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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신입사원이 본 『월간 문익환』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 기림

by 콘텐츠플러스

처음 문익환 통일의집을 방문했을 때가 기억난다. 입사 면접을 보기 위해 방문했던 2023년 4월. 한창 감성이 촉촉했던 시기라 현관 입구 바로 옆에 있던 문익환 목사의 시 <난 발바닥으로>를 읽고 눈물을 훔쳤더랬다. 면접 보러와서 감동 받아 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속으로 약간 웃기긴 했다.


하느님

이 눈을 후벼 빼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볼 겁니다

이 고막을 뚫어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들을 겁니다

이 코를 틀어 막아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숨을 쉴 겁니다

이 입을 봉해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소리칠 겁니다

단칼에 이 목을 날려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당신을 생각할 겁니다

도끼로 이 손목을 찍어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풍물을 울릴 겁니다

창을들어 이 심장을 찔러 보시라구요

난 발바닥으로 피를 콸콸 쏟으며

사랑을 할 겁니다

장작더미에 올려 놓고

발바닥째 불질러 보시라구요

젠장 난 발바닥으로 자국만으로 남아

길가의 풀포기들 하고나

사랑을 속삭일 겁니다


그 어떤 고난이 와도 사랑하길 멈추지 않겠다는 짙은 읊조림. 이게 문익환 통일의집의 첫인상이었다. 발 두 개를 본뜬 석고 부조 위, 손으로 쓰인 시 한편으로 시작된 전시. 그때 마침 통일의집에서 진행하고 있던 전시가 <월간 문익환전>이었다. 그렇게 전시를 한 번 둘러보고 면접도 보고, 통일의집에서 나오는 길에 관장님이 한 번 읽어보라 손에 『월간 문익환』 한 부를 쥐어주셨다. 아마 2022년 3월호였을 거다. 모든 것이 처음이긴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첫 『월간 문익환』의 모습은 그렇게 남아있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 몇 달 동안도 『월간 문익환』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몰랐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고, 누가 『월간 문익환』 팀의 구성원인지,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어떠한 마음으로 하는지. 내 담당 사업이 아니어서 그냥 아키비스트인 에바가 맡아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려니 싶었다. 전국으로 인터뷰를 하러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막연히 ‘재미있겠다’, ‘나도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긴 했다. 그러다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인쇄 외 대부분의 것들을 자비로 진행하고 있단 사실을 알고서 그런 생각은 쏙 들어갔다. 그리고 머릿속엔 물음표가 솟아 올라왔다.


왜?


시간도 필요하고, 자비도 써야 하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계속 이 활동을 하고 있는걸까? 무엇이 원동력이 된 걸까? 솔직한 심정으로 MZ로서의 편견이 한 반쯤은 멋대로 답을 내리기도 했다. ‘아 문익환 목사님을 그리워하는 소위 586, 686의 사람들이 모여 봉사활동을 하는 거구나.’라든지 ‘역시 운동권 세대는 열정적이다.’라는 것들 말이다.


운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야 할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월간 문익환』에 첫 글을 쓰게 된 건 2024년 1월 경이었다. 1월 13일 마석모란공원에서 진행한 늦봄 문익환 30주기 기념문화제 후기를 현장감 있게 써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렇게 『월간 문익환』 2월호에 내 글이 실렸고, 사정이 생겨버린 코스모스의 뒤를 <그때 그곳>을 이어 써달라는 요청에 따라 물 흘러가듯 집필진에 합류하게 되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내 머릿속에 마구 솟아올랐던 ‘왜’라는 질문에도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월간 문익환』을 만드는 콘텐츠플러스팀을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와 새롭게 보니, 역시나 열정이 넘쳤다. 근데 그 열정의 이유는 문익환 목사님을 그리워해서도, 단순히 86 운동권 세대여서도 아니었다. 2024년 7월 9일 콘텐츠플러스 2차 인터뷰에서 백총이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제가 옛날에 운동권이 아니었기 때문에 살짝 옛날에 트라우마부터 시작해가지고 막 미안함 같은 것도 있고 좀 여러 가지 감정이 그거를 해야 되나 뭐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어차피 아카이브 관련이라는 거에 대한 그게 이제 더 커지고 그걸 한번 배워보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으로 이제 온 거거든요. 근데 깜짝 놀란 게 만석도 그랬다는 거야. 근데 사실은 에바도 늦봄을 몰랐대요. ...그러니까 문익환이어서 여기 온 게 아니잖아요. 하다 보니까 여기 오게 된 거잖아요.


의외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오히려 반가웠다. 이 열정의 근원이 문익환이 아니라니! 나의 바로 윗세대, 민주화운동 세대에게 문익환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와 같은 시간을 살고, 도대체 이들이 그리워하는 ‘큰어른’이란 무엇인지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는 내게 ‘문익환이어서 『월간 문익환』에 합류한 것이 아니다’라는 이들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봉사활동 시작한 후 곧바로 흥분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문익환-박용길(늦봄-봄길) 부부의 편지 사료들을 직접 만지고 대면한 것이다. 감옥 생활 기간 외에도 연애 시절, 미국 유학 시절, 전쟁 시기 등에 주고받은 무수한 편지들, 그 속에 담긴 삶. 사료 정리 중에 아주 잠깐이나마 편지를 읽어보면 마음이 찡했다. (만당_23p)


물론 만당이 느낀 것처럼, 문익환이라는 인물과 그 가족의 이야기 그 자체의 매력은 의심할 여지가 손톱만큼도 없다. 평상시에 내가 하는 글쓰기가 나와의 대화라면, 아카이브와 함께하는 글쓰기는 기록 속 인물과의 대화이다. 유독 문익환이라는 인물 아카이브가 매력적인 이유는, 기록 속에 묻어난 그의 삶과 고뇌가 주는 카타르시스, 묘한 해방감이지 않을까? 영웅적 서사에서 벗어난 한 가족의 사랑 넘치는 일상을 엿보는 그 자체가 마음에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도 하며, 문익환이라는 인물과 비슷한 연배로 세상에 살았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을 이어 상상해 보고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또, 때론 이 작업이 내 삶의 경계를 더욱 확장시키는 경험을 주기도 한다. 문익환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며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타인의 삶에 더욱 공감하고, 감사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타인이 타인이 아니게 되는 경험을 계속하게 된다.


이들을 제대로 안다는 건 곧 역사를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일었다. 한국 현대사를 되짚어보는 기회가 된다. 개별 인물의 생애와 사건을 공부하고, 당시의 생생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역사와 민중을 위해 헌신했거나 희생했거나 고통 겪은 분들을 다시 드러내고, 이분들에게 몇 명의 독자라도 새로이 관심을 두게 되기를 희망했다. (만당_133p)


기록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월간 문익환』의 시작은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월간 문익환』은 아카이브 숲에서 만난 손때 묻은 『월간 문익환』과 아카이브 기록들을 숨 쉬게 하고 싶었다. 늦봄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매월 『월간 문익환』을 만들기로 했다. (백총_202p)


이렇듯 아카이브 그 자체가 큰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렇다. 궁극적으로 『월간 문익환』을 만드는 콘텐츠플러스팀이 이 작업을 지속하고, 이어 나갈 수 있는 것은 바로 ‘몰입’이 아닐까?

내심 신이 났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재능이 쓰임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퇴직 후 잃어버린 자존감에 작은 불씨가 지펴지는 느낌이었다. (백총_26p)


돌이켜보면 24번의 『월간 문익환』이 발행되는 동안 우린 단 한 번도 ‘웃음꽃’을 잃지 않았다. 누구든 언제든 떠날 수 있기에, 역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조심하고 격려하며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백총_46p)


봉사단은 6개월의 자원봉사를 마치면서 나에게 새로운 제안을 해왔다. “늦봄 사료로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는데 함께 해주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정해진 건 없었다. 16주의 강의, 6개월의 봉사 기간을 함께 보냈다. 이번엔 또 어떤 시간이 될까를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50+봉사단은 성실할 뿐 아니라 스스로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그간 쌓은 사료에 관한 지식과 이야기들을 더 깊이 나누고 정리해 보고 싶었다. (지노_31p)


수장고에서 늦봄 전집과 저서를 뒤져보는 일, 수장고를 꽉 채운 보관 선반을 등 뒤에 두고 함께 작업하며 대화하는 것, 이런 게 글을 쓰는 데 자극과 동력이 되어주곤 했다. 또 편지를 전사하며 늦봄 내외의 삶 속에 잠시 빠져드는 경험은 밤새 원고 쓰기에 몰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게 나의 느낌이다. (만당_198p)


서로 다른 생각과 속도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몰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료라는 좋은 대상이 있고, 함께 하는 작업이기에 약간의 압박감도 있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기쁨, 끝없는 배움이 주는 쾌감, 그리고 서로 함께 힘 모아 매달 결실을 만들어 낸다는 성취감 그 모든 게 모여 ‘몰입’을 만들어낸다. 적어도 나는 무언가에 몰입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냄으로써 내 삶이 고여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기쁨을 느낀다. 그러니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월간 문익환』의 원동력이 아닐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이가 보기엔 종이조각에 불과한 사료에 수많은 감정을 느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하는 일에 선뜻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뜻과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인 것도 신기한 일인데, 2년 이상의 시간을 함께하며 매달 월간지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있을까? 또 거기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기쁨을 줄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있을까? 작고 소중한 가능성이 만나 『월간 문익환』이 되었다. 문익환 아카이브에서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또 이들이 함께하는 새로운 이야기가 쌓여간다. 살아있음의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는 『월간 문익환』 팀이다. 에바의 말처럼 다들 봄며들었나 보다!


어떤 이가 나보고 AI 같다고 했다(정확히는 AI 공장장님). MBTI에서 F(감정형)는 없고 T(사고형)가 거의 100%를 차지한다. 그런데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는 문익환같이 다정하고 친근하고 포용하고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나도 봄며들었나 보다. (에바_192p)



글쓴이_기림
얼떨결에 합류하게 된 시민사회 활동가이자 예비연구자. 글을 쓰다 보니 아카이브와 글쓰기에 커져가는 애정을 느끼고 있다. 평화학을 전공했고 개인의 기억과 기록에서 솟아나는 평화의 조각을 이어붙이는 것에 관심이 많다.



● 팟빵에서 ‘아카이브다(대체로 무해한 아카이브 토크)’에 출연한 ‘콘텐츠플러스’ 이야기 듣기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83528/episodes/2511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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