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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오리 Dec 06. 2022

10. 물닭갈비로 목을 씻으며

[8개월 태백 살이]

  물닭갈비는 태백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다. 처음 물닭갈비란 말을 접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닭갈비면 닭갈비지, 물닭갈비란 또 뭐란 말인가. 닭갈비에 국물이라도 있나 했는데, 정말 그랬다. 물닭갈비는 양념으로 숙성시킨 닭갈비에 육수를 붓고 야채를 넣어 끓여낸 '닭갈비 전골'이었다.


직접 찍음, 태백에서 먹은 물닭갈비


  이 이색적인 요리의 탄생의 배경에는 태백 석탄 산업의 발전이 있다. 태백은 남한 처음으로 석탄이 발견된 곳이다. 본격적인 석탄 시대가 도래하며 70, 80년대에 태백에 설치된 탄광은 수백 곳에 이르렀다. 태백의 전성기였던 이 시기에  인구는 13만이 넘었고, 석탄 수요량이 폭증하는 가을철에는 태백에선 동네 개마저도 만 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다닌다는 농담이 생길 정도로 도시는 부흥했다.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좁은 갱도에서 하루에 수십 번씩 오가며 석탄을 채굴했던 광부들의 목은 석탄가루로 늘 칼칼했다. 이들은 육고기가 몸속에 쌓인 석탄분진을 씻어준다고 믿으며 고된 육체노동의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 고기를 즐겨 먹었다. 닭고기와 함께 매콤한 국물을 삼키며 광부들은 목에 쌓인 석탄가루를 씻어내고 하루의 피로를 씻어냈다. 이미 폐 속 깊이 자리한 석탄가루가, 켜켜이 쌓인 피로가 어찌 물닭갈비 한 입으로 씻어졌을까마는 씻어졌겠지 위안을 삼으며 광부들은 다시금 어두운 갱도로 향했겠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부흥했던 도시는 한때 찬란했다는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이제 인구가 4만 명이 채 안 되는 태백은 지역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기록한 석탄박물관, 폐탄광을 관광지로 탈바꿈한 탄탄파크, 카페에서 파는 석탄 모양의 빵 등으로 예전의 영광을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칼칼하고 구수한 물닭갈비 국물을 삼키다 보면 쇠해가는 것들이 떠오른다. 저물어가는 하루 끝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광부들의 모습이 생각나고, 그 많던 광부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하고 상상하다 보면 더할 나위 없이 탄탄하고 건강했던 육체가 시들어가는 모습이 생각나고, 생명력 가득하던 도시의 쇠락이 생각난다. 쇠했다는 건 한때는 누구보다 찬란했단 것이기에, 시들어가는 모든 것들이 더욱 소중하고 애잔하다. 


태백시 상장동 벽화, 석탄산업 호황기를 상징하는 지폐 물고 다니는 개




  70세가 넘은 한 패션 디자이너의 집 소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인테리어 된 집안 곳곳에 연륜 가득한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할머니의 할머니가 쓰시던 원목 옷장, 친정아버지가 쓰시던 자개 밥상, 친정어머니가 쓰시던 장식장 등 만들어진 지 50년, 100년이 지났지만 정갈하고 기품 있는 가구들이다. 여기에 그분이 직접 디자인한 쿠션, 직접 만든 자수, 현대적인 소품 같은 것들이 더해져 과거와 현재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역사가 '쌓여 가는' 것들은 아름답다. 모든 오래된 것들을 부정하고 이케아에서 사 온 가구들로만 꾸민 집은 깊이가 없고, 과거의 영광만을 떠올리며 전통 양식만 고집하는 집은 신선함이 없다. 과거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면서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집만이 '살아 있던' 집이고, 여전히 '살아 있는' 집처럼 느껴진다. 도시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현대식 건물로 가득한 도시보다, 과거의 영광만을 되새김질하는 도시보다, 이 두 개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도시가 오랜 시간 머물고 싶은 매력이 있다.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인구수가 줄고 있는 도시에서 물닭갈비를 먹는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모를 만큼 허름한 가게다. 칼칼한 국물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이곳에도 시대에 맞는 아름다움이 더 많이 쌓여가길 바라본다. 언젠가 다시 태백을 찾았을 때, 자연이나 역사 같은 태백의 과거가 준 선물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가 주는 선물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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