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FC의 플레이오프 준결승전.
매진된 홈구장은 경기 시작 전부터
붉은 석양 아래로 거대한 함성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손흥민은 몸을 풀며
관중석의 플래카드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다름은 힘이다.”
“침묵이 빛이 되었다.”
어쩐지 가슴 밑바닥이 따뜻해졌다.
그의 지난 경기의 골은 단순한 득점이 아니라
차별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1. 준결승, 마지막 10분
경기는 치열했고,
스코어는 1:1로 맞선 채 시간이 흘렀다.
연장으로 갈 분위기였다.
하지만 후반 35분.
LAFC는 마지막 기회를 맞이했다.
왼쪽 측면에서 크로스가 올라왔고,
손흥민은 그 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그는 한 번에 다가가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발목을 튕기듯 볼을 감아 올렸다.
슈우우우욱—
공은 수비 세 명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며 낮게 휘어 들어갔다.
골.
경기장은 폭발했다.
해설진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또다시! 손흥민!!!
그는 오늘도 말 대신 축구로 대답합니다!”
LAFC 선수들이 달려왔지만
손흥민은 잠시 하늘만 바라보았다.
별빛은 어제보다도 더 선명했다.
2. 라커룸, 예상치 못한 호출
승리의 분위기 속에서
구단 단장은 손흥민에게 조용히 종이를 내밀었다.
“토트넘에서 공식 요청이 왔어.
임대 종료와 동시에 복귀를 원해.”
잠시 공기가 멈췄다.
LA에서 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했던 약속,
바론의 한 문장,
경기장에서의 침묵과 용서—
그 모든 순간이
그를 단순한 선수에서 ‘이야기’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제가 떠난다고
팬들이 실망하지 않을까요?”
단장은 미소 지었다.
“아니.
너는 이미 이 도시의 일부야.
떠난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지.
빛은 남는 법이니까.”
손흥민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3. 공항, 그리고 기다리는 기자들
며칠 뒤.
LA 국제공항에는
이미 수백 명의 팬들이 몰려 있었다.
아이들이 만들었을 법한 글씨체로 적힌 플래카드가 보였다.
“SON, WE WILL WAIT.”
“ONCE LA, FOREVER FAMILY.”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영국 가서도 침묵의 골 보여줘요!!”
손흥민의 눈가에
희미하게 물기가 맺혔다.
그래, 이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4. 다시 런던으로
히스로 공항에 내린 순간,
런던의 공기는 여전히 비 냄새가 났다.
옛 동료들과 팬들은 그를 반갑게 맞았다.
그러나 토트넘 락커룸 앞에서
그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문 앞에는 구단이 준비한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카드를 열자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Welcome back, Son.
We heard America changed you.”
그는 미소 지었다.
미국에서의 짧은 시간이
그에게 남긴 건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그는 생각했다.
침묵은 여전히 내 무기다.
하지만 이제—말도 할 수 있다.
그 순간,
기자단에게 둘러싸인 한 소년 팬이 말했다.
“손흥민, 왜 돌아왔어요?”
손흥민은 조용히 대답했다.
“다름을 말할 필요가 있을 때는
돌아와야죠.
여기서 또 시작하려고요.”
소년의 얼굴이 환하게 웃었다.
손흥민은 드디어
토트넘의 유니폼을 다시 들었다.
새로운 번호.
새로운 시즌.
하지만 변하지 않은 한 가지.
그는 여전히 그라운드에서 말하는 선수였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미 속삭이고 있었다.
“이제는 실력이 아니라
철학까지 가진 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