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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먹빛으로!
가장 신선한 예술은 모든 것에 앞서는 작가 자신의 표현이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 체험에서 비롯된 예술의 절박한 이야기와 소망과 망상의 결과물이 작품으로 표현된다.
그리움 먹빛으로!
먹을 갈고 붓을 들 때의 작가 심정은 어떠할까!
자연의 이치는 생성과 소멸의 연속이다.
수묵화를 통해 마음을 수련할 수 있는 방법은 널리 알려졌다.
조선시대의 사대부가 사군자(四君子)를 통해 마음을 수련하고 치유했고 정치를 다스렸다.
도교적 생명관은 자연스럽게 수묵화를 통해 마음으로 스며들었으며 그 결과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마음에 스며든 그리움은 먹물을 만나며 빛을 발산한다. 작가의 생명관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한지와 천 위에 붓이 스치듯 지나가면 그 위에는 빛을 먹은 생명체가 탄생한다.
현대회화에 있어 그림을 그리는 예술행위는 예술가 자신의 기쁨에 비중을 둘 수 있지만 과거 인간이 그림을 그리는 인식은 현대의 입장과는 다르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 고대인의 그림은 자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들에 관한 경험의 표현이었다. 고대인은 그림을 그릴 때 보이는 그대로의 묘사가 아닌 그들이 인식하는 형상을 그린 것이다. 곧 그들의 인식은 상상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는 데 이런 현상은 인식하는 형태와 상상을 통해 창조하는 형태는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고 상상의 세계로 가져오는 예술적 행위를 하게 된다. 물론 행위에 있어서 개개인의 차이는 있다.
초기 작품인 수묵화를 통해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고 그렸다면 베틀에 짜인 천 조각에 그리는 작품에서 우주와 인간의 생명관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천은 우주가 되고 달이 되기도 하지만 작품에서는 우주의 경계가 되고 인간이 되어 관객을 맞이한다. 천은 작가의 생명관과 역동성의 혁신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수 있다.
예술은 궁극적으로 작가의 철저한 신념과 사상이 결합된 개성적인 표현기교에서 창조적 생명이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독창적인 표현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낼 때 예술적 승화의 꽃이 필 것이다.
대나무
백자항아리
보름달
기다란 천
바람과 공간
소소한 것이 모여 만들어가는 콜라주 형태의 설치 작품은 작가의 의도대로 보여주는 의미를 담아냈다.
관계를 그리고 자연을 그리는 작가의 의도와 맞아떨어진다.
본다는 것과 보여주는 것과의 관계를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작업 과정은 보는 관객에게 깊은 감동을 선물한다.
천 년을 산다는 대나무나 음양의 조화에서 생명관으로 이어지는 보름달이 빛을 통해 감동을 선물한다.
보일 듯 말 듯 백자항아리를 비추는 달빛의 아름다움은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대중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
바람이 불면 흐느적거리는 천 위의 달빛은 밝고 어둠으로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그것이 바로 보름달의 음양 조화 속 생명관이다.
시도하지 않는 것!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예술가는 무엇이든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창작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인류가 진화하며 발전해 가는 과정에 예술 행위는 인간이 행하는 자연스러운 도(道)이기도 하다.
실제로
예술가는 정신 생명을 외부로 투사하고 대자연에 귀를 기울이며 그것을 정신화하고 이상화하였다.
먹은 색과 빛을 받아 새롭게 탄생하며 자연의 원초적 예술로 돌아간다.
묵묵히 가야 할 길!
내가 가지 않으면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다.
자연이란!
우주만물의 일체를 지칭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다.
고대 동양인들은 자연의 무생명의 존재가 아닌 살아 생동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자연과 더불어 생을 영위하고 그 속에 섭리를 찾아가며 맞추고 관조하며 순응하며 따르고자 했다.
또한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 하여 자연의 모든 생성변화와 소유법칙이 되는 최고의 개념이 도(道)와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한마디로 동양인들은 인간과 우주의 근원을 도(道)라 생각한다.
원초적 자연과 완성된 자연 사이에는 우주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고, 도(道)는 창조의 연쇄라는 우주 질서를 말한다.
인류 보편적 사회동포주의(홍익인간) 관점에서 동양 최고의 예술은 인격정신이 구체화되어야 하며 최고의 인격은 자연과 더불어 합일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움 먹빛으로!
작가의 예술혼은 도(道)의 길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본다는 것을 넘어 보여주는 것의 예술성이 가득한 작가의 개인전을 둘러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바람이 불듯 가볍게 작품을 걸고 설치하였다.
그것은 곧
자연과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가는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리움!
그것은 모두의 꿈과 소망이다.
먹빛으로 한 획 한 획 그어갈 때 비로소 이뤄질 것이다.
-전시장 이모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