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
맑은 바람!
맑은 바람이 불었다.
보일 듯 말 듯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맑은 바람은
세상을 돌아 인간의 삶 속을 파고들며 작가의 영혼을 스치고 지나갔다.
맑은 바람은 폭풍이 되어
작가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 순간!
예술혼이 깨어났다.
한지와 비단에 남긴 작가의 흔적이 꿈틀거렸다.
몽환적이고 아련하게 움직이는 것이 맑은 바람 때문 같았다.
바람아 불어라!
맑은 바람아 불어라
가슴을 후려 파도 좋다
아니
뼛속까지 파고들어도 좋다
맑은 바람이어야 한다
꽃은
달빛이 되어 빛을 선물하고
어둠은
먹물이 되어 한지와 비단에 붓칠을 시작했다
바람아
맑은 바람아
붓을 든 손은 작가의 손이 아니었다
맑은 바람이 부는 곳으로 붓이 가는 데로 지켜볼 뿐이다.
노란 꽃잎은 달빛이었다.
충만하게 차오르는 달빛이었다.
맑은 바람이 불면
살아있는 용처럼 꿈틀거렸다.
어둠이 짙을수록 꽃잎은 더 밝게 빛났다.
내어 주고
또
내어 주어도 채워주는 달빛처럼 맑은 바람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질까!
맑은 바람은 달빛을 붙잡고 사라졌다.
더 많이 채우면 터질까 걱정되어 데려갔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
채우고 또 채워도 멈추지 않는 인간의 욕망.
맑은 바람은 걱정되었다.
한없이 채워주는 달빛의 너그러운 마음에 상처 입을까 걱정되었다.
맑은 바람은 달빛을 붙잡고 날았다.
숨 쉬고 싶다
맑은 바람이 되고 싶다
붙잡고 싶었던 욕망을 내려놓고
부질없는 짓 그만하고
붓을 들어야겠다
맑은 바람에 휘날리는
꽃이 되고 달빛이 되어야겠다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사고가 사라지기 전에
붓을 들어야겠다
예술이 숨 쉬는 곳으로 나아가야겠다
다시
맑은 바람이 불어오면
뼛속까지
아팠던 모든 것을 치유해 줄 것을 알기에
꿈오름!
천천히 차오른다 해도 조급해 하지 말자.
꽃이 피는 것도 다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