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와 모방은 전혀 다르다
죽녹원의 대나무숲에 위치한 이이남 아티스트의 모나리자 그림 앞에서 오래된 모나리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디서나 늘 마주하는 모나리자와의 마주침은 식상해서 외면하고 싶었다. 식상함에 질려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모나리자가 사정없이 총을 맞는 장면이 펼쳐졌다. 그림 속의 모나리자는 총을 맞고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이이남 아티스트의 모나리자는 총을 맞는 순간부터 새로운 모나리자로 재창조되었다.
나는 이 아티스트가 창조한 모나리자 앞에서 세 번의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 놀람은 전시된 모나리자가 모방 또는 모조된 작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제법 그럴싸한 갤러리에 모조품 모나리자를 전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모조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신 모나리자'라는 제목만 바꾸어서 전시한 줄 알고 실망할 뻔했다. 그런데 총소리를 들으며 신박한 두 번째 놀람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무표정인 듯 묘한 미소를 담고 있는 이 모나리자에게 총알 폭격이 가해지는 입체적인 움직임은 처참했다. 그 와중에도 꼿꼿한 500년 전 그대로의 모나리자 미소는 처연했다. 총알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의문스러운 모나리자의 미소에 잔인한 충격을 받았다. 모나리자의 온몸이 폭격을 받아 너덜너덜해졌다. 500년 동안 수없이 많은 예술가들의 손에서 그녀의 모습은 너덜거렸지만 정신은 결코 너절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꿋꿋하고 수려하게 창조되었다.
모나리자의 여기저기에 총격이 가해진 자리에 수국이 피어나고, 장미꽃이 피어났다. 급기야 모나리자의 가슴에 수류탄이 쏟아지고, 모나리자의 심장에서는 화려한 꽃이 피어났다. 거대하고 화려한 총, 수류탄, 폭탄 세례를 받은 모나리자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500년 전 모나리자의 미소는 이 시대를 향한 조소이거나 꿋꿋함이었다.
모나리자는 순식간에 온몸에 총탄과 수류탄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되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모나리자의 폐허는 꽃으로 피어났다. 총알을 맞은 부위는 작은 꽃으로 수류탄 공격을 받은 부위는 큰 꽃으로 피어났다. 모나리자는 무기의 공격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세례를 받은 비둘기 같았다. 이 장면을 보며 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가슴에서 뜨거운 샘물이 솟아나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내가 울고 있었다. 세 번째 놀람은 '폐허 속 꽃이 된 모나리자' 앞에서 꾸역꾸역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내가 관찰했다. 시 쓰기를 즐기는 나는 '폐허 속 꽃이 된 모나리자'라는 한 편의 시를 마음속에 심으며 힘차게 눈물을 닦았다. 그 당시 나는 본연의 나를 지키며 웃음으로 치장하는 삶에 지쳐있었다. 이런 나에게 '신 모나리자'는 총알과 수류탄을 맞는 그 상황을 폐허라 하지 않고, 만개한 꽃밭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꽃밭으로 만개한 '신 모나리자'는 그 정신을 모방하며 살아가고픈 창조의 에너지를 선사했다.
이 작품에서 모나리자는 더 이상 그림이 아니라 예술이었다. 결코 노화되거나 아무렇게나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베아트리체였다. 창조된 모나리자는 가장 트렌드이자 신개념이다. 500년 전 모나리자 그대로이지만 이이남 아티스트에게는 모티브일 뿐이다. 모나리자는 여전히 예쁘게 포장된 전쟁과 폭력이 난무한 현실을 대표할 가장 초현실적 인물로 거듭 창조되었다.
모나리자에게 총알 폭격이 이어지는 입체적인 3분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의 모방 욕구가 떠올랐다. 또한 카타르시스와 함께 강렬한 모방 욕구가 솟구쳤다. '신 모나리자'를 감상하며 내가 무언, 무표정으로 견뎠던 삶을 보상받은 강렬한 카타르시스의 후련함이 느껴졌다. 이 후련함은 복제와는 전혀 다른 모방이 주는 치유의 속성이다.
무엇인가를 모방하고자 하는 욕구는 예술혼이 되고 삶을 살아내는 에너지가 된다. 이 에너지는 창조자와 감상하는 이에게 예술적 승화의 근간을 이룬다. 모방 욕구는 자신을 세상과 어우러질 수 있게 하는 기폭제이다. 기존의 권위 있는 예술 작품을 모티브로 삼고, 거기에 자신의 창작 열정을 덧입혔을 때 새로운 예술이 된다. 이렇게 모방을 통해 스스로 권위를 부여한 삶은 세상의 가치로 탄생한다.
권위 있는 모방은 새로운 창조이다. 이런 의미에서 복제와 모방은 전혀 다르다. 복제품에는 에너지가 없어 식상하고 질린다. 그래서 생명력이 없고 무의미하다. 모방은 잠자고 있는 예술혼을 깨워 새로운 창조물을 잉태한다. 모방 대상에 무한 반복적인 인고의 시간을 입히면 드디어 새로운 창조물이 탄생한다. 별처럼 수많은 모나리자가 모두 빛나려면 존중, 죽음, 환생은 필연적이다. 500년 전 모나리자를 존중하고, 편협한 흉내의 속성을 죽여야 전혀 다른 새로운 모나리자가 환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