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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화작가 김동석 Apr 13. 2022

죽어도 같이!

달콤시리즈 177

죽어도 같이!



마을회관이 시끄럽다.


“내가 만났다니까!”

순이 할머니는 오늘도 마을회관에서 어젯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내년이면

백오십(150) 살이나 먹는 순이 할머니는 곁으로 보면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았어요.


“어젯밤에도 왔단 말이지?”

순철이 할머니가 순이 할머니에게 물었어요.


“그래!

아주 새까만 옷을 입고 왔다니까!”

순이 할머니는 어젯밤에 본 저승사자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일찍 잠을 잤는데

달빛이 창문 사이로 비추더니

저승사자가

방으로 들어왔어!”


순이 할머니 이야기를 할머니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어요.


“저승사자가 뭐라고 했어요?”

아랫목에 누워있던 민수 할머니가 물었어요.


“할머니!

모시러 왔습니다! 하고 말했어.”

순이 할머니는 밤에 저승사자가 와서 한 이야기를 자세히 말했어요.


“그런데 안 죽었어?”

하고 철수 할아버지가 물었어요.


“내가

대답을 안 했어!

지금까지

저승사자가 몇 번 왔는데

나는 절대로

저승사자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순이 할머니는 저승사자가 묻는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승사자가 이번에 또 바뀌었어!”

하고 순이 할머니가 말했어요.


“아니!

저승사자도 바뀌나?”

하고 철수 할아버지가 물었어요.


“죽을 사람을

안 데려가니까

옥황상제가

다른 저승사자를 보낸 거야!”


순이 할머니는

저승사자가 말한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저승사자가

묻는 질문에

대답만 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단 말이야!”


하고 민주 할머니가 물었어요.


“난! 모르지!

저승사자가 내려와서 바뀌었다고 해서 알게 되었지.”

저승사자는 밤마다 죽은 영혼을 데려가기 위해서 이승에 내려왔어요.


순이 할머니도

오십(50)년 전에 죽을 목숨이었는데

저승사자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대답만

하지 않으면

오래 산다고 누가 그랬어?”


하고 영자 할머니가 물었어요.


“그건 저승사자가 날 찾아왔는데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버티니까

 새벽이 오고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저승사자가 돌아갔어!”


순이 할머니는

아주 자세히 저승사자를 만난 것과

또 저승사자가 밤새 기다리다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돌아간 이야기를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해주었어요.


“나이가 몇 살인지 알기는 알아?”

철수 할아버지가 순이 할머니에게 물었어요.


“작년까지 알았는데 올해는 몇 살인지 모르겠어요!”

순이 할머니는 이제 나이를 세는 것도 포기하고 그냥 즐겁게 사는 게 좋았어요.


“죽을 때가 되면 죽어야 해!”


영자 할머니가 누워있다 일어나더니 말했어요.


“나도 죽고 싶어요!

하지만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저승사자가 기다리다 그냥 갔어요.”


순이 할머니가 말하자


“그럼! 할망구가 묻지 그랬어!”

철수 할아버지가 말하자


“뭐라고 물어봐요!

저승사자님 절 데리러 왔어요!

하고 물어봐요?”


순이 할머니는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게 미안했어요.


“오늘 밤에는 저승사자가 오면 말해요!”

하고 민주 할머니가 말하자


“뭐라고!

민주 할머니가 죽고 싶데요! 하고 말할까!”

순이 할머니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미쳤어요!

난 이제 아흔아홉(99)인데!”

민주 할머니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어요.


“그럼!

철수 할아버지가 죽고 싶다고 했으니 철수네 집으로 가세요!”

하고 순이 할머니가 말하자


“하하하! 좋아!

내게 저승사자가 오면

순이 할머니랑 같이 데려가면

저승길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을 테니

간다고 하지 뭐!”


철수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호호호!

늙은이 둘이 사귀는 거야?”

하고 영자 할머니가 물었어요.


“이 할망구가!

사귀긴 누가 사귄다고!”


순이 할머니가 말하자


“아니!

저승길에 동행하면

심심하지 않고 얼마나 좋아!”


하고 철수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난!

싫으니 다른 곳에 가서 알아보세요!”

하고 순이 할머니가 말했어요.


“걱정 마세요!

난 아직 죽으려면 멀었으니.”

철수 할아버지가 말하고 밖으로 나갔어요.


마을회관에 있던 할머니들은

순이 할머니가 만난 저승사자 이야기를 들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어둠이 내리고

달빛이 조금 비추는 시간이었어요.


“할머니! 할머니! 순이 할머니!”

순이 할머니가 자고 있는 방에 저승사자가 들어와 불렀어요.

하지만

순이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할머니!

제 목소리 들리죠?”

하고 저승사자가 할머니 귀 가까이 가서 말했어요.


“아니! 아니!

안 들려!”

하고 말하려다 순이 할머니는 꾹 참았어요.


“할머니!

철수 할아버지가

조금 전에 저승길에

함께 가자고 했어요!”


하고 저승사자가 말했어요.


“뭐라고!

철수 할아버지가 죽었어요?”

하고 순이 할머니가 일어나더니 저승사자에게 말했어요.


“하하하!

드디어 말을 하셨군요!”

저승사자가 순이 할머니 목소리를 듣더니 크게 웃으며 말했어요.


“아이코! 어쩌나!”

순이 할머니는 이불을 차고 일어나더니 불을 켜려고 했어요.


“안 돼요!”

하고 저승사자가 말했어요.


“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데

불도 못 켜게 하다니!”


하고 말한 순이 할머니가 스위치를 찾았어요.


“안 돼요!”

하고 저승사자가 말하더니 불이 켜지자 창문 밖으로 도망쳤어요.


저승사자는

밝은 빛 아래서는 온몸이 사르르 녹아버리기 때문에

이번에도 순이 할머니를 데리고 갈 수 없었어요.


“어디 갔지!”

순이 할머니가 불을 켜고 저승사자를 찾았어요.

하지만 보이지 않았어요.


방에는

아무도 또 아무것도 없었어요.


“철수 할아버지가 저승길을 같이 가자고 했다고!”

순이 할머니는 이불 위에 앉아 조금 전에 저승사자가 한 말을 생각했어요.


“어림없지!”

순이 할머니는 죽어도 저승길은 혼자 가고 싶었어요.


“할머니! 할머니!

처음 뵙겠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새로 온 저승사자가 순이 할머니를 찾아왔어요.


“목소리가 다른 데!”

하고 말하고 싶은 순이 할머니는 눈을 꼭 감고 자는 척했어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할머니!

저는 옥황상제가 보낸

저승사자입니다!”


하고 젊은 저승사자가 말했지만 순이 할머니는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이상하지!

백오십(150) 살이나 먹어서 귀가 먹었나!”

저승사자는 순이 할머니가 듣지 못하는 줄 알았어요.


“이놈이!

잘만 들리는구먼!”

하고 말하려다 순이 할머니는 꾹 참았어요.


“할머니!

오늘은 꼭 모시고 갈게요!”

젊은 저승사자는 말이 없는 할머니를 저승으로 모시고 갈 생각을 했어요.


“누가 간데!”

하고 말하려다 순이 할머니는 또 참았어요.


저승사자는

밖으로 나가 닭장으로 갔어요.


“새벽 4시가 되어도 울면 안 돼!”

하고 저승사자는 닭들에게 말했어요.


‘꼬꼬 꼬꼬! 꼬꼬 꼬꼬!’

닭들은 검은 그림자가 닭장을 기웃거리면서 말하자 무서웠어요.

닭들에게 새벽이 오는 것을 알리지 말라고 하고

저승사자는 다시 순이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어요.


“할머니!

할머니!

오늘 새벽에는 닭도 울지 않을 거예요!”


이불을 뒤집어쓴 순이 할머니에게 저승사자가 말했어요.


“왜!

닭이 안 울어?”

하고 물으려다 또 꾹 참았어요.


“할머니!

할머니!

순이 할머니!

이제 곧

새벽이 오니

출발해야 합니다.”


저승사자는 순이 할머니에게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안 가!

아니 못 가!”


하고 순이 할머니가 이불을 밀치며 그만 말하고 말았어요.


“하하하! 하하하하!

할머니 말도 잘하는군요.”

웃으며 저승사자가 말했어요.


“안 가!

아니 아직 못 가!

그러니까 가서

옥황상제에게 말해!”


하고 순이 할머니가 말하자


‘꼬끼오! 꼬끼오!’

닭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아니!

저 녀석들이 울다니!”

저승사자는 닭이 울자 순이 할머니 방에서 나갔어요.


“오늘은 순이 할머니를 모시고 갈 수 있었는데!”

젊은 저승사자는

닭이 새벽을 알리는 바람에 그만 순이 할머니를 모시고 갈 수 없었어요.



          그림 나오미 G




“하하하!

난 여기가 좋아!”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랑 아침을 먹으며 말했어요.


“어머니!

또 저승사자 꿈꿨어요?”

하고 며느리가 물었어요.


“저승사자가

닭들에게 협박했으니까

밥 먹고 닭장에 가봐!”


하고 할머니가 아들에게 말했어요.


“할머니!

저승사자도 협박해요?”

하고 손녀가 물었어요.


“저승에서 왔으니

갈 때는 혼자 가면 안 되니까 누굴 협박이라도 해서 데려가려고 하지!”

하고 할머니가 말하자


“어머니!

저승사자도 협박하는 세상이 되었군요!”


하고 아들이 말했어요.


“요즘

저승에 가는 사람이 없으니

아마 저승사자도 협박이라도 해야 한 명이라도 데려갈 수 있을 거야!”

하고 할머니가 말하자


“할머니!

저승사자를 이길 수 있는 비법을

제게 알려주세요!”


손녀가 할머니 말을 듣고 말했어요.


“뭐하려고?”

할머니가 묻자


“저는 할머니보다 더 오래 살면서 저승사자랑 친구 할 거예요!”

손녀가 웃으며 말했다.


“저승사자는

친구는 아무나 해주지 않아!”


하고 할머니가 말했어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저승사자가 와도 무섭지 않고 데려가지 못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하고 손녀가 말했어요.


“너무 오래 살면 안 좋아!”

할머니는 백오십(150) 살이 되니까 너무 오래 산 게 후회스럽고 귀찮았어요.


“할머니!

저는 이백(200) 살까지 살 거예요!”


손녀는 정말 오래오래 살 것처럼 말했어요.


“좋지!

이 할미보다 더 오래 살면 가문의 영광이지!”

하고 할머니가 말했어요.


손녀와 할머니가 하는 이야기를 듣던

아들과 며느리는 누가 어린이고 누가 어른인지 알 수 없었어요.


“할머니! 할머니!”

지난번에 온 저승사자가 또 할머니를 찾아왔어요.


“왜!

또 왔어?”

하고 물으려다 순이 할머니는 꾹 참았어요.


“할머니!

오늘은 데리러 오지 않았어요!”

하고 말하더니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럼!

뭐 하러 왔어?”

하고 저승사자에게 묻고 싶었지만 순이 할머니는 또 꾹 참았어요.


“할머니!

옥황상제가 할머니에게 상을 내렸어요!”


하고 저승사자가 말하자


“뭐라고! 상!”

하고 말하더니 덮고 있던 이불을 박차고 할머니가 일어났어요.


“할머니! 할머니!”

어둠 속에서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할머니 얼굴을 봤어요.

하지만

순이 할머니는 어둠 속에서 저승사자가 보이지 않았어요.


“어머나!

내가 말을 하다니!”


하고 말한

 순이 할머니는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어요.


“할머니!

오늘은 안 데려간다니까요.”

하고 저승사자가 다시 말했어요.


“옥황상제가

저승사자를 돌려보낸

할머니

배짱과 용기에 감탄하여

큰 상을 내렸어요!”


하고 저승사자가 말했어요.


“옥황상제가!

상을!”

할머니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요.


“무슨 상!”

이불을 밀치고 일어나더니 할머니는 저승사자에게 물었어요.


“할머니!

여기에 놓고 갈 테니 내일 아침에 보세요.”

하고 말하더니 저승사자는 달빛이 비치는 문을 열고 나갔어요.


“세상에!

옥황상제가

내게 상을 주다니 도대체 뭘까?”


할머니는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이불을 밀치고 일어났어요.

그리고 전기 스위치를 켜기 위해서 가려다 말고


“아!

빛을 보면 스르르 녹아버릴지도 모르잖아.”

하고 말한 할머니는 불을 켜지 않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어요.


“옥황상제가 준 상이라!”

할머니는 옥황상제가 어떤 상을 주었을까 하고 생각하다 잠이 들었어요.


“순이 할머니라고 했지!”


“네!”


“너는 어찌하여

저승사자들을 한 번도 아니고

보낼 때마다

다시 내게 돌려보냈느냐?”


하고 옥황상제가 순이 할머니에게 물었어요.


“저는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하고 순이 할머니가 말했어요.


“뭐라고!

저승사자를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네!”


“너를 데려오라고 저승사자를 보냈더니 항상 혼자 왔는데!”

하고 옥황상제가 말하자


“저는

저승사자가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을 뿐

혼자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냐?”


“네!

저승사자들은 기다리다 새벽닭이 울면 다시 돌아갔습니다.”

하고 순이 할머니가 말했어요.


“기다리다 갔다고!”


“네!”

옥황상제는 순이 할머니가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없었어요.


저승사자들은

이승에 가면 책임을 지고 누군가를 데리고 왔는데

순이 할머니에게 간 저승사자들은 모두 혼자 돌아왔어요.


“무슨 이유로

저승사자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는가?”


하고 옥황상제가 순이 할머니에게 물었어요.


“무서워 죽겠는데 어떻게 대답해요!”


하고 순이 할머니가 말했어요.


“그랬구나!”

옥황상제는

순이 할머니가 자신에게도 큰소리치는 것을 보고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내 너에게 큰 상을 내리마!”

하고 옥황상제가 순이 할머니에게 말했어요.


“저는 늙어서 상 같은 것 필요 없어요!”

하고 순이 할머니가 말했어요.


“상이 필요 없다고!”


“네!

옥황상제님!”

순이 할머니는 정말 어떤 상도 받고 싶지 않았어요.


“마음씨도 착하구나!”

옥황상제는 순이 할머니가 상을 받고 싶지 않다고 해서 다시 저승으로 가져갔어요.




“꿈!

꿈이었구나!”

순이 할머니가 눈을 뜨자 방 안은 벌써 햇살이 들어와 있었어요.


“꿈이라니!”

순이 할머니는 이불속에서 조금 전에 꾼 꿈속으로 들어갔어요.


“내 상!

상을 도로 가져가다니!”

순이 할머니는 이불을 밀치고 방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옥황상제가 준 상이 었는데!”

순이 할머니는 한참 멍하니 누워 있었어요.


“어머니!

진지 잡수세요.”

하고 며느리가 방문을 열며 말했어요.


“그래!

아침 먹어야지!”

하고 말하더니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었어요.


“이상하다!”

며느리는 어머니가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부엌으로 갔어요.


“옥황상제라고 하더니!

상을 주었으면

그냥 놓고 갈 일이지

왜 다시 가져간 거야!”


순이 할머니는

아침을 먹고 녹차를 마시며 어젯밤 저승사자가 한 말이 생각났어요.


“무슨 상을 줬을까?”

순이 할머니는 정말 궁금했어요.


“다음에

저승사자가 오면 물어봐야지!”

하고 말하더니 지팡이를 찾았어요.


“마을회관이나 가봐야지! 다들 잘 있는지도 봐야 하고!”

순이 할머니는 옷을 따뜻하게 입더니


“아가!

마을회관 간다!”

하고 며느리에게 말하고 현관문을 열었어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부엌에서 설거지하던 며느리가 말했어요.

순이 할머니가 마을회관에 가면 또 어젯밤 꿈 이야기를 할까요?

오늘도

마을회관에는 많은 어른들이 모여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죽어도 난 혼자 죽지 않아!

그러니까

모두 조심하라고!

누구와 함께 죽을지는 내가 결정할 테니까!"


순이 할머니는

거짓말도 진실인 것처럼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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