실루엣이 상상으로 야릇하다.

스마트폰으로 암자와 자신의 오른손을 조준하며 셧터를 눌렀다.

밤이 내리는 무심공원에서 자동으로 터지는 카마라 조명은 별빛이 수런거리는 정경이었다.

그 남자는 곧바로 사진을 확인했다. 그런데 사진 속에서 암자로 가는 길바닥에 꿈틀거리는 형체가 보였다.

움직이는 그림자로 인식하려는 순간, 조그마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형체를 확대하자, 조그맣게 지친 신음소리가 휴대폰의 사진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 남자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져 사진을

확대시켰다. 마치 사진 확대가 소리를 확대시키는 듯 여자의 다 죽어가는 신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 남자는 눈을 부비며, 다시 사진을 확대하려다 암자 쪽으로 걸어갔다.

공원의 외진 벤치 앞에서 기척을 느낀 여자가 검은 그림자처럼 한번 더 꿈틀거렸다.

그 꿈틀거림은 이 세상에 아무런 적의가 없고, 악의도 소멸한 오직 한번 더 일어나고픈 몸부림이었다.

"누구 있나요?"라고 말하며 그 남자가 다가갔다.

남자는 본능과 제도의 두 가지 구원방식을 순식간에 떠올렸다. 이 여자를 엎어야 하나!

아니다. 119, 112의 번호도 순식간에 헷갈렸지만, 곧장 119를 눌렀다.

119 구조대가 오는 동안 그 남자는 직업의식이 발동하여 여자를 바로 누이고, 의식을 확인했다.

여자는 남자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며 편안해졌다.

여자는 편안하게 정신줄을 놓았다.

sticker sticker


남자는 구급차가 도착하는 동안 그녀의 코와 입으로 호흡을 불어넣었다.

그녀에게서 풀이 뭉개진 냄새가 풍겼다.

구급차와 경찰차가 동시에 도착했다.

구급대원은 산소호흡기를 여자의 작은 콧구멍에 밀어 넣었다.

남자는 마치 보호자처럼 구급차에 탑승했다.

구급차는 테배종합병원의 응급실에 도착했다.


"아, 선생님... 왜.. 이런 밤에 쓰러지셨지..."

응급실의 간호사가 그 여자를 알아보았다.

"환자와는 어떻게 되시나요?"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그제야 자신은 그 여자의 보호자도 아니고, 응급실까지

따라올 필요가 없었던 발걸음이었음을 알았다.

순간 머쓱해져서 슬그머니 응급실을 나왔다.

구조된 그 여자는 이 병원의 직원인 듯했다.


sticker sticker


남자는 집으로 돌아와서 누워도 아토피는 근질거렸다. 신산했다.

뭔가 불편한 마음이었지만 설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설렘은 따끔거리고 어수선했다.

그 정체는 잠자리게 눕고야 선명해졌다. 자꾸만 그 여자가 궁금해졌다.

으깨진 풀냄새를 풍기는 그녀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스러움.

그다음 날도 그 의문스러움을 계속되었다.

sticker sticker

그 남자는 신경외과 의사이다. 부모님이 모두 의사라서 자신도 당연히 의사가 되었다.

본인이 의사이지만 심한 아토피성 피부질환으로 인해서

늘 불편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시골에 작은 '박신경정신과'를 개원했다.

이곳은 친구 샘소슬의 고향이다. 샘소슬은 그가 가장 인간다운 삶이라고 여기는 친구이다.

소슬은 물리치료사이다. 그는 이 고장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이곳을 벗어난 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다른 곳의 삶을 더 폭넓게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더욱 다른 곳을 더듬거리지만

구체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약하다.

소슬과 의료종합대학에서 함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인연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샘소슬의 어머니는 텃밭을 가꾸며 그곳에서 모든 먹거리를 해결했다.

방학 때, 그 남자가 소슬과 함께 그 고장에 발을 디뎠다.

한번 발을 딛고 평생 잊지 못했다. 늘 이곳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소슬 어머니 특이점 때문이었다.

소슬 어머니는 그 텃밭이 있는 그 마당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 분이었다.

텃밭에서 상추, 배추, 오이를 길러 투박하게 듬성듬성 썰어서 반찬을 조물거렸다.

가장 특이한 점은 소슬 어머니는 그 텃밭에 삼을 재배했다.

한 여름의 햇살은 삼의 커다란 키에 그림자 기둥으로 머물렀다.

그녀는 그 삼대를 토박 내어 화덕에 쪘다. 수건을 두르고 삼밭의 그림자 그늘에 앉아 삼을 찌는 모습은

영락없는 밀레의 그림 속 그림이었다. 그림 속에서 두건을 두른 건장하고 포근한 여인 중의 한 명이

눈앞에서 삼대를 찌고 있었다. 삼대가 삶기는 냄새는 감자찌는 향기처럼 은은했다. 평온했다.

삼의 향기는 고단하고, 지루하고, 열정적인 삶을

은은하게 그저 먹을 수 있는 맛으로 진동했다.

그 남자는 이 향기에 취해서 샘소슬과 평생 동지가 될 주술에 걸렸다.

밤이면 그 삼대에서 껍질을 벗겨서 연결 지었다.

그녀는 낮밤이 따로 없었다. 어느 순간 삼대를 찌고, 어느 순간 텃밭에서 조용히 황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루 끝에 앉아서 삼 껍질을 끝도 없이 연결 지었다. 그 남자는 연결되는 삼 껍질의 잔향에 취해서

마루 끝에서 시집을 읽으며 이 배경에 동화되었다.

물리치료사인 샘소슬은 이런 풍경에 끼어 있다가 먼저 잠이 들었다.

"어이, 박신경 날 새기 전에 한숨 잡시다."

샘소슬은 그 남자를 박신경이라고 불렀다.

박신경은 이곳에서의 하루하루가 그렇게 아까웠다.

박신경의 어머니는 낮과 밤이 정확했고, 서 있는 장소도 일정하고 정확했다.

그들의 삶은 혼재와 용해는 있을 수 없었다. 낮에 잠시 섞이는 듯 보여도 밤이면 어김없이 물과 기름으로 나뉘었다. 무의식에서도 물과 기름인 도시인의 가족은 외로웠다.

삼대가 삶아지는 샘소슬의 집은 무의식에서도 섞여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sticker sticker


그 남자, 박신경은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이렇게 연관된 이 시골에 혼재하거나 용해되기로 했다.

근질거리는 아토피도 하나의 교감처럼 신선했다.

그런 신산한 근질거림으로 그녀를 만났다.

테배종합병원의 간호조무사인듯한 그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신의 혈통알아보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