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책임교사 이야기2
스승의날, 좀 많이 복잡한 학폭 사안과 씨름하고 있다. 관련 피가해 학생만 9명이고, 목격자까지 하면 사안 조사가 진행되는 학생만 열댓 명이다.
오늘은 관련 학생 학부모 3명과 전화통화를 했다.
한 분은 학교가 자기 아이에게 불리한 쪽으로 사안조사를 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당연히 그럴 수도 없고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학교는 신고가 접수된 내용에 대해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관련 사실을 조사 중이라고 설명드렸다. 학부모님이 감정적으로 다소 흥분하신 탓에 흥분을 가라앉히며 대화가 이어지도록 하는 데 진땀을 냈다.
한 분은 다소 억울하게 가해 관련 학생이 된 학생의 어머니인데, 매우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하셨다. 자신의 아이는 잘못된 사실이 없는데 단지 신고됐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가해자 취급당하면 어떻하느냐고 호소하셨다. 이 경우는 따지는 건 아니고 억울한 마음을 털어 놓는 경우이다. 이 경우도 어느 정도 상황을 납득하기 이르기까지 전화 통화가 상당히 길어진다.
현 학폭법은 일단 신고가 되면 반드시 사안 접수, 보고, 조사, 심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만약 근거 없는 허위 신고라 하더라도 학교가 임의로 학폭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이는 신고된 학폭을 묵살하지 않고 그 내용을 반드시 살펴보도록 하자는 법의 취지인데, 한편으로 말도 안되는 신고를 하더라도 모든 절차를 매뉴얼대로 밟아야 하는 맹점이 있다.
올해 초 생활부장 집합 연수에 갔을 때 나는 교육청 관계자에게 따로 질문을 했었다. “만약 허위신고인 정황이 비교적 확실하게 드러났을 때도 사안 진행을 해야 하는가? 학폭 사안이 접수되면 관련 학생들은 긴급 분리가 되고, 학교와 교육청은 그 사안을 조사하고 심의하는 데 상당한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이것은 너무 소모적이지 않은가?”라고.
이에 대한 교육청 관계자의 답변은, “일단 접수된 학폭 사안은 모두 절차대로 진행해야 한다. 해당 학생과 학부모가 요구하면 교육청 심의위 의뢰도 당연히 하셔야 한다. 만약 신고된 내용이 근거가 없다는 판단이 들면 교육청에서 ‘학교폭력 아님’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다”였다.
학폭 사안에 대한 최종적인 판결을 교육청에서 하는 현 구조는 학폭 책임교사 입장에서는 하나의 안전망이다. 가해 관련 학부모든, 피해 관련 학부모든 사안에 대해 설명하고 납득시키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로서는 “저희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조사를 할 뿐입니다. 최종 판단은 교육청에서 하게 됩니다.”라고 말하면 된다. 학교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예전처럼 최종 판단을 학교가 한다면... 그 부담감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아마 나 또한 그 상황이라면 생활부장을 할 자신이 없다. 학교가 왜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느냐고 말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과연 학교에 그 판단을 내릴 권위를 주었는지 물어야 한다.
세 분의 학부모님과 통화를 하다보니 2시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민감한 사안이라 전화 통화만 했는데도 감정 소모가 많았다. 내가 맡은 역할이어서 마땅히 할 일을 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스승의날 경험으로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교직 초기에, 학생 왕따 문제로 7~8명의 학부모님과 대화하면서 진땀을 뺀 적이 있는데 오랜만에 유쾌하지 않은 쪽으로 기억에 남는 스승의날이 추가되었다.
퇴근길에 카톡이 와서 봤더니 5~6년 전에 졸업한 한 제자가 고기 선물을 보냈다. 그래도 영 고단하기만 한 하루는 아니구나. 그리고 나라는 교사, 꽤 괜찮게 살았던 교사구나 하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