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시인 권태주 우리문학 발행인 Dec 9. 2022
김포 고촌에서 유명한 장어집을 하는 둘째 형님댁을 가려면 동탄 내 집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 방향으로 가다가 올림픽대로를 타면 된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명절 때나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 모이는 곳이 김포 형님댁이다. 가까이 사는 사형제는 명절이면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고 감사예배를 올린다.
김포공항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보이는 행주산성. 권씨 집안의 조상이셨던 권율장군의 사당과 승전 기념비가 있는 곳이라 명절 때는 교육적 의미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참배를 드리는 자랑스러운 곳이다. 권율장군은 늦게 벼슬길에 나갔지만, 임진왜란으로 왜군들이 밀물처럼 쳐들어올 때 호남지방을 지켜냈고, 마침내 한양을 수복하러 군사들을 이끌고 올라오던 길에 오산 지방 독산성 세마대에 주둔했는데 성을 포위한 왜군을 속이기 위해 말이 목욕할 정도로 물이 많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흰쌀을 말에게 부어 왜군이 물러나게 한 지략이 뛰어난 분이셨다.
3만 명의 왜군을 수천의 민관군으로 물리친 행주산성과 서울 강서구를 연결하는 다리가 행주대교이다. 4년 전 설날이 다가오기 며칠 전 이 다리에서 이종사촌 형님이 한강으로 뛰어내린 슬픈 가족사가 있다. 해군사관학교를 우수하게 졸업한 사촌 형님은 해군 소장으로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여러 함대사령관으로 오대양을 누비기도 했고, 국방부에서 해군함정 현대화 사업 단장의 직임을 다하고 군복무를 마쳤다. 워낙 청렴한 분이라 집 한 채를 장만하지 못하고 퇴임 후에도 전세를 사셨다.
집안의 자랑이었던 사촌 형님의 행주대교 자살 소식에 달려간 한강 물은 퍼렇게 멍울져 흘러가고 있었다. 한강순찰대가 추락한 지점을 수색했지만 시신을 찾지 못하고 포기한 상태였다. 소문을 들은 해군 부하들과 유디티(UDT) 대원들이 행주대교 아래 한강 바닥을 목숨 걸고 수색해 마침내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세월호 침몰로 궁지에 몰린 정권에서는 통영함 해군 비리 수사를 통해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던 것이다. 평생 군인으로서의 길을 걸어온 사촌 형님에게는 검찰들의 수사가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았을 것이라 추측되었다. 이른 새벽 행주대교 위에 승용차를 세워두고 가지런히 구두와 유서를 남긴 채 생을 마감한 사촌 형님. 그 아픔을 다리 건너에 있는 김포 둘째 형님을 만나 털어놓았다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명절이면 모이는 우리 형제들의 이야기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 무혐의로 판명되었고, 대전 국립현충원에 사촌 형님을 안장하던 날. 선후배 군인들의 눈물과 회한이 가득했지만 한목숨 던져서 해군의 명예와 후배들을 지켜내고자 했던 참 군인 함원용 제독을 그들은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 진실은 하늘이 알아주는 것이니 함원용 해군 제독님. 고이 영면하소서.
* 故 함원용 해군제독(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