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면서 또다시 돌아온다!
달콤시리즈 300
변화하면서 또다시 돌아온다!
나무가 되고 싶었던 소녀는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창문을 열고 울타리 너머의 이웃집 마당에서 자라는 느티나무를 보는 일이다.
아침 햇살을 맞이하는
느티나무의 많은 가지들이 마음에 들었다.
가지들과 나무가
함께 만들어 내는 것은 불규칙적이지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태를 뽐내면서 단정한 잎들이 햇살을 붙잡고 노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빛을 잡을 수 있다니.
놀라워!”
소녀의 눈에는
느티나무 잎들이 햇살을 붙잡고 노는 게 보였다.
“숲의 요정들이 나와서 노는 것처럼 보여.
잎 위에서 동그란 아침 이슬과 햇살이 춤추며 노래하고 있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소녀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창문을 닫았다.
“내일 아침에 또 봐야지!
안녕.”
느티나무에게 인사하고 엄마에게 달려갔다.
“뭐했어?”
“이웃집 느티나무랑 인사했어.”
“뭐라고 하던?”
“오늘 아침 햇살이 너무 아름답다고 했어.”
“또 다른 말은?”
엄마는 딸이 아침에 본 것들이 궁금했다.
“없었어!
그런데
잎들이 햇살을 붙잡고 노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어!”
“햇살을 붙잡고 논다고?”
“응.”
“어떻게 잎들이 햇살을 붙잡을 수 있지?”
딸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엄마는 더 호기심이 생겼다.
“나도 그건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히 잎들 위에는 햇살이 머물고 있었어.
그리고
숲의 요정들이 그 위에서 춤추고 있었어.
아침 이슬과 햇살도
함께 춤추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어.
엄마도
내일 아침에 창문을 열고 이웃집 느티나무를 봐봐!”
“엄마도 한 번 봐야겠다.”
딸이 진지하게 하는 말을 듣던 엄마도 내일 아침에는 창문을 열고 볼 생각을 했다.
소녀는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다.
고목이 된 느티나무는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깊이 내린 뿌리와 억센 줄기로 지탱하며 살아왔다.
고루 퍼진 가지와 잎들은
무더운 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해 주었다.
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나무가 되었다.
“무엇이든
오래 바라보면 새로운 것들이 보여!”
소녀는 언젠가부터 존재하는 사물에 대해 오래오래 보는 습관이 생겼다.
느티나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 소녀는 나무를 사랑했다.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니?”
마을 어른들이 소녀를 보고 가끔 물었다.
“나무가 될 거예요!”
초등학생이 된 소녀의 꿈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나무가 되고 싶은 소녀의 꿈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뭐라고?”
엄마가 묻자
“나무가 되고 싶어요!”
“왜?”
엄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나무가 될 거예요!”
누군가 꿈에 대해서 물어보면 소녀는 항상 나무가 되겠다고 대답했다.
학교에 내는 미래의 희망이나 꿈같은 것을 적어내는 칸에도 나무가 되겠다고 썼다.
정말 소녀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산에서 자라는 나무이건
거리에서 자라거나 공원에서 자라는 나무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화가가 되면 나무가 될 수 있을 거야!”
아빠의 말을 듣고
그림을 그린 뒤로 소녀의 꿈은 더욱 현실화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스케치북에 나무를 그리면 나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나무가 아닌 한 소녀로 살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막아줘서 고맙고,
비가 오면 비를 피하게 해 줘서 고맙고,
날씨가 더우면 그늘을 제공해 줘서 고맙고,
밥을 지을 땔감이 되어 줘서 고마운 나무다.
이제!
이것으로 마지막이라고 꽃은 핀다.
변화하면서 또다시 돌아온다.
소녀는 주말마다
카메라와 스케치북을 들고 숲으로 갔다.
그리고 그림을 그렸다.
아니
나무를 그렸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소녀가 그림을 그릴 때마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필요한 종이와 연필을 만들어 주고 소녀가 숨 쉴 수 있도록 산소를 공급해 주었다.
태풍을 이겨내고
천둥과 번개를 피한 가지들은 강한 의지와 예의를 배울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다.
소녀는 불규칙적인 가지를 통해 규칙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처럼
숲은 소녀의 마음에 큰 희망을 선물해 주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나무는 변화된 모습으로 소녀를 반겼다.
가지나 잎 사이를 통과한 빛들은 정말 아름다운 꽃처럼 보였다.
가지 사이에서 숲 속의 요정을 보기도 했다.
또 악마 같은 모습으로 소녀의 마음을 훔치는 형상도 있었다.
나뭇가지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모습들이 소녀를 행복하게 했다.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만 있던 나무가
봄이 되면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소녀의 마음을 빼앗아 갔다.
“내 마음을 빼앗아 가도 좋아!
내게 가장 소중한 나무가 달라고 하면 무엇이든 줄 수 있어.”
나무가 되고 싶었던 소녀는 나무가 달라면 무엇이든 줄 생각이었다.
나무만 될 수 있다면 마음도 영혼까지도 줄 소녀였다.
아니
나무가 되지 않아도 다 줄 것 같았다.
봄이 오자
소녀는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다.
“목도리라도 하지?”
집을 나서는 딸을 보고 엄마는 아직 추운 날씨에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되었다.
훌쩍 커버린 딸이 이제는 혼자 숲으로 달려가는 게 대견스럽기도 했다.
“괜찮아요.”
아직도 바람이 차갑지만 숲 속은 벌써 봄을 맞이하고 있다.
나방들이 날아다니고 진달래와 철쭉은 꽃망울이 제법 영글었다.
따뜻한 햇살이 하루만 더 스치면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았다.
“이 순간을 찍어야지!”
카메라를 든 소녀의 마음에도 꽃망울이 영글어 갔다.
숲으로 달려가는 소녀에게 생명이 잉태되고 꽃향기가 가득한 숲 속의 하루는 짧기만 했다.
“넓은 들판으로 가자.”
소녀는 들판에 핀 꽃들이 보고 싶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소녀는 자연에서 본 그대로 화폭에 옮겨 그렸다.
눈으로 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와서 화폭에 담아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림 나오미 G
“와!
바늘꽃이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활짝 핀 바늘꽃이 소녀를 반겼다.
“어쩜!
저렇게 예쁠까?”
소녀는 바늘꽃 밭을 향해 달렸다.
달리다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정말 예쁘다!”
소녀는 숨도 쉬지 않고 바늘꽃 향기를 듬뿍 마셨다.
보석을 찾은 것 같은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향기롭다!”
소녀는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허리를 구부리기도 하고 고개를 숙이면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 중에서 또 하나는 캔버스에 멋지게 그림을 그릴 것이다.
“엄마를 모시고 와서 보여줘야지!”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혼자 보는 게 항상 아쉬웠다.
엄마를 생각하는 것을 보면
나무가 되고 싶었던 소녀는 몸도 마음도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다음에 엄마를 꼭 모시고 와야겠어.”
가끔 따라나서는 엄마를 말릴 때도 있었다.
사진을 찍다 보면 엄마를 챙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연이 주는 행복이란 게 이런 것이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를
찰나의 순간이 주는 아름다움은 어디든 존재한다.
그것을
찾아내는 게 사람들의 몫이다.
소녀는 꽃이 피는 나무를 좋아한다.
봄에 피는 과일나무 꽃이나 공원에 피는 벚꽃나무를 특히 좋아한다.
나무 아래서 향기를 맡는 재미도 있지만
다른 나무들과 어울려
다른 색을 연출하는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내가
나무가 되었다면 어떤 나무가 되었을까?
사계절이 푸른 소나무가 되었을까?
아니면
봄을 노래하는 벚꽃나무가 되었을까?
가을에 가장 아름다움을 뽑내는 단풍나무가 되었을까?
혹시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는 겨울나무가 되었을까?”
소녀는 그림을 그리다 말고 나무가 된 자신을 생각해봤다.
어쩌면
생을 마감한 후 나무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할지도 모른다.
나무는
누군가 꺾지 않고 톱으로 베지 않는다면 오래오래 산다.
자연의 재해나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면 천 년이고 만 년이고 나무는 살 수 있다.
하지만
나무가 되고 싶은 소녀에게서
천 년 만 년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소녀는
매년 벚꽃이 가장 화사하게 피는 날을 기다렸다.
가장 화려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활짝 핀 배나무 꽃보다도
산에 외롭게 혼자 만개한 벚꽃나무를 더 좋아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산속 어딘가에 핀 벚꽃나무를 만나면 마음이 설레었다.
“어디서 와서
이곳에서 꽃을 피웠을까!”
소녀는
몹시도 궁금했다.
“고향이 어딜까!
혹시 다른 나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지는 않았을까!”
많은 나무들 사이에 끼여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는 벚꽃나무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쳐주는 자연의 충고 같았다.
“서로 다름 속에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펼쳐 보이는 것은 당당함이다!”
소녀는
나무를 보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더 많은 나무를 보러 이곳저곳을 다녔다.
산속 어딘가에 핀 벚꽃과
이보다 먼저 꽃이 피는 산수유는 산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것도
깊은 산속에서 만나는
벚꽃이나 산수유는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바라보게 한다.
나비와 꿀벌을 불러 모으며
보이지 않지만 정해진 시간이 되어야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것을 보니 서로가 약속을 한 듯 보였다.
“내가
나무가 될 수 없다니 안타깝다!”
가끔
생각나는 이 한 마디가 걸음을 멈추게 했다.
소녀는
오늘도 열심히 꽃과 나무를 화폭에 담았다.
“나무가 될 수 없다면!
더 많은 나무를 보러 다니고 더 많이 그릴 거야.”
학교에서 돌아온 소녀는 오늘도 숲으로 달려갔다.
동화작가 김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