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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Jan 12. 2023

스무 살 이후의 노력은 무시해도 되나

제2장 들어가는 데만 신경 쓰는 대학 -3

대학서열화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 두 가지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한다. 서열 높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지나친 경쟁과 그로 인한 갖가지 사회적 병폐를 볼 때는 대학서열화가 문제라는 데 동의하지만, 어차피 누구나 원하는 최고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 가운데 더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최고의 결과물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는 생각도 존재하는 것이다. 어떨 때는 이 두 가지 생각이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하나의 글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이 두 가치관은 정확히 분리해 내기 어려울 만큼 각 사람의 마음과 사회 통념 속에서 혼재되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더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이 더 좋은 결과물을 얻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나아가 그런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는 생각은 능력주의적 가치관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능력주의는 허구다’라는 책을 쓴 스티븐과 맥나미의 설명에 의하면, 능력주의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 보상을 해주는 사회시스템을 뜻하는데,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의 출현(1958년)’이라는 책에서 처음 언급된 단어이다.(각주1)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 사회를 결코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바라본 능력주의 사회는 “처음에는 능력주의를 매우 공정한 시스템으로 여기지만, 위계질서가 잡히고 나면 자신보다 밑에 있는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무자비한 사회이자 암울한 디스토피아”(각주2)였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마이클 영의 우울한 전망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대학서열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더욱 분명하다. 언젠가부터 통용되기 시작한 ‘지잡대’라는 용어가 대표적이다. 제정임, 곽영신은 그들의 책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에서 지방대를 둘러싼 거대한 불공정에 대해 파헤친 바 있다. 그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지잡대’는 ‘지방에 있는 잡스러운 대학’의 줄임말인데, 각종 인터넷 기사에 대한 댓글과 ‘나무위키’, ‘디시위키’, ‘구스위키’ 등의 웹사이트에는 지방대에 대한 방대한 혐오 내용이 축적되어 있다고 밝힌다. 그 책에 나온 사례 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구스위키’는 원고지 120장 분량으로 지잡대를 설명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이 집단군에 속한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사라지는 것이 국력에 도움이 되는 소위 가치 없는 존재들이다. 돈 주고 대학생 간판 따러 가려고, 대학생 흉내라도 내보고 싶어서 1년에 최소 천만 원에서 1억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2년에서 4년 기한의 정액권을 끊고 입장하는 대학 테마파크다.”(각주3)

“부산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김준호(가명)씨는 몇 해 전 학교 신입생 엠티에서 사고가 나 사망자 등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 그 기사에도 지방대를 비하하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기사에는 ‘미래의 인재들이 다친 줄 알고 깜짝 놀라 들어와 봤더니 지잡대구나... 불행 중 다행이다’‘이런 식으로 지잡대들이 무너지길’과 같은 반인륜적 댓글까지 달렸다.”(각주4)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보면 촘촘하게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을 눌러 이기고자 하는 처절한 생존 본능일 수도 있다. 자신보다 서열 높은 대학에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나보다 낮은 대학 사람들은 무시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 아닐까? 그래야 그나마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복학왕의 사회학(2018)’을 쓴 최종렬 교수의 “지방대에 대한 혐오 표현은 약자가 약자를 공격하는 병리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지독한 학벌 사회에서 대다수 청년들이 느낀 좌절감과 열패감이 또 다른 약자인 지방대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것”(각주5)이라는 진단은 정확한 지적이다.


외국에도 명문대학에 대한 선망이나 동문 커뮤니티는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심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같은 한 줄로 세워진 극단적인 대학서열화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높은 대학 학생에 대한 열등감과 낮은 대학 학생에 대한 비하와 우월감으로 점철된 한국의 청년들을 그 심리적 트라우마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하지 않을까.


능력주의에 대해서는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도 비판적 관점을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샌델은 돈 따라가는 SAT(미국의 대학 수학 능력 시험) 점수를 근거로 들며 학업 성적이 결코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만 결정되지는 않음을 드러낸다.


“SAT 점수는 응시자 집안의 부와 매우 연관도가 높다. 소득 사다리의 단이 하나씩 높아질수록, SAT 평균 점수는 올라간다. 연 소득 20만 달러 이상 출신으로 1,600점 만점에 1,400점 이상 기록할 가능성은 다섯에 하나다. 연 소득 2만 달러 이하 출신은 그 가능성이 오십에 하나다. 또한 고득점자들은 그 부모가 대학 학위 소지자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각주6)


부모의 사회경제적 특징이 자녀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최필선, 민인식(2015)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수능성적이 높고,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대학진학률이 높다(그림2-3, 그림2-4).(각주7) <그림2-3>을 보면 수능성적 1~2등급을 받는 비율은 소득 1분위(2.3%)보다 소득 5분위(11.0%)가 약 5배 높은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림2-4>를 보면 4년제 대학에 들어가는 비율은 보호자가 고졸미만일 때(26.1%)보다 보호자가 대졸 이상일 때(78.5%) 약 3배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림2-3 부모의 소득수준과 자녀의 수능성적    

자료: 최필선,민인식(2015).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세대 간 이동성과 기회불균등에 미치는 영향.


그림2-4 부모의 교육수준과 자녀의 대학진학률    

자료: 최필선,민인식(2015).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세대 간 이동성과 기회불균등에 미치는 영향.     


부모의 사회경제적 특징이 자녀의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더욱 흥미로운 자료는 영재학교의 출신 지역에서 나타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강득구 국회의원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0학년도 우리나라 8개 영재학교 입학생은 68.5%가 서울·경기 출신이었다. 그런데 서울과 경기 중에서도 특정 지역에 영재학교 입학생이 쏠려 있다. 서울은 강남,양천,노원,서초,송파 5개 구에서 영재학교 진학생의 61.5%가 나왔고, 경기도는 성남,고양,용인,안양,수원 5 개시에서 경기도 영재학교 신입생의 66.5%가 나왔다(그림2-5,그림2-6).(각주8) 우리나라의 영재는 유독 부유한 가정에서 많이 나오는 것일까. 이는 영재학교 진학이 부모의 경제적 배경과 사교육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림2-5 전국 영재학교별 서울·경기 지역 출신 비율(2020학년도)

자료: 사교육걱정없는세상,강득구 국회의원실(2020). 2020학년도 영재학교 입학자 출신 중학교 분석 보도자료.          


그림2-6 영재학교 서울·경기지역 상위 5개 시·구 비율(2020학년도)    

자료: 사교육걱정없는세상,강득구 국회의원실(2020). 2020학년도 영재학교 입학자 출신 중학교 분석 보도자료.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각종 시험과 선발을 공정하게 운영한다는 것이 자칫 서열과 선발 결과에 따른 무시나 비하가 당연시되는 사회 분위기로 고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성과를 내기 위한 개인의 노력은 존중해야겠지만 본인의 성공 요인에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행운의 요소도 있음을 인정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서로를 무시하지 않고 경쟁의 결과를 겸허히 인정하는 능력주의가 구현된다 하더라도, 대학입학 당시의 성과가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학벌 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능력주의 사회라고 볼 수 없다. 대학서열이 고정된 우리나라는 스무 살 이후의 노력이 인정되기 힘든 사회이며 이는 청년들의 가능성을 죽이는 일이다. 부모의 영향이 큰 시기의 공부 결과로 결정된 대학서열, 그리고 그 서열이 학벌이 되어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우리나라의 대학서열 체제는 진정한 의미의 능력주의에 반대되는 체제이며 기회의 평등에도 위배된다. 그러기에 국가가 나서서 대학서열 해소 방안을 만들어야 하며, 시민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각주

1) Stephen, McNamee(2015). 김현정 옮김. 능력주의는 허구다. 사이. p.12.

2) Stephen, McNamee(2015). 위의 책 p.12.

3) 제정임, 곽영신(2021).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 오월의봄. p33.

4) 제정임, 곽영신(2021). 위의 책 p.29.

5) 제정임, 곽영신(2021). 위의 책 p.34.

6) Michael J. Sandel(2020). 함규진 옮김. 공정하다는 착각. p.259.

7) 최필선,민인식(2015).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세대 간 이동성과 기회불균등에 미치는 영향. 사회과학연구 22-3. 한국교육고용패널(KEEP)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로, 2004년 중학교 3학년 코호트를 대상으로 부모의 교육 및 소득 수준이 자녀의 대학교 진학, 수능 성적, 그리고 대학졸업 후 노동시장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추적하였다. 

8) 사교육걱정없는세상,강득구 국회의원실(2020). 2020학년도 영재학교 입학자 출신 중학교 분석 보도자료.(2020.9.29.일자).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강득구 국회의원은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2020학년도 전국 8개 영재학교 입학자 828명의 출신 중학교 현황 자료를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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