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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권태주 Dec 09. 2022

벌초

  추석이 다가온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명절 때가 되면 고향을 찾아가 부모님을 찾아뵙고 성묘하는 풍속이 있다. 하지만 올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동하지 않아 조용한 추석이 될 것 같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감기와 같이 비말을 통해 전파하기에 한 명이 여러 사람을 전파시킬 수 있다. 따라서 마스크를 꼭 착용해야 하고 손 씻기와 다수가 모인 장소에는 가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우리 집안의 고향은 충남 보령군 청소면이다. 오서산 아래 청소 저수지가 있는 마을이다. 권씨 가문의 시제時祭를 이곳에서 지낸다. 일제 강점기 할아버지께서 안면도에 정착하셔서 한 집안을 이루었다. 안면도 선산에는 증조부모님과 조부모님, 부모님, 숙부님, 큰형님의 산소가 있다. 지관地官을 하셨던 조부께서는 명당자리를 산비탈에 잡으신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은 ‘권비탈’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시기도 하셨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건너편 양지바른 산비탈에 자리 잡은 조상들의 산소를 바라보면 아린 추억들이 한 편의 영상이 되어 스쳐 간다. 조부께서는 밤, 감, 살구, 오야, 대추, 포도나무를 심으셔서 사철 과일 맛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집안의 장남으로서 부모님의 유지를 받들어 평생 농사꾼이셨다. 상급 학교에 진학하시어 공부하셨다면 당신의 뜻을 펴실 수 있었을 텐데 그리하지 못하시고 부모님과 여러 형제, 자식들 뒷바라지에 평생을 사셨다. 너무 많은 속을 태우셔서 그러셨는지 58세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큰형님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농사일을 하시다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뇌경색으로 일생을 마쳤다. 아픈 가족사들이 선산을 보면 떠오른다.     

안면도의 밤 


         

이 섬은 언제나 편안하게 보인다.

늘 푸르른 해송과

둥글둥글한 산등성이

변함없이 출렁이는 감빛 바다

그러나 이 섬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웅크리고 있는

아픔의 덩어리들

나의 가족사들 뇌리에 박혀

녹슬고 있다.

한 줌의 모를 논에 꽂는 봄날부터

한겨울에 이르기까지

쉽게만 찾아오는 제삿날들.

처마 밑 서까래 썩어 넘어지듯이

병마로 사고로 불귀의 객이 된 분들을 위해

죽음 냄새 배어 있는 향을 피울 적마다

나는 안면도의 밤을 생각한다.

별들이 지붕 위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새벽녘까지

불 꺼지지 않고 정담 나누시던 할아버지의 사랑방

그 곰방대 연기 속의 이야기들을

내 유년의 창고에서 꺼내어 제사상에 펼쳐놓으면

불귀의 객들 토방 위에

발자국 서성이는 소리 내다가

떠나간다. 노를 저으며

욕심이 없는 무욕無慾의 세계로.   

  

  올해에도 여전히 가족들이 모여 벌초하러 가려고 한다. 엄중한 시기라 많이 참석은 못 하지만 조상님의 산소를 벌초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에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잡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고향이 없다고 말한다. 태어나서 자란 곳, 부모님의 체취와 가족과 친구들과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기에 고향은 그립고  보고 싶다.   

   

벌초 


         

조상님 산소에 와서

예초기를 돌리며 달라져 나가는 풀들의 흩어짐을 본다.

사방으로 몸뚱이를 날리며 흩어지는 잡풀들

청년 시절 한때는 큰 야망을 품고 당당히 고향을 떠났지만

이제 부모 되어 돌아와 조상님의 산소를

벌초하는 몸

잘게 흩어진 풀들을 갈퀴로 긁어모으면

흩어진 어린 날의 추억들이 아련하게 달라붙어

저녁노을 같은 붉은 울음을 토한다.

꿈이란 때론 소소하면서 늘 손에 잡히리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부질없는 것을

어린 시절엔 흘러가는 구름이 좋아

구름 머무는 곳에 가고 싶어 했지만

돌아와 보니 허망한 것을

양지바른 부모님 산소에 누워

곱게 잘려 나간 잔디 쓰다듬어 본다.

파란 하늘 떠가는 뭉게구름 본다.

언젠가는 나도 돌아와 누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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