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발표 시집-소래 포구 갈대 가을의 변주곡

소래 포구


수인선 협궤열차

긴 꼬리 날리며 달려가는 겨울

철교 난간을 뚫고 날아오르는 회색빛 갈매기들

이 정지된 시간 포구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암갈색 개펄 수렁에 뿌리를 박고

하염없이 흔들리는 갈대들

끝없이 머리 풀고 흔들리고 흔들려도

기다림의 갈증 멈추지 않는 포구의 저녁

베네치아여

그대를 생각하면 나는 자꾸

목이 메인다오

검은 해안선으로 오르다 오르다 부서져 버린

욕망과 욕구불만으로 가득한

밀물 위로 뿌려지는 저녁 놀 빛

당하고도 반항하지 못하고

헝클어진 머리칼 옷매무새 여미지도 못한 채

속울음만 울어대는 베네치아여

설움만을 가슴에 쌓아두고 있는 것은

그대 등에 기댄 채 살아가는

어부와 갈매기 때문인가

수인선 협궤열차 경고의 기적 소리

가슴 뚫고 지나가는

고향이 그리운 이들의 안식처

소래 포구(1989)

베네치아

갈대


그들은 거인족처럼

후줄근히 키만 커서 무더기로 모여 산다

인적 드문 고요의 땅

버려진 개펄이나 강가에서

종일토록 서로의 얼굴 비비며 따뜻한 체온 느끼다가

밤이 오면 무엇이 그리 슬픈지

엉엉 울기도 한다

가을날 따스한 보금자리 찾아온

철새 몇 마리 떠나보내야만 하는

아쉬움과 허전함이던가

또 다른 슬픔 하나

가장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느낄 때

흰 머리칼 휘날리며 떠나야 할 자신이 미워

겨울 속으로 떠나야 하는

세월 때문이란 것을(1989)


가을의 변주곡


십일월 어느 저녁

연극 연습하던 아이들은

날지 못하는 백조 찾아 모두 돌아간

교실에 앉아

젊은 나이로 죽어간 시인의

아픈 절규를 들었다

때늦은 가을비

서럽게 창을 때리며 계절을 재촉할 때

살아있음은 단지 한순간

창문에 부딪히고 흘러내리는 빗물임을 알았다

가을은 정리하는 계절

떠날 때를 스스로 알아

주저 없이 바람에 날리는 잎새처럼

젊음은 든든한 뿌리 박을 곳을 찾아

텅 빈 복도를 걸었다

현재는 녹색

과거는 노란색 물감으로 칠하는 하루

하찮은 것들에도 애써 의미를 부여하며

쓰디쓴 미소 지어보는 얼굴아

빗물에 씻겨도 그대로인

베르사유 궁전을 서성이는

서구식 몽상가여

시인도 백조도 모두 떠나간

현대식 목조 건물을 돌아가는

껍데기뿐인 사람아, 사람아(1988)


베르사유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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