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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아카이브 자원봉사 활동 경과와 성과, 방향

자원봉사 통해 콘텐츠 제작자, 시민 아키비스트가 되다 ― 만당

by 콘텐츠플러스

늦봄 아카이브 수장고에서의 자원봉사는 올해 9월로 만 3년을 채운다. 2021년 9월 중순 통일의 집 방문이 시초다. 처음 참여한 일은, 디지털화가 끝난 문서나 편지를 봉투에 넣고 라벨 번호를 붙이는 일부터, 액자 등 박물류를 보관하기 용이하도록 포장하는 기초적인 작업이었다.


문 목사 내외분의 손때 묻은 귀한 사료를 처음 만났다. 11월 말, 9주간의 공식적 봉사활동을 마치는 마무리 시간에 참여자 모두가 보람 있었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공식 활동 종료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를 더 이어가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모두가 생경한 일에 재미 붙여서일까? 귀한 사료 옆에 계속 머물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까? 회의 기록을 찾아보니, 사료 정리를 넘어 아카이브 사용자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해보자고 누군가 말한 사실도 발견된다. 나로서는 오히려 봉사하는 것 자체가 좋아서였던 것 같다. 그간 내세울 만한 자원봉사 경험이 없었다. 어쨌든, 봉사라는 걸 하고 싶었다.


해를 넘겨 2022년, 봉사 팀은 전·현직 관리자인 지노, 에바와 함께 ‘콘텐츠플러스’를 발족하고 『월간 문익환』 발행을 시작했다. 시간에 쫓기며 글쓰기에 집중하는 와중에도, 매주 1회 수장고 자원봉사는 중단하지 않고 병행했다.


이 시점부터의 봉사활동은 본격적인 아카이브 과정의 경험이었다. 수장고에는 실물 사료인 옛날 편지가 많다. 늦봄 내외와 부친 문재린 목사의 편지다. 수백 편에 이른다. 분류는 이미 되어 있지만 디지털기록으로 전환해야 할 게 많이 남았다. 전사 작업, 즉 컴퓨터 입력을 시작했다.


1950년대~1960년대 주고받은 늦봄과 부친의 옛날 편지는 한자투성이었다. 획수를 축약하거나 흘려 쓴 한자가 많다. 한자 해독이 최대의 난관이다. 10페이지나 되는 긴 편지도 있으니, 이런 편지 하나를 전사하느라 하루를 써버릴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결 못 할 이유가 없다. 집단지성이 빛을 발했다. 50세 넘은 퇴직자들은 한자 세대로서 역량을 발휘하고, 젊은 에바는 한국학 자료 포탈과 한자 필기 인식 앱을 적극 활용한다. 머리를 맞대고 문맥을 살핀다. 드디어 해독해 내고 “야호” 환호와 함께 자화자찬!


IMG_3316_Original.jpg 문익환 목사의 부친 문재린 목사의 노트. 문재린 목사의 글씨체는 난이도가높아서 봉사자들은 “암호를 해독하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봉사활동은 2023년 하반기 박용길 편지(‘당신께’) 아카이빙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다. 2,300여 통을 편지 전부를 아카이브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되도록 한 것이다. 전사 안 된 편지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들을 노트북에 옮겨 적는 데는 끈기와 인내심이 필요했다. 제목 붙이기는 두뇌 회전을 요구했다. 1단계로 먼저 엑셀 표에 정리한 후, 몇 가지 주요 항목을 아카이브 시스템에서 수동으로 복사해 붙임으로써 완결된다.


이 작업은 정부 지원 프로젝트로 진행된 기간을 포함하여 최종 마무리까지 약 6개월이 걸렸다. 아카이브에서 박용길 편지를 접할 때마다 우리가 애쓴 결과임에 매우 뿌듯하다.


3년간의 자원봉사로, 우리 팀은 아카이브 구축의 협조자로 일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 아키비스트 지노가 우리에게 “시민 아키비스트가 다 되었다”며 칭찬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이런 아카이빙 일에는 젊은 세대보다 우리 같은 퇴직자가 참여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효율과 효과가 더 높지 않을까 한다.


매주 1회 수장고 봉사는 『월간 문익환』 콘텐츠 제작에 비하면 쉬운 일이다. 부담 적고 강도 낮은 일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봉사는 적당히 해도 그만일까? 그건 분명히 오판이다. 콘텐츠 제작이 식물 생명체라면 수장고 봉사는 식물을 자라게 하는 토양과도 같다는 생각이다. 왜 그럴까?


수장고에서 늦봄 전집과 저서를 뒤져보는 일, 수장고를 꽉 채운 보관 선반을 등 뒤에 두고 함께 작업하며 대화하는 것, 이런 게 글을 쓰는 데 자극과 동력이 되어주곤 했다. 또 편지를 전사하며 늦봄 내외의 삶 속에 잠시 빠져드는 경험은 밤새 원고 쓰기에 몰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게 나의 느낌이다. 수장고와 통일의집을 오가며 우리도 봉사자 아닌 내부인이 되어가는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월간 문익환』에 대한 애착이 깊어진 것 아닌가? 에바가 터줏대감처럼 지키는 수장고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는 날이 많아지며 우리가 이심전심하였기에 『월간 문익환』을 지금까지 키워올 수 있었다.


2024년 하반기, 『월간 문익환』 발행은 휴식 상태지만, 우리는 옛날 편지의 전사 및 검수 등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편지 이외의 많은 사료들은 아직 수장고 박스에 묶인 채 풀릴 날을 기다린다. 저 사료들도 우리 팀의 손을 거치게 될까?


봉사활동을 마치는 오후 4시, 수장고를 나서는 마음은 가볍다.

“오늘도 열일했다.”

“다음 주 뵙지요.”



글쓴이_만당
콘텐츠에 관심 많은 전직 광고인. 퇴직 후 자료의 디지털화 방법에 대해 궁리하다가 아카이브를 알게 되었고, 늦봄 아카이브에 빠져 자원봉사와 콘텐츠 제작에 열중이다.



● 아카이브에서 『월간 문익환』 기사 읽기

https://archivecenter.net/tongilhouse/archive/CollectionGroupView.do?con_group_id=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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