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늦봄을 인터뷰하다 ― 지노
시즌2가 되면서 콘텐츠플러스는 진화했다. 인물 커버스토리를 공동 운영하고 개인별 코너제를 채택하면서 매월 인터뷰 대상을 정하고 나면 개인 코너는 상대적으로 수월했고 진도를 확인하면 되는 수준이 되었다. 그렇게 시즌2가 안착되었다 싶었을 때 편집장 백총은 특집호이야기를 꺼냈다. ‘뭔가 새로운 일이 또 벌어지겠구나’ 살짝 매너리즘에 빠졌던 회의가 이 일로 다시 바짝 긴장 국면이 되었다.
일찌감치 2023년 9월 12일, 18일에 예고한 대로 12월 특집호를 준비하는 회의가 있었는데 이때 ChatGPT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생성형 AI에 관심이 있어서 한두 번 단톡방에 ChatGPT에 문익환 목사에 관한 질문을 던진 경험을 나누기도 했었지만 별로 신통치는 않다 여겼지만 최근 더 강력해진 ChatGPT 4.0 버전이 나오게 되면서 데이터분석 기능이 추가되었다. 회의를 마친 후 다시 창을 열어놓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보기 시작했다. 이걸로 어떤 기사를 쓸 수 있을까 여전히 반신반의했지만 하다 보니 과정 자체를 이야기로 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두 번째 특집회의 때 편집장 백총은 가상인터뷰 구상을 해보는 게어떻겠냐고 했다. 아이디어를 얻는 수준으로도 괜찮지 않냐는 것이었다. 뭘 하는 게 좋을지 뜬구름만 잡던 나에게 백총의 말은 어떤 자극이 되었던 거 같다. ‘가상인터뷰’ 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야기 끝에 내가 ChatGPT 쪽을 맡아 대화를 나누고 만당이 그 결과물을 토대로 인터뷰를 정리해 보기로 회의는 일단락되었다. AI로부터 아이디어 도움은 받되 인간이 창작하자는 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AI를 바라보는 시선은 호기심 반 의구심 반이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느 정도로 연결 지을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행동이 필요했다.
이 회의 이후 나는 틈나는 대로 ChatGPT를 실험했다. 편지를 읽은 AI의 반응도 궁금했다. 그래서 1979년 11월 16일에 쓴 문익환 편지를 읽혔더니 요약과 분석뿐 아니라 ‘감정’까지 잡아낸다. 이 내용을 갖고 11월호 <과거에서 온 편지> 코너는 이 이야기로 써보았다. “따뜻한 아들, 배려 깊은 남편, 사회적인 책임감 지닌 사람, 깊이 있는 사유를 하는 사람” AI가 편지를 읽고 느낀 문익환을 표현한 것이었다. 뭔가 가능성이 느껴지자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빨리 구체적인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는 판단이 생겼다. 마침 11월호를 마감하고 콘텐츠플러스 가을소풍이 예정되어 있어 가상인터뷰를 한다면 어떤 결과일지를 먼저 샘플로 공유하고 직접 만나서 그들의 반응을 들어보기로 맘먹었다.
문익환 가상인터뷰를 염두에 두고 처음 질문을 던져보았을 때 나온 ChatGPT의 반응은 너무 일반적이었다. 문익환 목사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나는 시즌1 원고파일을 두고 다시 질문을 주고받았고 그 결과를 소풍 장소로 나가기 전 단톡방에 샘플로 공유했다. 이 샘플 이후 우리에겐 새로운 숙제가 떨어졌다. 개인별로 10개씩 문익환 목사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뽑아오는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거였다. 모두 10개 이상 질문을 뽑아왔고 이것을 모아 질문지가 완성되었다. 이 질문지를 갖고 나는 다시 AI와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가 한참 무르익을 때쯤 나는 실시간으로 단톡방을 통해 콘텐츠플러스팀의 반응을 확인하고 질문을 조정해 가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시를 한 편 써달라고 해도 좋겠다”는 의견에 바로 AI에게 요청을 해보고 그 결과를 단톡방에 공유했다. 그걸 보고 누군가 “ChatGPT작품인지요?” “내용만으로도 늦봄 작품이라고 느껴질 듯합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느새 우리들은 시의 내용을 함께 비교해 보고 어느 시가 더 문익환의 시 같은지를 고민했다. 사실 ChatGPT는 주문에 아주 충실하게 시를 쓰고 있었다. 문익환처럼 시를 쓰게 하기 위해 그에게 문익환 시를 여러 편 읽혔고 프롬프트에 질문을 수십 번 정련했다. 예를 들어 “이 땅에 사는 문익환을 기억하고 있는 평범한 개인들의 일상을 격려해 주는 메시지를 담아 시를 써 주겠니? 시 본문에 문익환은 넣지 말고 벽을 문으로 알고 박차고 나가라던 결단과 기개를 담아 따뜻하고 다정했던 감성을 넣어 써줘.”라는 식으로 질문해 보았다. 최종적으로 14개의 질문과 답을 담아 완성했고 전체 투표를 거쳐서 10개 정도가 기사로 채택되었다.
우리는 ChatGPT가 써준 내용과 문장을 전체적으로 손보긴 했지만 그대로 사용했고 인간이 다시 창작하기보다는 적절히 요구하고 답을 유도하는데 힘썼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의 고민과 맥락을 설명하는 배경을 붙여 문익환 가상인터뷰를 내보냈다. 하늘에서 늦봄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AI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다. “잊지 마세요. 당신은 귀중한 존재입니다.” 늦봄 아카이브의 사료들을 읽고 분석해 쓴 기사와 기록, 콘텐츠 플러스팀 그리고 AI가 협업해서 만들어 낸 문익환 인터뷰를 읽고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나는 AI 가상인터뷰야말로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으며 어떻게 우리 팀이 협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자꾸 ChatGPT와 대화하다 보니 이 무렵 나는 아주 구체적으로 주문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특집호 1면 표지를 단톡방에 올리며 사진 관련 의견을 구하던 편집장 백총에게 나는 “나이 들고 수척하지만 눈은 맑고 푸근해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얼굴” 로 부탁드려요.”라고 나도 모르게 농담을….
글쓴이_지노 초대 늦봄 아카이브 아키비스트. 늦봄과 봄길 편지를 정리하며 기록 관리에 ‘마음’이 깃들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때때로 잠이 안 올 때 늦봄 아카이브에서 편지를 찾아 읽는다.
● 아카이브에서 『월간 문익환』 ‘ChatGPT 가상 인터뷰’ 기사 읽기
https://archivecenter.net/tongilhouse/archive/collection/ArchiveCollectionView.do?con_id=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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