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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작가 김동석 Apr 11. 2022

그것도 모르면서!

달콤시리즈 171

그것도 모르면서!




공원에서

아주 우연히

들쥐는 성냥불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들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들쥐는 도망치지 않았다.


"불!

사람들이 이용하는 불 말이야.

타조가

천상에서 훔쳐다 사람들에게 준 거 알아?"

하고 들쥐가 물었다.


"모르지!

고양이가 알아서 뭐해.

먹을 것도 아닌데!"

하고 고양이는 대답했다.


“그럼!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어?”

들쥐가 또 물었다.


“그런  몰라!

배고파서 널 잡아먹어야겠어.”

고양이는 들쥐를 잡아먹을 생각만 했다.


“나를 잡아먹는다고?”

하고 들쥐가 묻자


“그래!”

고양이는 불을 밝히며 말했다.


“쥐는

고양이와 친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잡아먹겠다니!

무서운 세상이야.”

들쥐는 고양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고양이는 겁도 없이 말하는 들쥐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밤에 활동하지 아무 데나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지!

먹고사는 문제를 빼면 쥐 나 고양이가 다를 게 없잖아!”


“그렇긴 해!”

고양이는 들쥐가 하는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원숭이나 고릴라를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며 잡아먹지 않잖아!”


“맞아!

다른 동물은 잡아먹으면서 원숭이나 고릴라는 잡아먹지 않지!”

고양이는 마법에 걸릴 듯 들쥐가 하는 말에 공감했다.


“그러니까

너도 들쥐를 잡아먹으면 안 돼!

생명은 모두 소중하니까!”


“하지만

먹이사슬은 자연의 법칙이잖아!”

고양이가 들쥐를 잡아먹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라고 말하고 싶었다.


“자연의 이치!

호박씨 까먹는 소리 하고 있군!”

들쥐는 밤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은

자연의 이치와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다음날 아침이면

모두 잊어버리고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살았다.


“동물들은

사람들처럼 종교를 믿거나 윤리적 이성이 없으니까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야지!”

고양이도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윤리적 이성을 가지고 살려고 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양이를 고양이로 보지 않고 사람처럼 보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하고 바보 취급을 했다.


“종교를 믿고 윤리적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고 싶겠지!”

들쥐는 생존하고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서 사람들보다 수백 배 더 노력했다.


..


하루에도 수십 마리 들쥐들이 쥐약을 먹고 죽었다.

인간의 식량을 훔쳐 먹고 질병을 옮긴다는 이유로 쥐들이 죽어야 했다.


“그거 알아!

질병과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의해 사람들이 제일 많이 죽는다는 것!”

들쥐는 어리석게만 보이는 고양이에게 물었다.


“몰라!”

고양이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고양이들이야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모르겠지!”

들쥐는 고양이보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면서도 사랑받지 못해 속상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좋아하지만

들판에 사는 고양이들은 사람들도 싫어해!”

고양이도 집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선택받지 못한 고양이는 사람들의 적이었다.


“질병을 고치는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사람들은 쥐에게 제일 먼저 병을 옮기고 또 치료약을 처방하는 것도 모르지?”

들쥐가 묻는 말이 맞았다.


과학자들은

사람의 수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고치기 위해 쥐를 실험 대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몰랐어!”

고양이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쥐들은 사람들이 걸린 병에 익숙해져 있어!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 사람들의 탐욕과 욕망의 빛과 그림자고 해야겠지.”

들쥐의 이야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고양이는 들쥐를 잡아먹고 싶었지만 들쥐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그림 나오미 G



..


“아직도

날 잡아먹고 싶어?”

들쥐는 고양이에게 물었다.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고양이는

들쥐를 잡아먹는 것보다 이야기가 더 듣고 싶었다.


“과학자들이

쥐들을 실험대에 올리는 이유가 뭔지 알아?”

들쥐가 묻자


“몰라!

왜 쥐들만 실험대에 오를까?

고양이는 실험대상으로 쓰지 않아.

난 그게 불만이야."

고양이가 올랐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안다는 것!

또는 알아간다는 희열 때문이야!”


과학자들이

새로운 발견을 하고 희열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해한다는 것을 들쥐는 알았다.


“희열이라니!”

고양이는 도망가는 들쥐를 붙잡고

자신도 몰랐던 희열을 느낀 적이 있었다.


“신뢰성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불신해도

과학자들은 스스로 알아간다는 것 자체에 희열을 느끼지!

그리고

그 잔인한 희열 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면 탐욕과 욕망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지!”


들쥐가 하는 말이 옳았다.

사람들의 탐욕과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무지함을 정당화시키는 것이군!”

고양이는 들쥐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무섭고 무지하다 생각했다.


“맞아!

사람들이 무지하니까

알게 된다는 것의 희열을 느끼는 것이지!”


들쥐는

어리석은 고양이가 조금씩 깨달아가는 게 좋았다.

고양이는

들쥐의 이야기를 듣고

자연의 이치와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았다.


“생존이 문제야!”

살아남는 자만이

탐욕과 욕망의 희열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어떤 종말을 맞이했는지 봤다.


들쥐는

탐욕과 욕망의 희열을 만끽하는 순간은 짧고

고통과 재앙의 시간은 길게 온다는 것을 알았다.


“들쥐야!

넌 그래서 어떻게 살고 싶어?”

고양이가 물었다.


“최소한

탐욕과 욕심은 없어!”

들쥐는 죽고 사는 문제보다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고양이를 만나도

무섭지 않은 이유는 탐욕과 욕망의 늪에 빠진 사람보다 무섭지 않기 때문이었다.


..


고양이는

들쥐보다 힘이 세다는 게 부끄러웠다.

세상에

사람만큼 쥐들이 많은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었다.


탐욕과 욕망의 위선자들보다

쥐들의 평범한 삶 속에서 생존의 법칙을 배우는 것 같았다.


“들쥐야!

고마워.”

고양이는 잡아먹고 싶었던 들쥐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안녕!”

들쥐는 고양이에게 인사하고 들판을 향해 달렸다.


멀리서

들쥐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너 자신을 알라!

양심에 따라 행동하라!

탐욕과 욕망의 늪에서 벗어나라!

희열을 만끽하는 순간은 짧다!

자신을 위한 종교이고 도덕인가!

생존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아야 한다!

나의 유전자를 탓하지 말자!

소크라테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코페르니쿠스! 마르코니!

위대한 그들의 탐욕과 욕망도 끝이 있었다.

위대한 생존은 자신이 유리하다는 것을 실천할 때 가능한 것이다!”


고양이는

들쥐가 부르는 노래를 귀담아 들었다.


“기꺼이 실험대 위에 오를 수 있을까!”

고양이는 고양이들의 진화와 생존을 위해 실험대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작은 희생이 없다면 종의 진화나 생존은 불가능한 것이군!”


고양이는

쥐들이 사람들만큼 지혜롭고 진화를 거듭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위대함!

사람보다 더 위대한 쥐들이군!

기꺼이 작은 희생을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쥐들이야말로 위대 하군!”


고양이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았다.


스스로

생존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쥐들처럼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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