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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쇼핑할까!

유혹에 빠진 동화 157

by 동화작가 김동석

가족을 쇼핑할까!





긴 침묵의 시간이었다.

허수아비, 눈사람, 귀신 등을 할머니가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소통!

가족끼리 소통하지 않은 게 문제란 걸 알았다.

아들과 며느리가 웃고 있을 때 할머니는 말없이 밖을 보고 있었다


손녀(초등 6학년)가 쇼핑을 할 때마다

할머니 잔소리는 더욱 심해진 것이 아니라 조용해졌다.


“세월이 흐르는 것인지

아니면

쌓여가는 것인지!”

가끔 할머니가 손녀를 보고 던지는 한 마디였다.


“할머니!

쇼핑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고요.”

손녀는 매일 인터넷 곳곳을 뒤적이며 상품 주문을 했다.


주문한 상품이

새벽이면 배송되는 이 초일류 국가는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좋다고 하더니!

며칠도 안 되어 다 버렸군.”

할머니는 며칠도 가지 못하고 쇼핑한 상품을 재활용품 용기에 버리는

손녀와 아들 며느리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돈을 마구 찍어 내니 가치가 어디 있을까.”

할머니는 땀 흘리고 씨앗 뿌린 농부의 마음을 안다.


“도대체!

기다림이란 게 없는 세상이야.”

할머니는 <코로나 19>로 인해 집콕 세상에 사는 현대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자의 마음에 쏙 드는 짓들만 하고 있다니까!”

할머니는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부자들의 낙원이 더욱 튼튼해지는 게 싫었다.

그것도 모르고

밤새우며 인터넷 쇼핑에 빠져 신나게 살아가는 손녀와 아들 며느리를 보며 할머니는 속이 터졌다.


“할머니!

오늘 산 건데 어때요?”

손녀는 오늘 운동화와 모자를 샀다며 할머니에게 자랑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말이 없었다.

산골까지 인터넷 망이 들어온 뒤로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닭장에 가서 알이나 꺼내 와!”

신발과 모자를 자랑하는 손녀에게 할머니는 큰 소리로 말했다.


“싫어요!

더러운 흙이 운동화에 닿으면 안 되니까 할머니가 가서 꺼내오세요.”

손녀의 말솜씨는

칠십 년을 넘게 산 할머니보다 더 세련되고 강한 압력을 주는 능력을 발휘했다.


“할머니!

닭 똥 냄새가 싫어요.”

지난주에 닭장에서 알을 꺼내며 닭똥을 밟은 손녀는 정말 닭장에 가는 게 싫었다.


“할머니 때문에 똥 밟은 운동화 버렸잖아요!”

손녀는 똥 냄새난다며 똥 밟은 운동화를 버렸다.


“미친 것들!”

할머니는 내 가족임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매일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는 아들이나

쇼핑 천국에 빠져 밥 먹는 시간도 잊어버린 며느리와 손녀를 보며 할머니는 어찌 살아갈까 걱정이었다.


“어머니!

진주(손녀)에게 닭장에 심부름시키지 마세요.”

점심을 준비하던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닭장에서 미끄러져 알을 두 개나 깨뜨렸어요!”

며느리 말을 듣던 할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닭똥을 밟은 날

진주는 알을 두 개나 깨뜨렸었다.

손녀는 소중한 유정란 두 개를 깨뜨렸다.

알은 아깝지 않았다.

새로 산 신발에서 똥냄새가 나서 싫었다.

심부름시킨 할머니를 원망했다.

진주는 결국

새 신발을 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신발을 쇼핑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안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알도

쇼핑해서 먹지.

어리석은 것들!”

할머니는 닭장에서 알을 다섯 개나 꺼냈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은 알을 뒷마당 울타리에 하나씩 던지며 말했다.


‘턱! 턱! 턱! 턱! 턱!’

알이 울타리에 부딪치며 깨지는 소리가 뒷마당에 요란했다.


속이 답답한 할머니는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리석은 것들!

세상을 어찌 살아가려고 저럴까.”

할머니는 찬바람이 부는데도 한참을 걸었다.


"까아악! 까아악!

홍시가 맛있어!

서리 맞은 홍시가 맛있어!”

홍시가 몇 개 달린 감나무 위에서 까치가 노래 불렀다.


“새들도

저렇게 남겨둔 감을 먹으며 좋아하는 데!

인간이란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한심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할머니는

논두렁에 앉아 멀리 호수를 내려다봤다.

하늘엔

하얀 구름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물이 흐르듯

또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

손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머니!

진지 잡수세요.”

손녀는 할머니가 앉아있는 논두렁까지 걸어가 말했다.


할머니는

손녀가 끄는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

오늘은 알 없어요?”

아들이 들어오는 어머니를 보고 물었다.


“없어!”

하고 퉁명스럽게 어머니는 대답했다.


“이 녀석들!

알을 못나면 잡아먹어야겠다.”

아들은 어머니 맘도 모르고 닭 잡아먹겠다는 말을 했다.


“미쳤군!

우리 집에서 돈 버는 녀석들을 잡아먹겠다니 한심하다.”

어머니는 아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하하!

알을 못 낳으면 잡아먹어야죠.

진주가 닭볶음탕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아들은 웃으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럼!

돈도 안 벌고 게임만 하는 널 이 어미가 잡아먹을까?”

어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아들에게 물었다.


“어머니!”

아들은 어머니가 화난 것을 알았다.

아들은 어머니가 화나면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진주야!

할머니 화나셨으니 조심해.”

엄마는 딸에게 할머니 상황을 말해주었다.


“왜요?”

딸은 할머니가 화난 이유를 몰랐다.


“엄마도 모르겠다!

아직 할머니 마음까지 통찰하거나 쇼핑할 능력이 없어.”

하고 말한 며느리는 서재로 향했다.

그 뒤를 딸이 따랐다.


엄마와 딸은

서재에서 쇼핑 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엄마!

이 노란 치마 어때요?”

딸은 핸드폰에서 검색한 치마를 엄마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뭐야!

이만 원이나 해.

너무 비싸!”


“엄마!

이만 원이면 이거 원가에 파는 거예요.”


“그래도 비싸!

만 원이면 모를까.”

엄마가 허락해주지 않자 딸은 쇼핑할 마음이 없어졌다.


“진주야!

이 옷 어떠니?”

엄마는 빨간 꽃무늬 원피스를 골라 딸에게 물었다.


“얼만데요?”


“십만 원!”


“그렇게나 비싸요?

삼만 원이면 모를까!”


“얘는!

이 원피스는 실크야.”


“그래도!

너무 비싸요.”

딸은 조금 전에

치마가 비싸다고 한 엄마에게 복수를 한 것 같아 속으로 웃었다.


“이걸 사야지!”

엄마는 십만 원이나 하는 원피스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당신 카드 좀 쓸게요!”

아빠 카드를 지갑에서 꺼낸 엄마는 오늘도 멋진 원피스를 샀다.


"호호호!

주말 친구 모임에 입고 가야지.

엄마는 신나 보였다.

하지만

치마를 사지 못한 딸은 입이 몇 미터 나온 것 같았다.




주말이 되면

아빠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진주야!

닭장에 가서 알 있으면 가져와.”

아빠는 라면을 끓이며 딸에게 알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싫어요!

닭똥 냄새가 난 제일 싫어요.”

딸은 정말 똥냄새가 싫었다.


“라면에 알이 들어가야 맛있어!”

아빠는 다시 딸에게 말했다.


“그냥 먹어요!”

딸은 죽어도 닭장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이 녀석이!”

하고 말한 아빠는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알을 꺼내러 갔다.


“하하하!

알이 세 개나 있어.

좋아! 좋아!”

알을 들고 들어오던 아빠가 노래 부르며 들어왔다.


"딸!

라면 먹을 생각 마."

소파에 누워 있는 딸을 보고 아빠가 한 마디 했다.


“좋겠다!”

딸은 아빠가 신난 것이 싫었다.


“진주야!

할머니에게 라면 드시라고 말씀드리고 와.”

아빠는 라면을 끓이며 딸에게 말했다.

하지만

딸은 할머니에게 가기는커녕 소파에 누워 자는 척했다.


“진주야!

빨리 할머니 모셔와.

라면 퍼진단 말이야!”

아빠는 라면을 그릇에 담으며 딸에게 말했다.


“할머니!

라면 드세요.”

진주는 소파에서 할머니를 크게 불렀다.


“이 녀석이!

당장 일어나지 못해.”

아빠는 라면을 그릇에 담으며 딸에게 소리쳤다.


“알았어요!”

딸은 할 수 없이 일어나 할머니 방으로 향했다.


“할머니!

라면 드시게 나오세요.”

하지만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진주는

할머니 방에서 나와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도 딸도 나타나지 않자

라면을 그릇에 담아 상에 올려놓고 아들은 어머니 방으로 갔다.


“어머니!

라면 드세요.”

하고 말한 뒤 딸을 찾았다.


“당신!

라면 먹을 거야?”

안방에서 쇼핑 천국에 빠져 있는 아내에게 물었다.


“방으로!

한 그릇 배달 부탁해요.”

아내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쇼핑하고 있었다.


“뭐라고!

이 사람이 빨리 나와.”

남편은 라면 끓인 것도 속상한데 배달까지 해달라는 아내가 미웠다.


“이 녀석은

또 어디 간 거야.

진주야!”

아빠는 딸이 보이지 않자 불렀다.

하지만

밖에 나간 딸은 대답이 없었다.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라면을 먹었다.



라면을 먹고

아들은 어머니 방으로 향했다.


“어머니!

미안해요.”

아들은 어머니에게 조용히 말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가족의 소중함을 잃은 것 같았다.


“어머니!

어리석은 아들이 밉죠.”

아들은 언제부턴가 삶의 질서가 무너진 것을 알았다.


세월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갔다.

붙잡을 수 없는 건 알았는데 시간이 이처럼 빨리 지나갈 줄 몰랐다.


“오늘 저녁식사 후 가족회의가 있습니다.

모두 참석해주세요!”

아들은 아내와 딸에게 말하고 모두 할머니 방으로 모이게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가족 간의 불화는 쌓여만 갔다!

아내와 딸은 가족도 쇼핑하고 싶었다.

할머니도 바꾸고 싫증 나면 버리고 싶었다.


할머니는

언제부턴가 이런 상황을 깨닫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죽어야지!

이 무식한 게 죽어야 맘이 편하지.

부모도 쇼핑하겠다는 녀석들 곁에서 오래 살 필요가 없어!”

할머니는

가끔 하늘을 보고 한 말이 가슴을 뚫고 나와 뼛속까지 아프게 만들었다.


“어머니!

우리 들어가요.”

아들 내외와 손녀가 할머니 방으로 들어왔다.


“어머니!

죄송해요.”

아들 내외는 어머니의 소중함을 잠시 잊고 산 게 후회스러웠다.


“할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내일부터 닭장에 가서 알을 꺼내올게요.”

손녀는 할머니 말을 듣지 않은 게 미안했다.


“어머니!

무식하게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아들이 말하자


“무식한 게 뭔지 알아!”

어머니가 크게 말했다.

며느리와 손녀도 깜짝 놀랐다.


“꾸준히 연습하고

또 기다리는 게 무식함의 진리고 가치야!

제발 정신 차리고

말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고 말했다.


아들은

어머니 말을 듣고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내가 무식하니까!

다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그건

무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어머니는 그동안 화가 나도 꾹 참고 지냈다.


“어머니!

죄송해요.”

며느리도 그동안 뭔가 잘못한 게 가슴으로 느껴졌다.


“세월은 붙잡을 수 없지만

가족 간의 불화는 쌓여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하고 어머니가 말하자


“명심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아들과 며느리는 딸을 데리고 어머니 방에서 나갔다.


“어리석은 것들!

무식한 게 뭔지도 모르고 말을 함부로 하다니.”

어머니는 그날 밤

창문을 열고 환하게 뜬 달을 오래도록 지켜봤다.


"돈만 찍으면 되겠다!

어찌할고!

어리석은 것들!

부모도 쇼핑하고 아내도 쇼핑하고 자식도 쇼핑해 쓰다 맘에 안 들면 버리면 되겠다."


돈 찍는 공장만

하루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깊은 밤!

할머니는 나라 걱정과 <코로나 19> 걱정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

여기 봐봐.

할머니도 쇼핑할 수 있어.

아빠도 쇼핑할 수 있어.

돈만 있으면 내 맘대로 쇼핑할 수 있다니까!"

딸은 쇼핑 플랫폼에서 파는 물건을 보고 놀랐다.

엄마를 불렀다.

하지만

엄마는 원피스 사고 싶은 마음에 딸이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컴퓨터를 배워야겠어!

나도

아들이랑 며느리를 쇼핑해야겠다.

손자 손녀도

내맘대로 쇼핑해서 데리고 살아야지!"

할머니는

둥근 보름달을 보고 한 마디 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자신에게 새로운 가족을 쇼핑해 선물하고 싶었다.

달빛 사이로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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