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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권태주 Aug 18. 2023

40년 만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의 선생님

1983년 3월 풋풋한 20대의 얼굴로 만났던 우리들. 2023년 8월 회갑의 나이가 되어 만났습니다. 4년의 교육대학교 생활을 같은 과에서 함께하고 각자 근무지로 뿔뿔이 흩어져 선생님이란 사명을 담당하며 교단을 지켜왔습니다.

벌써 교직을 은퇴한 친구가 여럿이고 현직에는 교장으로서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인생길에 어찌 고난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서로 담소를 나누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교단의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며 제자를 사랑한 한 선생님의 일화를 공유했습니다.


선생님의 선생님


초등학교 K여교사가 개학 날 5학년 자기 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들을 똑같이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앞줄에 구부정하니 앉아 있는 작은 남자아이 철수가 그 반에 있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K 선생은 철수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옷도 단정치 못하며 잘 씻지도 않는다는 걸 발견하였다.

그런 철수를 보면 기분이 불쾌해질 때가 많았고 끝내는 철수가 낸 시험지 위에 커다란 빵점을 써넣는 것을 즐거워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K 선생님이 있던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의 지난 학년 생활기록부를 모두 읽어 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철수 것을 마지막으로 미뤄두다가 철수의 생활기록부를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철수의 1학년 생활기록부


“잘 웃고 밝은 아이임.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예절이 바름. 함께 있으면 즐거운 아이임.”


철수의 2학년 생활기록부


“반 친구들이 좋아하는 훌륭한 학생임. 어머니가 불치병을 앓고 있음. 가정생활이 어려울 것으로 보임.”


3학년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마음고생을 많이 함. 최선을 다 하지만 아버지가 별로 관심이 없음. 어떤 조치가 없으면 곧 가정생활이 학교 생활에 까지 영향을 미칠 것임.”


철수의 4학년 생활기록부


“내성적이고 학교에 관심이 없음. 친구가 많지 않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기도 함.”


여기까지 읽은 선생은 비로소 자기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한없는 부끄러움으로 크게 반성하였다.


스승의 날


반 아이들이 예쁜 리본으로 포장한 멋진 선물을 가져왔는데, 철수의 선물만 식료품 봉투의 두꺼운 갈색 종이로 어설프게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더더욱 부끄러워졌다.

K선생은 애써 다른 선물을 제쳐두고 철수의 선물부터 포장을 뜯었다.

알이 몇 개 빠진 가짜 다이아몬드 팔찌와 사분의 일만 차 있는 향수병이 나오자, 아이들 몇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선생님이 팔찌를 차면서 정말 예쁘다며 감탄하고, 향수를 손목에 조금 뿌리자 아이들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철수는 그날 방과 후에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오늘 꼭 우리 엄마에게서 나던 향기가 났어요.”


그녀는 아이들이 돌아간 후 한 시간을 울었다.


그날 이후 K선생님은 아이들을 진정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K선생이 특별히 철수에게 공부를 가르쳐 줄 때면 철수의 눈빛이 살아나는 듯했다.

그녀가 격려하면 할수록 더 빨리 반응했고 그 해 말이 되자 철수는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너희를 똑같이 사랑하겠다'는 K선생의 말은 거짓말이 되었다.

가장 미워하던 철수를 가장 귀여워하는 선생님이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1년 후에 철수가 졸업할 때 그녀는 철수가 쓴 쪽지를 받았다.


"최고의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6년이 흘러 그녀는 철수에게서 또 쪽지를 받았다.

 

"저는 고등학교를 전교 2등으로 졸업했습니다.

제 평생 최고의 선생님께"


또 6년이 더 흘러 또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이번에는 대학 졸업했고 공부를 더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쓰여 있었다.

이 편지에도 그녀가 평생 최고의 선생님이었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라 쓰여 있었다.

그런데 이번 편지에는 이름이 ‘의사 박철수 ’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늦은 봄에 또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철수가 결혼할 예정인데 아버지마저 몇 년 전에 돌아가셨으니 선생님께서 신랑의 어머니가 앉는 자리에 앉아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기꺼이 좋다고 화답하였고 철수의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그녀는 가짜 다이아몬드가 몇 개 빠진 그 팔찌를 차고, 어머니와 함께 보낸 마지막 크리스마스에 어머니가 뿌렸었다는 그 향수를 뿌리고 있었다.

이제 어엿한 의사가 된 신랑 박철수와 신랑 어머니석의  K선생은 서로 포옹하고 난 뒤 귓속말로 속삭였다.


“선생님, 절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셨고 제가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K 선생은 눈물을 흘리며 속삭였다.


“아니다 철수야!

네가 나의 선생님이다.


훌륭한 교사가 가는 길을 나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너 철수란다.


나는 너를 만나기 전까지 교사가 가야 할 길을 전혀 모르고 있었거든.”


수원 행궁 몽테드 카페

한 친구의 아들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카페 '몽테드'에서 우리들의 대화는 이어졌습니다. 늦었지만 9월 1일 교장으로 취임하는 동기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근무하느라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과 통화도 하였습니다.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린 40년의 세월이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20대의 풋풋한 대학생의 마음들이었습니다. 수원시립미술관과 화성행궁을 둘러보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래. 다들 잘 살아주어서 고맙네. 다음에 웃으며  다시 만나기로 하세.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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