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계절제 강의실에서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획을 그은 한 분을 만나게 된다. 그분은 바로 국어교육과의 현대문학 지도교수인 성기조박사님이었다. 첫 번째 인상은 풍채 좋은 얼굴에 흰 머리칼, 어딘지 모를 인도풍이 느껴지는 피부색깔, 손가락을 까닥이면서 강의하시는 모습이 독특하다 느꼈다.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다락리에 정부에서 교원 양성을 목적으로 세워진 한국교원대학교는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이 합쳐진 형태의 초, 중등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세워진 국가 교육기관이었다. 학부만이 아니라 석, 박사 과정까지 개설해서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선생님들이 모여든 학문의 요람이었다.
나도 교육경력 3년을 채우고 여름, 겨울방학에 출석수업하는 계절제 석사과정에 지원해서 합격하였다. 강의실에 들어가 보니 20여 명의 국어교육과 선생님들이 앉아 있는데 대부분 경력이 있어 보였고 내가 가장 젊었다. 성기조 교수님은 '한국문학과 전통 논의'라는 과목을 강의하셨는데 해박한 학식과 경험, 다양한 인맥으로 우리들을 놀라게 하였다.
성기조교수님시인, 교수, 문학박사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중국 낙양대학교 석좌교수(역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역임),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역임)
198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노벨문학상 한국 측 후보 추천인
수상; 제44회 한국문학상, 제24회 국제펜문학상, 제1회 아주작가상, 2007년 한국문학상, 2008 한국예총 특별예술공로상, 2009 제5회 원종린수필문학상, 2011년 제3회 한흑구 문학상 수상, 2015년 보관문화훈장 수훈
저서; 시집, 소설집, 에세이집, 평론집, 고등학교 <작문> 및 <문학> 교과서 등, 130여 권의 저서와 편서가 있음
나는 신혼이어서 큰아들이 갓 태어나 경황이 없었지만 학문에 대한 열의가 넘쳐 평소 과제 해결과 학과 공부에 최선을 다해서 학점도 모두 A 이상을 받았다. 방학이 되면 교원대학교가 있는 다락리까지 가서 계절제 수업에 집중했다. 선생님인데도 파견으로 석사와 박사과정을 하는 선생님들도 있어서 대전 유성 호텔에서 열리는 학회 발표자리에서 그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들 모두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쳐서 학회 세미나 자리는 열기로 넘쳐났다. 언제나 그 자리에는 성기조교수님이 계셔서 갈래를 정해 주시고 학문적 자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깨우침을 주셨다. 성기조교수님의 호인 '청하淸河'를 따서 생긴 '청람어문학회'는 '청출어람 청어람'을 지향하며 그 이후로도 전통이 이어졌다. 나중에 '청하문학회'까지 결성되어 전국 규모의 큰 문학단체로 성장하였다.
나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지만 문학에서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아서 틈만 나면 시를 습작하고 교수님께 보여드리고 자문을 구했다. 강의를 마치고 저녁식사 후에 교수님이 계신 다락리의 교수아파트를 찾아갔다. 20평 정도밖에 안 되는 아파트 거실, 안방, 작은방 모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서적과 논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교수님은 매일같이 신문에 칼럼을 쓰시고 시와 에세이, 소설, 논문 작업에 하루도 쉴 틈이 없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학문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며 나 자신을 다그쳤다. 내 시 세계의 영역도 조금씩 넓어졌고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도 차츰 성장해 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성기조 교수님의 제자들로 공주교대 권혁준, 한명숙교수, 광주교대 염창권교수, 전주교대 최경희교수 등이 대학교수로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염창권, 신현락, 이선희, 신동인, 이심훈, 최지언, 권태주, 김연옥 등이 '문학지평'의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많은 제자들이 좋은 학위 논문을 썼고, 시인과 작가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나도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석사 학위 논문으로 '박용래 시인의 전통성 연구'를 완성했고, 1993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누군가 그리우면'이라는 제목으로 박화목시인의 추천을 받아 당선하여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좋은 스승을 만났기에 지금까지 그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승님이 내려주신 호 '일초逸草' 숨어있는 풀이지만 빼어난 풀로 살아가라던 말씀 받들어 지금도 시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려고 하고 있다.
이름 없이 산하에 피어나는 꽃
무더기로 피어서 외롭지 않게
감싸주는 사랑
누구 하나 툭 불거져 피지 않고
같은 꽃이라는 이름으로
흔들리는 아름다움
숨어서 피기에 더욱 고귀한
이름 없는 들꽃.
-권태주 시 <들꽃> 전문
화림동 계곡에서
성기조
농월정에 올라 바람 한 사발 마셨더니
계곡 안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지네
이동백의 소리, 송만갑의 소리
임방울의 소리, 박동진의 소리가
물길에 실려 너럭바위에 흐르고
김소희의 소리, 박록주의 소리
성창순의 소리 안숙선의 소리가
솔바람에 실려 계곡을 빠져나가네
하늘을 넘나들고 땅을 뒤흔드는 소리가
사월 꽃바람에 섞이고
흐르는 물소리에 실려
바위를 건드릴 때
박귀희의 가야금 가락이 귀를 울리네
화림동 물소리가 계곡에 울려
천지가 진동하네
흐드러진 꽃이 눈처럼 날리게
*화림동 계곡 : 경남 함양의 농월정이 있는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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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요르드에서
-노르웨이 송내
맑고 깨끗한
호수가
막내딸
네 얼굴과 같구나
재잘대는 물소리는
너의 말소리
-성기조, 2022 <한반도문학> 대표시선집 원고
이제 9순을 맞이하시는 성기조박사님, 2022년 10월 28일 서울대학교 동문회관에서 열린 신상성박사님의 8순 기념문집 행사장에 노구의 몸을 이끌고 오셔서 축사까지 해 주셨다. 아직까지 정정하시게 활동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한반도문인협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시며 문단에 등단하는 신인들의 신인상까지 직접 챙기고 계신다. 앞으로 더욱 옥체강녕하셔서 100수까지 넘기시기를 제자로서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