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태백 살이]
태백의 밤은 심심하다. 8시 정도만 되어도 번화가의 많은 상점이 문을 닫고, 안 그래도 조용한 거리는 더욱 조용해진다. 딱히 돌아다닐 곳도 없어 방에 누워 핸드폰을 붙잡고 웃긴 영상을 보기도 하는데 그것도 금세 지겹다. 아무리 새로고침을 눌러도 그 영상이 그 영상이다.
본가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 땐 느껴보지 못한 지루함과 외로움이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기 지루할 즈음이면 거실로 나가 가족들과 수다를 떨었고, 그것도 지루할 즈음이면 나가서 연인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났다. 맘만 먹으면 가족도 만나고 연인도 만나고 친구도 만날 수 있었다. 무연고지인 이곳 태백에선 늦은 밤 불러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눌 이가 없다. 이곳의 밤은 온전한 단절의 시간이다.
지루함이 극에 달하자 책장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평소 예능 아니면 TV를 안 보던 학생들도 시험 기간에는 뉴스마저도 눈 뗄 수 없이 재밌다고 하더니, 딱 그 모양이다. 다른 놀거리 하나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는 예전엔 지루하다며 거들떠도 안 보던 두꺼운 책이 술술 읽혔다. 언젠가부터 한 번 앉으면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내 인생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시기 중 하나가 됐다. 내 인생의 독서량 그래프를 그린다면 그래프는 두 시점에서 크게 증폭될 것이다. 하나는 기자 준비생 시절 논술을 쓰기 위해 책을 읽던 시점이고, 다른 하나는 태백 발령 이후 자취방에서 책을 읽던 이 시점이다.
기자 준비생 시절에는 주로 사회과학 책을 읽었다. 언론사 취업 준비생으로 구성된 독서 모임에 가입했었는데, 매주 한 권의 책을 선정하여 읽고 토론을 했다. 매주 '이번 주의 책'이 있었던 셈이다. 모임 특성상 다음 언론사 입사 논술 시험에서 출제 가능성이 높은 사회 이슈와 연관된 책을 읽었다. 진보와 보수의 심리, 민주주의, 4차 산업혁명,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AI 같은 주제의 책이었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리스트로부터 자유로울 때, 손이 간 책은 조금 다른 분야였다. 늘 사회 과학 책만 읽었었고, 스스로도 사회과학 책을 재밌게 읽었다 생각했는데, 온전히 내 시간이 주어지니 어쩐 일인지 사회과학 책에는 손이 안 갔다. 정작 주로 손이 가고 재밌게 읽게 되는 책은 인문학 쪽이었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다 보면 특정 키워드에 흥미가 생기게 되는데, 그 당시 꽂힌 키워드와 관련된 책을 연달아 읽는 게 내 독서 방식이다. 풍족한 초원지대지만 굳이 유목하는 팔자 좋은 소 같은 독서법이랄까. 여기 풀밭에서 한껏 풀을 뜯다 보면 반대편 초원의 풀이 맛있어 보이고, 한참 그곳의 풀을 뜯다 보면 예전 풀이 그리워 돌아오기도 하고, 다시 탐스러워 보이는 새로운 풀을 찾아 이동하기도 한다.
태백에 있던 당시 내가 꽂혔던 키워드는 4개 정도다. 혼자 살다 보니 고양이 한 마리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커졌는지 제목에 '고양이'가 들어간 책들을 찾아 읽었다. 자취방을 나름대로 인테리어 하면서 아름다움이란 뭘까 궁금해져서 '미학'에 관한 책도 탐독했다. 조용하게 굴러가는 매일매일에 대해 생각하며 '침묵'에 관한 책들을 읽었고, 지나치게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반동인지 '폭력과 잔혹함'이란 키워드에 빠져 책을 읽은 시기도 있었다.
키워드 중심으로 책을 읽다 보면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에 살을 붙여 나갈 수 있다.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책들의 관점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기자 준비생 때처럼 성취를 이뤄내겠다던가, 좋은 논술을 쓰겠다던가 하는 목적의식은 없었다. 그저 순수한 지적 유희의 쾌감이었다. 그 쾌감을 알고 나니 예전처럼 독서 모임의 강제성에 기댈 필요 없이도 스스로 책을 찾아 읽게 됐다. 책장에 꽂힌 책을 보면 형형색색의 장난감이 가득한 기분이다.
창밖의 빗소리마저 들리는 외롭고 고요한 시간. TV나 핸드폰의 소음도, 사람의 말소리도 없는 그 시간에 오히려 내면의 소리는 크게 들린다. 온전히 혼자인 시간 덕분에 스스로의 취향을 찾았고, 이해관계 없이 아름다운 것에 순수한 찬탄을 보내는 법을 배웠다. 혼자 살아 본 시간은 내게 고요한 축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