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들의 고백 수기 ― 백총
그들은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사업회 행사가 있을 때나, 아니면 평범한 주말 오후에 그저 슬며시 찾아와 묵묵히 마당을 청소하고, 고장 난 집 곳곳을 수리하고, 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마이크를 세팅하고, 행사 진행을 맡아서 한다. 찾아온 손님들을 위하여 일일이 커피를 준비하고, 현장을 기록하며 사진 봉사를 하기도 한다. 누구는 또 늦봄이 누워계신 모란공원 묘역을 돌보고, 아카이브 사업을 물심양면 지원하기도 한다. 아끼던 소장품을 기꺼이 내주고 사비를 쾌척해 행사를 후원하기도 한다. 그들은 왜 아무런 보상도 없이 이렇게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수고를 아끼지 않을까? 도대체 왜? 궁금했다.
<나와 늦봄>은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했다. 늦봄과 어떤 인연의 실타래를 갖고 있기에, 돌아가신 지 30년이 넘은 지금 이 시점에도 저리 밝은 얼굴로 헌신할 수 있는지, 그 사연을 듣고 싶었다. 그들을 봉사의 장으로, 헌신의 장으로 이끈 늦봄과의 끈이 어떤 것인지 소개하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너무나 고맙다고, 엉덩이 툭툭 쳐주고 싶었다.
시즌2부터 새로 연재한 <나와 늦봄>이란 코너를 통해서, 12명의 봉사-후원자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써냈고 『월간 문익환』은 이를 수기형식으로 소개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통일의집 사진작가 권산 편. 아이러니하게도 권 작가는 90년대 초 시위를 진압하는 의경으로 근무해서 늦봄 등 민주화 세력을 적으로 알고 증오했었다고 한다. 권 작가는 “그때 ‘이념이라는 가면’에 눈이 멀었었는데 후일 통일의집과 인연을 맺으면서 이젠 평화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라고 했다.
매주 청소 봉사를 하는 장영직 목사는 “뒷동산 풀 깎으면 벽화 속늦봄이 환하게 방긋하며 웃어서, 되레 선물 받고 오는 기분”이라고 했고, 벽화를 그린 레오다브 작가는 “개관식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웃으시는 목사님의 모습에 마지막 빈칸이 아이들의 미소로 채워진 느낌”이라고 했다.
통일의집 복원공사를 담당한 이종필 실장은 “대문 복원하기 위해 찾아본 사진이 늦봄이 내게 손 흔들어주는 것 같아서 눈물을 흘렸다”라고 했고 마당 봉사하는 황경선 님은 “땀 흘리는 시간이 봉사가 아니라 힐링”이라며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87년 대학 1학년 때 이한열 장례식에서 오열하시는 늦봄을 본 이상호 대표는 그때 문익환이란 이름 석 자를 가슴에 각인하고 통일의집 개관 때부터 매번 행사 때마다 방문객에게 커피를 대접하고 있다. 한때 늦봄의 수행비서였던 임윤호 대표는 “잘할 수 있는 게 음향”이라며 “회사 문 닫을 때까지 후원하겠다”라고 약속했고, 행사연출을 담당하는 최소진 님은 “늦봄에게 진 마음의 빚을 나의 방식으로 되갚고 있다”라고 했다. 아카이브센터의 정혜지 님은 “아카이브에서 만난 늦봄에 스며들었다”라고 고백했고, ‘평화나무 농장’ 원혜덕 님은 “풀무원 동지들 늘 푸르거라”라는 글을 잊지 않고 계신다. 목사님이 누워계신 모란공원에서 묘역관리 하시는 ‘모란공원사람들’의 이야기도 우리를 숙연하게 했던 감동적 스토리였다.
늦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늦봄에 대한 빚을 지고 있는 심정일 것이다. 늦봄의 별세 소식에 “내 결혼식 때 주례 서 주신다면서….”라며 통곡한 조정필 이사의 마음처럼, 그를 향한 뜨거운 마음들이 <나와 늦봄>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늦봄은 가슴속에 살아있다. 그래서 <나와 늦봄>의 이야기는 여전히 가슴 깊이 묻혀 있고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나올 <나와 늦봄>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쓴이_백총
전직 편집기자. 조직의 장이 되길 한사코 거부하는 I형 인간이지만, 조판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편집장을 떠맡았다. “안 해도 된다”라며 편하게 해 주는 척 하지만 알고 보니 원고 떠맡기기의 고수다.
● 아카이브에서 『월간 문익환』 ‘나와 늦봄’ 기사 읽기
https://archivecenter.net/tongilhouse/archive/collection/ArchiveCollectionView.do?con_id=2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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