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화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어린이 이야기입니다. ‘시나나 라오스 남매’는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 마을을 소재로 한 것입니다. 한국도 이제 약 2백만 외국인들이 들어와 우리 이웃에 같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수도권 최대 다문화 특구 원곡동에는 많은 어린이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 동화책과 같이 우리 어린이들이 다문화 어린이들과 행복하게 살도록 따듯하게 손잡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유엔 어린이헌장과 같이 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계 속의 한국 어린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5. 전국 초등학교 축구시합
다음 달, 5월 5일 어린이날, 드디어 제55회 전국 초등학교 축구대회가 서울 용산 효창공원에서 거창하게 개최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 동상 앞에서 벌써 열흘째 리그전 경기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본선 경기 역시 서울의 대표팀으로 덕수초등학교의 경기 능력이 가장 뛰어났습니다. 그다음 부산, 대구, 광주의 대표팀들이 마지막 4강에 오르기 위해 진땀을 흘렸습니다. 덕수초등학교는 국가대표 출신 감독을 영입하는 등 오랫동안 철저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권두경 우산소녀
경기도 대표인 새날초등학교는 8강에서 승부차기로 겨우 올라와 준결승을 힘겹게 통과하고 결승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짬룽이 잠적한 사건이 벌어져 황금시기에 약 한달간의 공백이 그대로 드러났던 것입니다.
유년 축구 꿈
KBS와 유튜브 등에서는 전국 각 시도에서 최종 선발되어온 팀들의 마지막 경기여서 열기가 한껏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관중석도 연일 만원이었습니다.
결국 마지막 날 준결승을 힘겹게 통과해서 결승전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안산시민들은 TV 앞에서 더욱 가슴을 졸였습니다. 새날초등학교와 새롬초등학교는 물론 안산시내 전 초등학생들까지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감독의 지시로 짬룽이 두 번째 교체선수로 운동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역시 중앙 포지션 최종 공격수로 뛰었습니다. 이제 연장전 종료 시간이 17분밖에 안 남았습니다. 등번호 11번 짬룽은 키도 작고 몸도 약한 듯했지만 패스가 치밀했습니다.
패스는 이강인 선수같이 잘하고 슛은 손흥민 선수처럼 결정적인 감아차기가 특기였습니다. 연장전 제한 시간까지 상대방 골대 앞에서 짬룽은 표범같이 날았습니다. 거의 짬룽이 혼자 공격하고 있는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판 골대 앞에서 찬 슛이 상대 선수의 머리를 맞고 나가는 바람에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서울의 덕수초등학교와 승부차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승부차기도 4 : 4 피를 말리는 승부차기가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덕수초등학교의 마지막 선수의 슛이 하늘로 솟구쳤습니다. 이제 새날초등학교의 차례가 왔습니다. 짬룽의 왼발이 공기를 갈랐습니다. 촤악! 상대 골키퍼의 손끝을 때리고 그대로 골망에 꽂혔습니다.
곡사포보다 더 빠른 슛의 속도는 얼마나 강했는지 골키퍼의 손끝을 밀고 그대로 날았으니까요. 결국 짬룽의 주특기인 감아차기 명쾌한 한 골이 마지막 그물망을 출렁이게 했습니다.
최종 5 : 4 새날초등학교의 역사적 우승으로 끝났습니다. 와 와! 축구부 창단 11년 만의 3연패입니다. 그것은 짬룽의 통쾌한 한판승이었습니다. 감아차기란 손흥민 형이 개발한 고도의 기술입니다.
손흥민 네이버 이미지
발끝으로 예리하게 돌려 차 넣는 짬룽 선수의 명장면이 재현된 것입니다. 안산의 시민들 또한 시청 앞 광장 특설무대에서 대형 텔레비전으로 ‘붉은 악마’ 같이 눈물로 응원하였습니다. 월드컵 4강 때의 열기가 안산을 다시 뒤덮었습니다.
짬룽의 어머니도 중환자실에서 아들의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아버지와 시나나, 라오라오는 어머니의 희미해져 가는 맥박의 손목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두경이는 짬룽의 어머니 이마를 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현수와 왕짱구도 같이 더운 물수건을 갈아주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새날초등학교 전교생 앞에서 짬룽이 구령대 위에 올라가 교장 선생님에게 전국축구대회 3연패 우승기와 우승컵을 선수단 대표로 올렸습니다. 안산교육장, 안산시장, 안산시 국회의원, 도의원, 그리고 시의원까지 참석해 주었습니다.
짬룽의 대회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어 트로피와 장학금을 전달받았습니다. 새날초등학교 축구부에게는 경기도 체육발전기금의 지원과 중학교에 진학시 축구 특기생으로 갈 수 있도록 결정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교용노동부 장관의 특별지시로 짬룽 가족의 상황을 참작하여 그 부모에게 3년간 체류 연장 특별조치를 공표하였습니다. 이제 불안한 불법체류자 신분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즉시 여권 연장과 취업비자를 다시 발급해 주었습니다. 또한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반월공단 산재병원에서는 치료비를 무료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6학년 6반 교실에서는 방과 후에 친구들이 짬룽 나이 숫자에 따라 12개의 촛불을 켜고 우승 축하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경이가 ‘사랑하는 짬룽 가족에게’ 라는 제목의 시 낭송도 해주었습니다.
주제는 먼 훗날 언젠가 짬룽이 라오스 축구 국가대표가 되어 월드컵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입니다.
짬룽의 아버지가 취업해 있던 건축회사가 00다국적 회사와 합병되면서 전 직원들에게 밀려있던 1년 치 월급이 한꺼번에 나온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이 월급을 다 받으면 라오스에 귀국하여 한국 음식 전문점을 낼 것이라는 어머니의 큰 꿈도 현실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결국 눈을 감았습니다. 폐암 신경세포가 뇌까지 퍼진 것입니다. 짬룽이 학교에서 받은 장학증서 등을 가슴에 안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머니의 얼굴에는 이미 죽음의 흰 헝겊이 씌워져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죽음을 일부러 알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짬룽의 학교행사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알리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짬룽은 헝겊을 가만히 젖히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이마를 쓰다듬었습니다. 순간 깜짝! 엄마의 눈이 활짝 떠지면서 미소와 함께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짬룽의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모두 눈이 휘둥그레 놀랐습니다. 그러나 다시 맥이 풀리며 어머니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마지막까지 아들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짬룽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자 마지막으로 편안한 눈을 감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방안 모두가 참았던 눈물의 폭포가 쏟아졌습니다.
라오스 민속 조각품
짬룽의 어머니 장례식을 다 마치고 나서 짬룽의 아버지가 두경이와 현수, 왕짱구를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가장 어려울 때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란다”
짬룽 아버지가 가만히 다가와 말했습니다.
“어쨌든 이번 여름방학에는 라오스의 시나나 집에 한번 가는 게 어때?”
“라오스의 딱따구리 생태도 관찰하고 싶은데….”
“좋은 생각이야, 짬룽의 축구부에도 제안해보자.”
두경이의 말에 현수도 맞장구쳤습니다. 짬룽이가 현수의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두경이는 시나나를 암탉같이 가슴 깊이 품었습니다. 왕짱구는 라오라오를 무동 태우고 방안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우리나라 수도 비엔티안, 그리고 우리 고향 루앙프라방도 구경시켜 줄 거야, 우리 할아버지의 고기잡이배도 태워 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