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는 문제

#ADHD 04

by 콰랑

*글쓴이는 현재 ADHD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하는 중입니다. 글에 있는 ADHD에 대한 묘사는 의사에게 들은 정보를 거의 그대로 적었으나 의학적으로 옳은 정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전문적인 도움을 원한다면 병원이나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ADHD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투병기, 극복기, 정보제공의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약의 효과 및 부작용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 들어 있습니다.

****부작용 통계는 나무위키 메틸페니데이트 항목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양면적이다








불면은 전체 투약자의 20%에게 나타난다.


약국에서 잠이 안 오실 수 있어요, 하셨지만 난 새겨듣지 않았다. 거의 이틀 밤을 새운 채라 어차피 눕자마자 잠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청 피곤하면 커피도 에너지 음료도 소용이 없기 마련이니 씻고 누우면 바로 곯아떨어지지 않겠어? 오산이었다. 그 약은 (체감상) 카페인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각성을 일으킨다. 카페인이 단순히 잠들지 않도록, 퀭하게 깨어 있는 상태를 지속하도록 만들어 주는 느낌이라면 이건 몸의 피로까지도 잊게 해 준다. 첫날은 새벽까지 낮의 명료한 정신상태가 유지되었다. 눈을 감고 누워도 정신은 온전하게 깨어 있다. '아무 생각 안 하기'가 가능한 상태였는데도. 하루 이틀 죽은 듯이 잤다가 일어난 사람처럼 절대로 잠들 수가 없었다. 축적된 피로가 한계에 다다르거나, 약이 익숙해지면 좀 잠들겠지 생각했지만 난 주말까지도 잘 못 잤다. 아침에 약을 먹는 시간을 당겨 봐도 새벽 2시까지는 맑고 선명한 불면이 계속됐다.


투약 몇 달 차인 지금도 12시간보다 조금 더 오래 잠이 오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약을 먹은 이후로 한 번도 낮잠을 자지 않았다. 아무리 노곤한 상태라도 절대로 잠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나른한 오후에 졸던 기억은 이제 희미하다. 식곤증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렸다. 아무리 늦게 자도 약이 돌기 시작하면 피로하지 않다. 지금도 마음대로 잠들 수 없는 것은 여전하지만 다행히 지나치게 '깨어 있는' 상태는 아니다. 가끔 늦잠으로 아침에 약을 먹지 못한 주말에는 몰아서 폭면을 취하기도 한다. 원체 안 나가고 약속이 적어 무리할 일이 없긴 하지만, 적게 자게 된 후에는 에너지를 아끼려 덜 활동하는 편이다.






네 명 중 한 명은 식욕부진(에 따른 체중감소)를 경험한다.


그래서, ADHD에 관계없이 다들 처방받고 싶어 하는 약들 중에 하나라고 한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그렇다. 다이어트는 언제 어느 때나 모두의 관심사니까. 작용 시간에는 정말로 꼬르륵 소리가 나도 식욕이 없다.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는 도중이라도 당장 수저를 내려놓을 수도 있다. 참 맛있는데, 더 먹고 싶진 않다. 의식주의 가운데가 쏙 빠진 기분이었다. 음식에 대한 모든 흥미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기호식품의 영역인 커피나 차 정도를 즐겼을 뿐. 입에 달고 살던 달달한 간식들을 쳐다보지도 않게 됐다.


문제는 내가 원래 먹는 데에 진심인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난 원래 많이 배고플 때만 먹었고 허기가 가시면 그만 먹었다. 시장이 반찬인 사람이 배고픔을 잃으니 완전한 무 식욕자가 되고 말았고, 결과적으로 지나친 소식으로 이어졌으나 초기에는 알지 못했다. 밥은 깨작거리다 간식을 자주 먹으니 더 태가 나지 않았다. 약의 작용도 끝나고, 하루를 묵은 허기짐에 뭐라도 찾아 먹는 저녁과는 달리 점심은 커피 한잔으로 때웠다. 늦은 저녁부터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식욕으로 매일 야식을 먹었지만 굶는 양에 못 미쳤던 모양이다. 조금씩 살이 빠져 갔다. 용량을 올린 2주 후 어쩐지 바지 허리가 줄어든 것 같다고 느꼈다. 턱걸이 표준체중이 저체중으로 떨어졌다.


보통 사람들은 끼니마다 무의식적으로 식사하고, 먹는 즐거움 자체를 충분히 누린다. 그래서 대부분 몇 달 안 가서 원래대로 먹게 되고 자연히 체중이 돌아온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계속 나아지지 않았다. 배도 안 고픈데 밥을 먹는 게 싫다. 점심은 특히 힘들다. 정량의 삼분의 일을 꾸역꾸역 먹곤 한다. 그나마 의식적으로 '먹어야 한다'라고 되새기고, 야식을 늦은 저녁으로 먹어서 더 떨어지진 않는다. 안 먹는 것이 만성이 되면 소화기관이 망가질 수도 있고, 약을 더 이상 먹지 않는 상황이 된다면 급작스러운 폭식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여러 모로 조심해야 한다. 가끔 주말에 늦잠으로 약을 먹지 않는 경우에 자연스러운 식욕을 따라 하루 종일 먹는다. 현재는 투약 이전 몸무게에서 2kg가 빠진 채 머물고 있다.






+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끼는 부작용은 약에 대한 심리적인 의존이다. 약의 효과를 느낄수록 이게 없으면 난 어쩌지 하는 불안이 엄습한다. 어쩌다 안 먹은 날은 하루 내내 멍하다. 사실 그게 평생 살아온 나인데도, 약 이후의 삶이 익숙해져 갑자기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라 불편하다.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지 않는 것 같고, 해야 할 일이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이 동시에 들고 내면이 시끄럽다.


누굴 만나지도 않고 중요한 일을 할 필요도 없을 때는 괜찮다. 집에서 혼자 멍하고 산만한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으니까. 다만 '그런데 어느 중요한 날, 그때 약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든다. 병원 일정이 꼬여서 약을 못 받으면 어쩌지? 그런데 그날 발표나 면접이 있다면? 횡설수설 혼자 떠들다가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면? 물론 아직까지 약이 떨어지기 전에 예약을 못한 적도, 그렇게 중요한 일도 없었다. 그저 이게 없으면 난 어떡하지 하는 상상에서 오는 불안일 뿐이다. 만약 그때 약이 없어도 어떻게든 할 것이다. 난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더 기니까.






개인마다 효과 및 부작용의 증상과 정도는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그러니까 나는 그랬다는 얘기지, 참고하시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 약이 내 인생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생긴 몇 가지 변화에 대해서 기록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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