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선천적으로 산만하세요

#ADHD 02

by 콰랑

*글쓴이는 현재 ADHD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하는 중입니다. 글에 있는 ADHD에 대한 묘사는 의사에게 들은 정보를 거의 그대로 적었으나 의학적으로 옳은 정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전문적인 도움을 원한다면 병원이나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ADHD가 없는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일반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ADHD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투병기, 극복기, 정보제공의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사람들은 보통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며 수업을 방해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의외로 이러한 '과잉행동'은 ADHD 진단의 필수 요소가 아니며, '주의력 결핍'이야말로 ADHD의 본질이다. 즉 ADHD라는 말은 선천적으로 집중에 재능이 없어 필연적으로 산만하다는 뜻이다.

올해 7월, 내가 산만하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2월에 예약하고 꼬박 5개월을 기다리고 나서야 검사를 받고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면담만으로 ADHD 소견이 명확하지만, 보다 세밀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보통 CAT검사(*종합주의력 검사)를 진행한다. 집중력의 네 가지 요소 중에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평균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아보는 검사다.


40~50분간 컴퓨터 앞에 앉아 지시에 따라 버튼을 누르는 게 전부지만 나한테는 가장 힘들어하는 종류의 일이었다. 병원에서 하는 검사 치고 크게 비싼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금액이 있는 검사라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은 했다. 집중력이 심하게 떨어지는 경우 모니터에 검사가 쉴 새 없이 뜨는 그사이에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등 산만한 태도가 눈에 띈다고 한다. 참고로 나도 몇 번이나 스마트폰을 꺼내고 싶었고, 평소처럼 딴생각이 들면서 중간중간 많은 걸 놓쳤다.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내게 의사 선생님이 '많이 힘들었죠?' 하실 때 기분이 오묘했다. 의례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은 현저히 집중이 떨어지고 실수가 잦은 것이 ADHD의 특징이라고. 일반인은 그 검사가 그렇게까지 앉아 있기 괴로운 일은 아니라셨다. 약을 먹고 하면 검사 결과도 달라져요.라고 하시고 내 표정을 보시더니 또 시키진 않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라고 하셨다..


이 검사는 ADHD 진단을 위해서 하는 검사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부분이 정상 범위로 나오기도 한다. 물론 내 결과는 ADHD 그 자체였다. 정말 별 것 아닌 테스트였는데. 나는 눈에 띄게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던 것이다. 결과지에 깔끔하게 같은 나이 여성 대비 하위 몇 프로라고 찍혀 나온다. 그걸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막연하게 나 평균 이하인가 짐작하는 것과는 또 달랐다.


특별히 미달이었던 부분은 예상했다시피 집중을 오래 지속하는 능력에 대한 것들이었다. 애초에 집중의 지속 시간이 짧다. 그리고 뭔가에 집중할 때 주변의 자극을 무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선생님이든 교수님이든 그 말을 오랫동안 집중해서 들을 수 없는 데다가 다른 자극(소음, 격)을 받으면 그 얄팍한 집중조차 손쉽게 깨지고 마는 것이다. 본연의 공부 머리가 밑천을 드러내는 순간 학업에서 성적 문제가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ADHD 때문일 수도 있고, 원체 학과가 안 맞아서인 영향도 있지만 난 대학 입학 후 학고를 여러 번 받았다.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별로 '수업을 들었던' 적이 없었다. 혼자 공부해서 따라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될 때까지 사실상 자습으로만 학업을 이어온 셈이.


두 번째 시간에는 유년기~청소년기와 현재의 ADHD 증상을 비교하는 긴 문항지를 작성해 가져 간다. 대부분 성인이 되면서 교육과 사회화를 통해 스스로 교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라진(혹은 고친) 습관은 무엇인지, 나도 몰랐던 내 안의 ADHD에 어떻게 대항하며 살아왔는지에 관해서 기억을 되짚어간다. "정말 많이 노력하셨네요..." 의사 선생님의 감상이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새삼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도 고치지 못한 것들이 더 슬프기도 하고. 확실히 어렸을 때에는 많은 증상이 보다 분명한 형태로 드러나 있었지만, 몇 건의 사고를 동반한 각고의 노력 끝에 사회화가 된 후에는 표가 덜 나긴 했다. 진짜로 안 그런 것보단 안 그래 보이는 것뿐이더라도.


버스가 오기 3분 전, 내리기 직전 정거장부터는 듣던 노래를 멈춘다. 눈앞에서 버스며 정거장을 놓치니까. 가방은 어깨에 메는 것만 산다. 손가방은 잃어버리니까. 우산은 손잡이에 고리가 있는 삼단 우산. 손목에 끼우지 않으면 잃어버리니까. 짐이 많아지면 큰 쇼핑백을 사서 짐을 한 개로 만들고 절대 손에서 빼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내려놓으면 잃어버리니까. 두 번째 날 의사 선생님께 작성해온 문항지를 내밀자 놀라워하시며 한 번만에 챙겨 오는 ADHD 환자는 드물다고 칭찬하셨다. 이해가 가기도 해서 웃었다. 난 그걸 잠들기 전에 신발에 꽂아뒀다. 그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살았다.


누군가는 그렇게 습관을 들이고 노력하면 병원가고 약 먹을 필요도 없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어른이 되면서 그렇게 교정해서 살고 있는 ADHD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노력해야 집중할 수 있는 것은 ADHD의 루틴이 되기 어렵다. 즉 '꼼꼼해지는 것'은 나이를 먹어도 고착화되지 않는다. 분명 전보다 나아지지만 조금이라도 신경 쓸 일이 늘어나면 매번 하던 일도 똑바로 못 하거나 빼먹게 된다.


사회인이 된 ADHD는 누구보다 강박적으로 메모하고 외우면서 여러 번 확인하지만, 계속해서 잃어버리고 또 잊어버린다. 노력하는데 나아지질 않고, 또 확인해도 또 실수한다. 이때쯤 스스로의 실수에 관대해지지 않으면 자책이 심해진다. 자책으로 끝나지 않고 책임을 져야 하거나 주변을 힘들게 하는 일도 생긴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그런 일이 더욱 잦아지게 되고, 이내 자책과 비난은 마음의 병이 된다. 많은 ADHD 환자가 콘서타(ADHD 약) 외에 우울증 관련 약을 함께 복용한다고 한다. 병원에 올 때 쯤에는 너는 왜 그렇게 실수가 잦고 덜렁거리느냐는 말을 평생 들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람의 잘못도 아니고, 주변인의 잘못도 아니다.








사실 사전 질문지에서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마지막 문항이었다. 익히 알려진 ADHD 증상들. 우산, 지갑 등의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 한 번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일이 잦다... 세부적인 부분에서 실수가 잦다... 빠르게 체크하며 내려가다 어 하고 멈췄다. "다른 사람의 말을 가로챈다."


내가 자주 하는 짓이다. 불쑥 상대의 말을 잘라먹은 직후 '아 미안.'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의 버릇이었다.

사실 아 미안까지 오는 데도 오래 걸렸다. 언젠가는 아예 안 하게 될 거라고 믿었지만 몇 년간 그 단계에서 나아지지 않았다. 난 내가 이기적이고 남의 의견을 무시하는 오만한 성격이라 그런 줄 알았다. 당한 사람들도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놀랍게도 ADHD 증상이었다. '질문을 다 듣기 전에 대답한다'는 문항과 맥락이 같. 무시해야 하는 자극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려 부족, 게으른 성향, 타고난 천성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선천적인 뇌의 구조적 결함에서 오는 생리학적 문제라는 사실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어떤 선부터는 도저히 스스로 고칠 수 없었던 것들을 약이 도와줄 거라고 하셨다. 웃으면서 약으로 많이 좋아질 수 있는 케이스인 것 같다고 말하셨지만 그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 이해가 안 가고 상상이 안 됐다.


첫 진료 내내 약을 먹으면 어떨까, 인생이 바뀔까? 생각했다. 예약이 오전이라 검사 후 처방받은 약을 첫날부터 먹을 수 있었다. 12시간의 약효를 가지는 '콘서타'는 현재 가장 많이 처방되는 ADHD 치료제다. 도파민의 재흡수를 억제하여 복용자가 집중 상태에 머물 수 있도록 돕는 작용을 하는 향정신성 의약품다. ADHD 커뮤니티에서는 약을 먹고 나면 슈퍼맨이 된 것 같다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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