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누구야

#ADHD 03

by 콰랑

*글쓴이는 현재 ADHD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하는 중입니다. 글에 있는 ADHD에 대한 묘사는 의사에게 들은 정보를 거의 그대로 적었으나 의학적으로 옳은 정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전문적인 도움을 원한다면 병원이나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ADHD가 없는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일반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약의 효과 및 부작용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다른 사람 같아..."


2년 반을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의 말이었다.






콘서타, 콘서타 !


콘서타의 작용 시간은 12시간. 진단 첫날의 오전 11시 30분에 약국에서 첫 번째 알약을 삼켰다. 오늘부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살게 되는 걸까? 오후 일정을 위해 버스를 기다리며 그늘을 찾아들었다. 가방 안의 약봉지가 바스락거렸다. 당분간은 부작용을 지켜보면서 점차 용량을 늘린 끝에 나에게 딱 맞는 용량을 찾아 복용해야 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먹는 게 아니라면, 내가 '정상적으로' 업무 및 일과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마 평생. 그동안 집중을 거듭하며 훈련하고 루틴을 만들어 삶이 궤도에 오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각성제라더니 체감은 진정제 같았다. 노이즈 캔슬링을 한 듯 고요한 일상이 찾아왔다. 해야 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저 아래서 솟아오르던 갖가지 딴생각이 자취를 감추었다. 시킨 일을 하는 동안 다른 탭을 열지도, 스마트폰을 만지지도, 게임을 하지도 않았다. 평생 처음으로, 나는 그냥 앉아있었다. 일어나서 돌아다니고 싶다는 충동 없이, 스마트폰과 PC를 번갈아 보고 싶다는 충동 없이, 문득 생각난 것들을 거듭 검색하지도 않은 채로. 사무실의 고요한 공기 안에 단 한 가지의 주어진 일을 하고 있었다. 그걸 문득 깨달은 것은 집에 갈 때쯤이었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엄마와 짧게 통화했다. 늘 하는 안부와 병원 예약했다던 말에 대한 보고 차 건 전화였다. 중간에 여러 말에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왜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게 됐다. 저 사람 말 끝나고 내 말하면 되지. 그리고 끝까지 들어야지. 그걸 마음먹고 실천할 수 있었던 게 아마 처음이라 통화를 끊고 나서 홀로 조용한 감흥에 젖었다. 원래 가진 모든 인내심을 쥐어짜서 이를 악물지 않으면 못하던 일이다. 이틀 후 가끔 만나던 모임이 있던 날 병원 가고 약 먹는 이야기를 했더니 후배가 그랬다. "언니 오늘 나한테 한 번도 '아 미안'이라고 안 했어." 나도 느껴진다고 말하며 웃었다. 알지만 본인으로선 기분 탓이라 확신할 수 없다고 하니 남이 봐도 참 차분하고 위화감이 든단다. 이게 정상이래. 그전에는 비정상이었고. 웃기지.


누가 말하는 동안 빤히 그 사람을 쳐다본다.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 사람 말이 끝날 때까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의도한 모든 것이 행동으로 이어졌다. 대답을 생각하고 잔잔하게 의견을 내놓는다. 전처럼 대화 속에서 급발진하거나, 문득 나만 말하고 있다고 깨닫는 일이 없었다. 대화의 흐름을 한 시간이 넘도록 자연스레 따라갔다. 진짜 효과가 확실하다고 느꼈던 때는 사실 12시간이 끝날 무렵이었다. 자리가 길어지자 전의 습관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앞으로 이 약 없이 못 살지도 몰라. 희미하게 직감했다.


병원에 가겠단 결심을 들었을 때, 남자친구는 별생각 없이 알겠다 했었다. 단순하게 본인이 원하면 검사하는 게 맞지 않겠나 어렴풋 생각한 모양이다. 막상 결과를 듣고 이제 약 먹는다 하니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우리 천재 만재 누나는 그럴 리가 없는데? 완전 똑똑하고 야무진 여잔데 어떻게 ADHD냐고 그랬다. 물론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만큼 가끔 내가 산만하다는 것을 잘 안다. 뭐 말하다가 자주 핸드폰을 보거나 가끔 말을 좀 끊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병'으로 느껴지진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복용 후 첫 번째 데이트에서 그랬다. "오늘 다른 사람 같아." 며칠 동안의 투약으로 익숙해진 나는 희미하게 웃었지만 남자친구는 좀 미안해했다. 만나기 전에는 약을 꼭 먹어야 하느냐고 그러더니 만나고 나선 수긍 해 줬다. 그동안 어딘가 아파서 그랬던 행동들을 조금이나마 탓했던 것, 그리고 내가 눈에 띄지 않게 홀로 치열하게 살아온 것들을 마음 아프게 생각해주었다. 고맙고 행복한 일이었다.


삼일 차, 주먹을 꼭 쥐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날카로운 것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손을 잘 쥘 수 없었다. 간지러운 곳을 전처럼 힘주어 긁다가 상처가 났다. 손톱이 자랐기 때문이다. 참고로, 난 유치원 때부터 손톱을 뜯었다. 젤 네일을 받으면 젤을 씹고, 아프고 피가 나도록 깨물곤 했다. '아프지도 않니?' 내겐 아프다는 감각과 뜯고 싶다는 욕구가 별개였다. 온갖 방법이 다 소용없어서 매년 새해 목표의 한 줄을 늘 그걸로 채웠다. 몇 년 전부터는 늙어서 못 뜯도록 이가 다 빠질 때까지 안고 갈 습관인가 싶기도 했었다. 사회인으로서 보기 안 좋은 습관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른으로서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꼴이라는 것도. 그런데 진짜 안 됐다.


단순히 무의식적인 몸에 밴 습관이라 없애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ADHD 특유의 어릴 때의 산만함이 성장하면서 내면의 안절부절못함으로 바뀌어 강박적인 손톱 뜯기의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방향은 다르지만 이게 약을 먹어서 될 문제였다니...약의 작용시간에는 손을 입에 갖다 댄 적도 없다. 마치 내게 손끝이라는 기관이 있다는 것을 잊은 것 같았다. 기묘한 흥분을 안고 정말 오랜만에 손톱깎이로 손톱을 잘라 봤다. 서른이 가깝지만 거의 안 해 봐서 하는 모양이 서투르다. 난 그걸 잘 쥐지도 못했다. 젤 네일이며 붙이는 네일 스티커를 사서 이것저것 바르고 붙여 봤다. 평생 이런 거 살 일 없다고 생각하며 네일 코너는 지나쳤었는데. 요즘 늘 의식적으로 삐죽이 자라 올라온 손톱 끝을 매만진다. 치과에서 새로 씌운 이빨을 자꾸 혀로 더듬어 보는 기분이었다. 낯설고, 생경하다. 뇌에 작용하는 약은 신체의 물리적인 구조를 바꾸기도 하는구나.


작은 알약을 하나 삼킨 것뿐인데. 마음은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해지고, 나는 처음으로 그 표면에 오롯이 내 얼굴을 비추어 볼 수 있었다. 정상의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이렇게 살았어야 했는데. 멍하니 흘려보낸 시간들이 아쉽기에는 매일이 새로웠다. 오랫동안 멈추어 있던 삶이 조용히 움직인다.


물론 세상에 좋기만 한 것은 없다. 모든 성질이란 다면적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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