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알까!

달콤시리즈 412

by 동화작가 김동석

내 마음을 알까!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할아버지는 밤새 기침을 하다 새벽이 돼서야 깜박 잠이 들었다.


'저벅! 저벅!'

밖에는 비가 내리는 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는 안 들리고 새벽에 발자국 소리라니!"

할아버지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룩! 주룩!'

하고 빗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할아버지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새벽에 누가 왔나!"

할아버지는 일어나 창문을 열고 마당을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헛소리를 들은 걸까!"

할아버지는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여러 번 쑤시면서 밖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했다.


'저벅! 저벅!'


"누구요?"

할아버지는 발자국 소리에 창문을 열고 물었다.

하지만

비만 주룩주룩 내릴 뿐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다!

헛소리가 들리다니.

이제 망령이 들었나!"

할아버지는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그리고 마루에 나와 마당을 비추는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비만 내리는 데!

발자국 소리가 왜 나는 걸까."

할아버지는 새벽 공기를 마시며 한 참을 마루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저것은!"

마당에 커다란 발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분명히 누가 왔다!"

할아버지는 마당에 선명하게 보이는 발자국이 보통 발자국처럼 보이지 않았다.


"거인 발자국 같기도 하고

저렇게 큰 발을 가진 사람이 존재할까!"

할아버지는 마당에 깊숙이 박힌 발자국을 보면 볼수록 심장이 뛰었다.


"누굴까!

저승사자일까.

좀비! 도깨비! 악마! 마녀!

아니야!

이렇게 큰 발자국을 가지지 않았어."

하고 말하더니 할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갔다.


"신기하군!"

이불속으로 들어가 누운 할아버지는 온몸의 신경이 꼼지락거리는 것 같았다.


"또 들릴까!"

할아버지는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또 들리면 창문을 열고 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누워 있었다.


'저벅! 저벅!'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또 들렸다.


"누구세요?"

할아버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두려움을 꾹 참고 창문을 열고 물었다.

하지만 대답도 없고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당을 다시 둘러본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창문을 닫았다.


"날이 밝으면 발자국을 자세히 봐야겠어!"

하고 말한 할아버지는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주룩! 주룩!'

가끔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누군가가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 같이 들렸다.


'주룩! 주룩!'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날이 점점 밝아지자 발자국 소리보다 빗소리가 조금 더 많이 들렸다.


"도대체 누가 왔을까!

저승사자일까!

벌써

나를 데려갈 때가 되었나!"

할아버지는 항상 죽어도 여한이 없다 생각하다가도 막상 저승사자가 온다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았다.


"설마!

저승사자는 새벽에 오지 않아."

할아버지는 새벽닭이 운 뒤에는 저승사자가 오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도대체 뭘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할아버지는 잠이 들었다.


"사람은 아닌 것 같아!"

할아버지는 늦은 아침을 먹고 마당에 새겨진 발자국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맨발이야!

신발도 신지 않고 다니다니."

다섯 발가락이 선명하게 마당 진흙탕에 도장을 찍은 것처럼 보였다.


"새벽에 아무도 없었는데!

이렇게 큰 발을 가진 사람을 본 적 없어."

할아버지는 우산을 들고 쭈그리고 앉아 발자국을 천천히 관찰했다.


"혹시!

숲 속 유령일까."

할아버지는 최근 숲 속을 바라보다 누군가 감시한다는 느낌이 든 적이 있었다.


"숲의 정령일까!

숲의 정령이라면 이렇게 발이 클 수도 있을 거야."

할아버지는 신발을 벗고 발자국에 자신의 발을 얹어보았다.


"정말 크다!"

할아버지 발은 마당에 난 발자국에 비하면 아이 발자국 크기만 했다.


"몸집도 크겠지!

그런데 분명히 아무도 오지 않았어."

할아버지는 새벽에 창문을 열고 마당을 내려다본 기억을 생각해 봤다.



비가오면 비둘기가 온다 2005M10 Private collection.JPG 그림 나오미 G



"어리석은 것들!"

할아버지 집 뒷산에 사는 숲의 정령은 비 오는 날이면 마을로 내려왔다.

숲의 정령은 비를 맞으며 마을을 신나게 돌아다녔다.


"더 큰 발자국을 남겨야지!"

숲의 정령은 자신의 발자국을 크게 남기려고 노력했다.


"인간들이

정신 차릴 때까지 발자국을 남길 거야!"

숲의 정령은 많은 쓰레기를 버리는 인간들 때문에 숲에서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간들에게 소비를 줄이고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왔다.


"내 마음을 알까!

아무도 모르겠지.

숲의 정령이 왜 마을로 내려왔는지 알면 좋겠는데!"

숲의 정령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할 수 없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들이니."

숲의 정령은 몇 번이나 인간을 혼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마을 뒷산에

몰래 들어와 쓰레기를 버리는 인간들이 싫어 큰 재앙이 일어나게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내가 입김만 불어도 다 죽을 인간들이!"

숲의 정령은 너무 많은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가끔 바람을 일으켰다.

그 바람 세기는 인간의 입김 정도였다.


"큰 홍수가 나고 산사태가 마을을 덮쳐야 정신 차릴 거야!"

숲의 정령은 강한 바람을 일으켜 인간을 혼내주고 싶었지만 또 참았다.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소용없어!"

숲의 정령은 인간들이 스스로 깨닫고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을 터득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깨닫기는커녕 더 많은 쓰레기들이 숲을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었다.


"이러다간 나도 죽겠다!"

숲의 정령은 숲과 동물들을 지키기 위해서 인간을 만날 생각을 했다.

인간을 설득시키고 쓰레기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숲의 정령이야!"

할아버지는 어릴 때 아버지가 말해준 숲의 정령이 마을에 내려왔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말이 맞았어!

숲의 정령이 우리 마을을 지켜주고 있었어."

할아버지는 숲의 정령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발자국을 남긴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 때문에 내려왔을까!

민수야!

할아버지 핸드폰 가져와라!"


"네!"

할아버지는 손자가 가져다준 핸드폰을 들고 마당에 움푹 들어간 발자국을 찍었다.


"노인정에 가서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할아버지는 마당에 난 발자국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노인정으로 향했다.


"이봐!

어젯밤에 숲의 정령이 마을에 내려왔어."

영수 할아버지에게 민수 할아버지가 말하자


"어젯밤에 비 왔지!

그러니까 숲의 정령이 마을에 내려와 춤췄군."

영수 할아버지도 어릴 적에 아버지로부터 숲의 정령에 대해서 이야길 들었었다.


"마을에 내려와서 춤추지 않았어!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다 숲으로 간 것 같아."


"무슨 소리야!

비 오는 날이면 숲의 정령은 마을에 내려와 춤춘다고 했는 데."


"아니야!

이번에는 발자국을 보니까 화난 것 같아!"


"또!

또 거짓말한다.

발자국만 보고 어떻게 숲의 정령이 화난 것을 알 수 있어!"

순이 할아버지가 민수 할아버지 말을 듣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


"이 사진을 봐!

발자국을 보면 발가락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잖아."

할아버지 말이 맞았다.

발자국에 난 발가락 모양에 힘이 잔뜩 들어간 사진이었다.


"그거야!

미끄러질까 봐 힘을 준 것이겠지."

영수 할아버지가 말하자


"지난번 발자국 하고 다르긴 하다!"

순이 할아버지가 사진을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그러니까

앞으로 조심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저승사자라도 올까 봐."

영수 할아버지는 죽는 게 제일 싫었다.


"숲의 정령님!"

할아버지는 뒷산에 올라 제사를 지냈다.


"우리 마을을 잘 지켜주세요!

비 오는 날 마을에 내려온 이유를 알려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할아버지는 몇 번을 절한 뒤 무릎 꿇고 앉아 기도를 했다.


"마을에 큰 재앙이 일어날 거야!"

할아버지 기도를 다 들은 숲의 정령이 말하기 시작했다.


"숲에는 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살고 있지!

그런데 인간들은 숲에 오물과 쓰레기만 갔다 버린 지가 벌써 수십 년이나 되었다.

이제는 나도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쓰레기가 숲을 차지하고 있어!

그래서 마을에 재앙을 내릴 거야!"

숲의 정령은 정말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숲의 정령님!

인간들이 쓰레기를 줄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재앙을 내리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할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간절한 마음으로 숲의 정령에게 말하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은 쓰레기 더미에서 흘러내리는 오물이 마을을 덮칠 거야!

그러니 마을에 내려가서 모두에게 알려줘야 해."

숲의 정령은 숲에 사는 동물과 식물들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안됩니다!

내일부터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서 숲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할아버지는 몇 번이나 간곡히 부탁하고 제사를 마쳤다.


"숲이 오염되는 것을 막아야 해!"

할아버지는 다음날 아침을 먹고 일찍 마을회관으로 달려갔다.


"마을 주민들에게 방송을 해야겠어!"

하고 말하더니 마이크를 들고 마을 주민을 향해 방송을 시작했다.


"아름다운 마을에 사는 주민 여러분!

민수 할아버지입니다.

오늘부터 집집마다 한 사람씩 마을회관으로 모여주면 좋겠습니다.

우리 마을을 아름답게 지켜주는 숲의 정령이 많이 화가 났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들이 숲에 가득합니다.

여러분이 모두 함께 가서 봐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숲에 쌓인 쓰레기를 없애는 운동을 할 계획입니다.

숲이 깨끗해지면 숲의 정령도 화를 풀고 다시 우리 마을을 아름답게 가꿔줄 것입니다.

모두 참석해 주길 다시 한번 당부합니다."

하고 민수 할아버지는 마을 주민들에게 안내방송을 했다.


"정말이야!"


"뭐가!"


"숲의 정령이 화난 것!"


"숲의 정령도 화날 만 해!

우리가 숲에 쓰레기를 마구 버렸잖아!"


"그건 맞아!"

마을 주민들도 자신들이 한 짓을 생각하며 부끄러워했다.


마을회관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여러분!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숲을 아름답게 지키기 위해 모두 조금만 노력합시다."

영자 할머니가 호미를 들고 서서 말하자


"숲의 정령을 죽게 할 수 없어!

가자고!

가서 쓰레기를 다 치우자고!"

순이 할머니도 함께 가세했다.


"모두 갑시다!"

하고 말하더니 민수 할아버지가 앞장서서 숲으로 향했다.

그 뒤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따랐다.


며칠 동안

숲에 쌓인 쓰레기를 마을 사람들은 치웠다.


"자신들에게

위기가 닥쳐야 힘을 합친다니까.

그래도 인간들이라 다르긴 다르군."

숲의 정령은 숲이 깨끗해지자 화를 멈추고 마을에 큰 축복을 내렸다.


"비 온다!"

할아버지는 새벽 빗소리를 듣고 밖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주룩! 주룩!'

빗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숲의 정령이 화를 풀었겠지!

앞으로 숲에 쓰레기를 절대로 버리지 못하게 해야겠어."

할아버지는 매일 숲에 올라가 쓰레기가 있는지 확인했다.

숲에 쓰레기를 치운 뒤로 할아버지는 비가 와도 발자국 소리를 듣지 못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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