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발표 시집-충주호 가는 길 우주 비행 낯선 고독

충주호 가는 길


아름답다는 계곡은 모두

인간 무리의 오색텐트에 점령당했다

나무 밑에도 바위틈에도

여지없이 가득 찬 텐트들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왔는데

도시에서 온 인간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쓰레기들을 채우고 있다

월악산 송계 계곡

산 그림자 내려앉는 시간까지

인간들 질펀하게 쏟아낸 오물이 흐른다

산 아래 충주호 진초록의 부유물들이 떠다니고

인간들 다시 도시로 돌아와 마실

수돗물이기에 더욱 안타까운 여름날(1994)



우주 비행


중력을 벗어난 우주선 속에서

비행사는 산소를 씹어먹고 싶어졌네

어제 땅 위에서 보았던 구름도

이제는 발밑에서 겨울 눈구름처럼 펼쳐져 흘러가네

솜사탕처럼 만져지지도 빨아먹지도 못할

신기루의 구름 떼

가슴 깊은 골짜기에 그리움을 만들어놓고

지상으로 하강하기 시작하네

여과되지 않은 채 직진하는 태양 빛

이 강력함과 맞서기엔 눈이 부시네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싶었던

지상에서의 삶이 한낮 구름을 움켜잡는 것이었네

여기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 지점

카오스의 세계

한눈에 보이는 푸른 지구가

꾸역꾸역 머리 숙이며 지나가고 있네(1996)


낯선 고독


우리나라 어디쯤

기차역 광장에 서면

낯선 고독 하나 기다렸다는 듯이

마중 나와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훔쳐보고

거칠고 투박한 사투리를 들으면

문득 나는 이름 모를 별에서 날아 온

외계인

무심히 내 앞을 지나가기도 하고

피우다 만 담배를 발로 비벼 끄다가

머쓱한 얼굴로 돌아서는 시내의 등 뒤로

달라붙은 낯선 고독

그것은 외로움인가(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