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를 뒤지며 늦봄이 옥중에서 읽은 책들 찾기 ― 영옥
<늦봄의 서재>는 23년 10월호부터 24년 4월호까지 연재했다.
늦봄은 감옥에서 도서열독허가증을 받아 많은 책을 읽었다. 도서열독허가증은 감옥에서 가족들이 보낸 책을 검열하여 통과된 책에 붙어있는 표식이다. 늦봄은 책을 읽고, 봄길이나 자녀들에게 보내는 옥중편지에 작가에 대한 평을 쓰고, 읽기를 권하기도 했다.
<늦봄의 서재>에 소개된 작가는 이오덕, 서준식, 이철용, 송건호, 현기영, 고정희 등 늦봄과 인연이 있거나 아니면 감동받은 책의 작가이다. <늦봄의 서재> 코너를 쓰기 위해 우선 옥중편지 속에서 가려낸 작가 중 내가 소장한 책이 있거나 한 권이라도 읽어본 작가를 그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늦봄의 서재>를 연재하면서 그동안 뜸했던 도서관 서가를 뒤적이는 일이 늘었다. 시력이 나빠져 한두 시간 읽고, 쉬고, 다시 한두 시간 읽고 쉬기를 반복하지만, 도서관을 나올 때면 방향을 잃어 집을 돌아서 가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늦봄이 편지에서 언급한 작가의 책을 모두 뽑아놓고 읽거나 훑어보며 늦봄의 작가에 대한 생각을 찾는 것으로 시작했다. 절판된 책은 알라딘의 매장을 다니며 구입하기도 했다. 헌책을 사서 읽는 이유는 늦봄이 감동한 부분을 찾아, 나의 독서 습관인 줄 긋기를 하고 싶어서다.
첫 번째(23년 10월호) 작가는 이오덕이다. 평소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있던 터라 이오덕이 지은 책은 여러 권 가지고 있다. 이오덕과 늦봄의 교류는 매우 흥미로웠다. 늦봄은 이오덕의 책을 가보로 남기겠다고 할 정도였다. 이오덕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늦봄은 구약을 번역하면서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에 대한 고심이 두 분을 만나게 했다. 이오덕은 아이들의 말에서 우리말의 배웠고, 늦봄은 교회에 나오시는 할머니들한테서 우리말을 배웠다고 한다. 살아있는 우리말이 어디에 근원을 두는지 알려주는 대목에서 두 분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늦봄의 서재>를 쓰면서 두 분의 언어에 대한, 글에 대한 인식에 공감하고, 두 분이 만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두 번째(23년 11월호)는 서준식이다. 서준식은 동생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을 읽으면서 알게 된 분이다. 늦봄은 1989년 7월 12일, 5번째 수감 중에 서준식의 『옥중서간집』을 받고 편지를 쓴다. 서준식에게 보내는 편지에 “옥중서간을 옥중에서 읽는다는 건 이중으로 가슴 뭉클한 경험이죠.”라고 한다. 옥중에서 누군가의 『옥중서간집』을 읽는다는 아이러니가 가슴 아프다고 한다. 당시 시대적 배경 탓이겠지만 옥중서간집을 여러 사람들이 발간했던 것이다. 늦봄은 그중 서준식의 『옥중서간집』이 진솔하지 않은 데가 없다며 17년을 옥살이하면서도 민족정신을 잃지 않는 진솔한 글을 칭찬한다. 그리고 서준식과 같은 이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한국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한다. 서준식은 1971년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7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때 동생 서경식에게 보낸 편지에 “나에게 독서란 도락이 아니라 사명이다”라고 했다. 당시 고문과 여러 징벌 중 수개월간의 ‘독서금지처분’도 있었는데 서준식에게 독서 금지는 신체적 고문 못지않았을 것이다. 꾸준한 독서와 생각의 삶이 늦봄을 감탄하게 한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서준식을 알기 위해 구매한 『서준식 옥중서한』은 831쪽이나 된다. 게다가 글자 크기가 8포인트 정도. 이 책을 과연 다 읽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세 번째(24년 2월호)는 송건호다. 늦봄은 송건호의 글에서 ‘이성’, ‘지성’이란 말이 ‘양심’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을 보며, 양심이란 변절을 정당화하는 능력을 가진 이성과 지성이 흔들리지 않게 바른 판단들 내릴 수 있는 맑음이요, 날카로움이라고 평가한다. 늦봄은 송건호의 회고담을 읽고 송건호가 지키려는 언론 자유는 이성, 지성, 양심을 동의어로 사용하는 데서 이뤄낼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늦봄은 송건호의 이런 통일된 인격을 윤동주의, 장준하의 삶에서 찾는다. 송건호의 회고담 책을 찾지 못해, 대신 『송건호 평전』을 읽으며 송건호의 언론관이 권력자의 시선 대신 역사의 시선을 의식했다는 언론관과 인생관이 늦봄을 감동케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네 번째(24년 3월호)는 현기영이다. 늦봄은 현기영의 책을 읽고 봄길에게, 또 아우(문동환)에게 옥중편지를 보낸다. 봄길에게는 『바람 타는 섬』을, 아우에게는 『아스팔트』을 읽은 감상이 그 주된 내용이다. 제주도 해녀의 항일투쟁을 그린 『바람 타는 섬』은 여성들의 필독서라며 봄길에게 읽기를 권한다. 아우에게 보낸 편지에는 『아스팔트』를 읽고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늦봄의 눈물에 공감한다. 나 역시 제주 4ᆞ3 당시 산사람과 토벌대 사이에서 피해를 겪는 주민들의 애환을 담은 『아스팔트』를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졌으니까. 늦봄은 현기영은 작품 속의 슬픔으로 아무도 미워할 수 없는 큰마음을 갖게 한다며, ‘가난한 마음은 맑은 마음이요. 맑은 마음은 곧 슬픈 마음’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어진다.
제주에 가면 곳곳에 4.3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너븐숭이 4.3기념관에 있던 현기영의 『순이삼촌』 조형물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며 머물렀던 기억, 강의에서 처음 만난 70세의 현기영 작가 모습이 작품을 읽는 내내 어른거렸다.
다섯 번째(24년 3월호)는 이철용(이동철)이다. 1982년 감방에서 일곱 번째 맞는 추석을 맞이하는 늦봄은 손이 남기는 유적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지만 발바닥 자국에는 용기, 즉 하느님의 마음이라며 발바닥으로 살 것이라고 봄길에게 알린다. 이어 이철용 장로의 『어둠의 자식들』과 『꼬방동네 사람들』만큼 발바닥 자국들의 인정을 물씬 느끼게 해 준 글이 별로 없다고 전한다. 이철용은 기지촌에서 태어나 범죄, 아동학대, 매춘, 살인이 일어나는 동네에서 살았다. 보통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할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온전히 손바닥이 아닌, 발바닥의 기억들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을 때 길에서 답은 찾는 나는 늦봄의 생각 끝자락에 나를 대입시켜 보며 늦봄에 다가가려고 한다.
여섯 번째(24년 4월호)는 고정희 시인이다. 늦봄은 고정희 시인과 관련된 편지를 봄길과 아들 호근에게 여러 번 보낸다. 고정희 시인이 사고로 죽은 지 1년이 되는 1992년 6월 9일 아들 호근에게 보낸 편지에 고정희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호근이 답장에서 고정희의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시 제목이 번역투의 겉멋이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늦봄은 1992년 6월 24일 호근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의 허술함과 미숙함은 오히려 미덕이 될지도 모른다고 슬며시 옹호한다. 아들과 아버지의 시인에 대한 대화가 논쟁보다는 따뜻한 배려가 보인다. “정희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특권”이라며 “은숙(며느리)이도 읽어라.”라고 당부한다.
고정희 시인의 시는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시를 단편적으로 읽었을 뿐이다. <늦봄의 서재>를 쓰면서 알게 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정희의 시 곳곳에서 수유리와 한신대를 만날 수 있다. 수유리를 떠나지 못하는 내력을 시로 써냈다. <다시 수유리에서>, <수유리의 바람> 등. 우리 삶에서 지역이, 동네가 개인의 삶에 어느 만큼 영향을 미치는지를 그녀의 시에서 알 수 있었다. 자기를 품어준다고 느끼는 동네를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각자 선택하든, 우연히 만났든지 말이다.나는 1주일에 한 번 한신대 서울캠퍼스 장공도서관에 있는 늦봄 수장고에 간다. 가는 길 어디쯤에 고정희 시인의 시선이 머물렀을지 가늠해 본다.
글쓴이_영옥
윤동주를 좋아하다 늦봄을 알게 됐다. 1주일에 한 번 수장고에서 도서 입력 작업을 하고 있다. 책 만지는 것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더디고, 틀리고, 잊어버리고… 그래도 한다.
● 아카이브에서 『월간 문익환』 ‘늦봄의 서재’ 기사 읽기
https://archivecenter.net/tongilhouse/archive/collection/ArchiveCollectionView.do?con_id=2357
● 교보문고에서 종이책 구매하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066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