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꽃!
기다림은
갈등의 연속이었다.
과정을 통해 결과를 얻기까지 기다림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겨울이 오고 봄이 오듯
멈추지 않는 시간은 기다림의 보상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다림에 지쳐 <갈등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갈등을 생각하는 순간
<갈등의 꽃>은 기다렸다는 듯 꽃망울을 터트렸다.
그리고
눈을 맞으며 핀 동백꽃보다도
또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핀 매화보다도 갈등의 꽃은 오랫동안 피어 있었다.
"그거 아세요?
<기다림의 꽃과 갈등의 꽃>의 공통점!"
이 꽃들은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보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기다림의 꽃>!"
그 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했다.
여름에 피는 백일홍이 백일 동안 피는 꽃이다.
<기다림의 꽃>은
며칠 동안 피는 꽃망울도 있지만 몇 달을 피어 있는 꽃도 있다.
<기다림의 꽃>을 보기 위해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절대로
<기다림의 꽃>은 볼 수 없다.
사람들은
갈등이 시작되면 <기다림 꽃> 싹을 꺾어 버린다.
포기하고 또 뒤로 미룬다.
나를 탓하고 남을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위로하고
묵묵히 기다리는 자에게
<기다림의 꽃>은 꽃망울을 터트려 기쁘게 해 준다.
“여러분은
<기다림의 꽃>을 본 적이 있는가?”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는 자는
<기다림의 꽃>을 곧 볼 것이다.
“그런
꽃이 어디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그냥 편하게 살래.”
하고 말한다면
<기다림의 꽃>이 꽃망울을 터트릴 때의 경이로움을 절대 볼 수 없다.
<기다림의 꽃>이
경이롭고 대단한 것은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을 해도
경지에 올라야 하고
또
무엇을 이루고 싶어도
묵묵히
끝까지 해나갈 때 <기다림의 꽃>을 볼 수 있다.
“기다림은 소나타이고 안단테다!”
때론 빠르게
그리고
가끔 느리게 기다림은 이어진다.
우리가 보듯
시간은 멈추지 않고 가지만
기다림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멈춘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바보 같은 짓은 없다.
하지만
<기다림의 꽃>은
언젠가는
꽃망울을 터트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난!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기다림의 꽃>의 장점이다.
누구나
끝까지 기다리고
<기다림의 꽃>을 볼 수 있다면
그 꽃은 평범한 꽃이다.
<기다림의 꽃>!
여러분은
어떤 기다림의 꽃망울이 만개하기를 바라는가?
성공의 기다림인가!
아니면
행복한 삶의 기다림인가!
엄마가 <기다리는 꽃>은
아마도
태어난 아기의 꽃일 것이다.
엉금엉금 기어 다니던 아기가
두 발로 일어나
아장아장 걷기까지 엄마는 기다려야 한다.
물론
걷는 연습도 시키고
온갖 지혜를 동원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또는
남의 집 아이보다 더 빨리 걷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기다림의 꽃>이 어떤 꽃망울인지 안다.
연구실에서
하루 종일 무엇인가에 몰두하는 학자도
엄마 못지않게
<기다림의 꽃>이 만개하기를 기다린다.
누군가는
기다리다 지쳐 포기하고 뒤돌아 설 것이고
누군가는
기다리다 지쳐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고
나아간다면
<기다림의 꽃>은 아름답고 경이롭게 필 것이다.
“난!
포기할 거야.
기다리다 죽겠어!”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그런데
자장면 배달시키고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해본 사람은 모른다.
자장면이 맛있는 이유는 기다림의 미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몇 분도 기다리지 못해
전화를 한다.
"네! 출발했습니다."
"네! 도착할 때 되었습니다."
"벌써! 출발했으니까 기다려보세요."
이 정도 전화했으면
자장면 맛은 머리속에서 오래전에 사라졌다.
도착하면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하며 돈 주면
자장면 맛은 머리속에 남은 게 없다.
<기다림의 꽃>을
단순하게 예를 들어본 것이다.
기다림은
목숨도 빼앗아 갈 수 있는 힘을 지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뿐인 목숨을 지키려고
그 보기 힘든
<기다림의 꽃>을 포기한다.
“하하하!
그럴 줄 알았지.
잘했어!
아주 잘 했어.”
여러분이 포기하고 뒤돌아서는 순간
<기다림의 꽃>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웃는다.
“조금만 참을 걸!”
여러분이 조금만 참았다면
분명히
나만 볼 수 있는 <기다림의 꽃>이 활짝 핀 걸 봤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망각의 동물이고
포기할 줄 아는 인간이기에 쉽게 포기해 버린다.
기다리지 못하고 포기하는 자에게
<기다림의 꽃>은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가끔
그 <기다림의 꽃>이 살짝 꽃망울을 보여줘도
내 안의 잠재된 무엇인가가
나를 고통스러운 곳으로 안내하고 볼 수 없게 한다.
그림 나오미 G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가?”
그 무엇의 끝까지 버티고 갈 수 있는가!
아니면
언젠가는 포기할지라도
갈 때까지 가보자 식으로 버티고 있는가!
무엇의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버티는 힘이 있어야 한다.
또 살아있어야 한다.
<기다림의 꽃>이 만개하길
내가 바라고 원한다면
절대로
그 무엇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듯
우리가 기다리는 꽃도
때가 되어야 핀다는 것을 잊지마라.
“내가 기다리는 꽃은 피지 않을 거예요!”
이런 생각으로
기다리는 걸 포기했다면 죽은 자와 마찬가지다.
죽은 꽃이라도
살려낼 생각이 있어야 한다.
또
살려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여러분이 기다리는 <기다림의 꽃>이 만개하는 법이다.
엄동설한(嚴冬雪寒)을 맞이하며 핀 동백꽃을 보라.
또
늦겨울의 마지막을 사랑해 봄이 오기도 전에 꽃망울을 터트리는 매화를 보라.
꽃들은
자기가 언제 꽃망울을 터트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기다리는 <기다림의 꽃>은 볼 수도 없고 또 언제 피는지도 모른다.
“<기다림의 꽃>!”
여러분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꼭 필 것이다.
비록
삶이 고통스럽고 기다리다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아니 내가
<기다리는 꽃>은
반드시 핀다는 것은 절대적 진리다.
“나는
내가 피우고자 한 꽃이 피기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마음만 먹는다고 <기다림의 꽃>은 피지 않는다.
여러분이
정성을 들이고 노력할 때
그 <기다림의 꽃>은 피어나는 법이다.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내 <기다림의 꽃>이 피지 않았다면
죽은 후
언젠가는 누구를 위해 피는 꽃이 될 수도 있다.
“일상이 그리운 꽃!”
우리는 <코로나19>로 지쳤다.
우리가 기다리는 <기다림의 꽃>은
바로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간절한 마음으로 그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린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두가 바라는 꽃!
행복한 일상의 꽃이 바로 모두가 기다리는 <기다림의 꽃>이 아닐까!
그 꽃이
피어나기 위해선 정성이 필요하다.
물을 주고 거름을 줘야 한다.
빛과 어둠의 반복이 연속되어야 한다.
내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기다리면
지금이라도
<기다림의 꽃>은 꽃망울을 터트릴 것이다.
“분명히!
우리가 기다리는 <기다림의 꽃>은 핀다."
우리 모두 믿음을 갖자.
꽃망울도 올라오지 않은 것에 목숨 걸지 말자.
기다려야 한다.
"언제까지!
기다리다 죽어.
그래도
기다리라고?"
하고 묻는다면
"네!
어차피 살아갈 거잖아요.
죽여달라
기도해도 소용없어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기다림의 세상을
좀 더 지혜롭게 살아가자.
세상의 어린이들아!
가장 아름다운 꽃은 가장 힘들게 피어난단다.
또
가장 아름다운 꽃은
때가 되어야 피어난단다.
두려워하지 마라!
기다리는 꽃을
피우지 못하게 막을 자 없단다.
세상의 어린이들아!
기다림의 꽃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시간의 거름이란다.
그 정성이 하나 둘 쌓이면
기다림의 꽃은
금방 꽃망울을 터트릴 것이란다.
“그 꽃 내가 살게요!”
어둠의 악마는
<기다림의 꽃>을 사려고 한다.
여러분이
기다리는 <기다림의 꽃>을 포기하면
고맙다는 말도 없이 주워간다.
악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바로 <기다림의 꽃>이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여러분이 기다리는
<기다림의 꽃>이 바로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절대로
악마에게 파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