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만해요?

#ADHD 01

by 콰랑

*글쓴이는 현재 ADHD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글에 있는 ADHD에 대한 묘사는 의사에게 들은 정보를 거의 그대로 적었으나 의학적으로 옳은 정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전문적인 도움을 원한다면 병원이나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ADHD가 없는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일반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ADHD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투병기, 극복기, 정보제공의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28년 평생 난 참 집중을 못 했다.

잘했던 적이 없다. 노력했지만 늘지 않았다. 늘었다면 집중력이 아니라 연기력이다. 나이를 먹었지만 안 멍한 척 하는 어른이 됐을 뿐이다.

20년 넘게 멍 때리면서 살았다.









전화하기 전의 망설임은 없었다. 그냥 듣고 보니 내가 딱 그거라서 도저히 안 갈 수가 없었다. 나도 혹시? 그런 의심조차 안 들고 약이 있네, 나 빨리 약 먹어야 되겠다 생각만 들었다. 상담했던 주변인들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럼 나도 ADHD인가?' 같은 헛소리나 하고. 그런 게 답답해서 화가 날 정도로 증상이 명확했다. 1%의 아닐 수도 있지는 추천인의 한마디에 날아갔다.


다른 사람들은 한 번에 한 개의 일만 할 수 있대.


거짓말 아냐...? 웃기겠지만 나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진짜...? 남들은 다 그래...?

이건 다른 사람이 멀티태스킹을 못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난 평생 오직 멀티태스킹을 통해서만 일반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아까워서나 효율적으로 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하나만 하는 게 불가능한 인간이었다. 하나만 집중해서 하려고 시도하면 30분도 안 돼서 곧 정신이 아득하게 흩어지고 만다. 주의의 대상을 여러 개 만들고 돌아가면서 집중하며, 멀티태스킹이라는 행위 자체에 몽롱하게 취한 채 시간을 보내는 것이 평생의 주된 일과였다.


학교든 일이든 그런 편이지만 약속이 없는 주말조차 그랬다. 편안하게 쉬는 시간. 효율을 추구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강박적으로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닌텐도를 하는 동안은 늘 스마트폰 게임을 켜놓고 싶다. 동시에 유튜브를 틀고 싶어 한다. 거기에 중간중간 집안일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동시에 운용하려 무던히 애를 쓰곤 했다. 당연히 어떤 것도 잘 굴러가지 않았다. 게임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동영상은 같은 부분을 10번째 되감고, 설거지도 하다 말고, 청소기도 반쯤 돌리다 그대로 바닥에 있다. 1시간 정도 아무 생각 없이 그 모든 것과 씨름하다가 문득 오늘 나 평소보다 훨씬 산만하네, 하고 한 개씩(혹은 두 개씩) 끝내곤 했다. 적어 놓고 보니 웃기지만 평생 그렇게 살았던 사람에겐 보통의 날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안 그렇다고. '정상'은 그렇지 않다고. 어쩌면 간지러운 부분을 속 시원하게 긁은 것 같기도 했다. 스스로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난 15분이 지나면 뭐든간 집중이 안 됐다. 1시간 이상의 수업이며 강의를 끝까지 듣지 못한다. 가만히 앉아있는 게 참 힘겹다. 흥미로운 것에 온전히 매료된 상태가 오래 가지 않는다. 재밌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도 딴생각을 하고 있다. 대화 중 작은 소음이라도 들리면 맥락이 연기처럼 흩어지고 만다. 눈앞의 대화 상대에게 초점을 맞출 수가 없다. 상대가 누구든지 마찬가지고, 내용이 아주 중요한 것이어도 소용이 없다. 흩어진 집중을 도로 그러모으는 일이 무엇보다 어렵고 잘 안 됐다.


그러다 보면 일상은 집중을 해보려고 발버둥 치는 시간, 집중을 못하고 멍하니 흘려보내는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결국 어떤 결연한 결심이나 의지조차도, 손틈으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만다. 또 깨달은 것을 다시 잃어버리기를 반복하고 멍하니 비슷한 매일을 살다 보면, 연속성을 잃은 채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진다. 쌓아갈 수 없는 삶이란 그렇다. 축적이 없고 발전도 없고. 좋은 계기를 만나지 못해서도 아니고 근성이 없어서도 아니고, 운이 나빠서도 아니다. 다만 나이를 먹을 수록 인생이 망해가는 것은 잘 알겠는데 뭘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처럼 그저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언제나 미래의 내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멍한 아이가 자라서 멍한 어른이 됐다. 남들은 내가 바보가 아니라고 하지만 거울을 보면 그런 헛똑똑이가 없었다. 얘를 진짜 어떻게 하지? 앞으로가 걱정되는데 문제를 모르니 해결도 모르겠다 포기하던 차에 병명이나마 알게 된 것은 분명 인생의 기억할만한 건이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병원을 가게 된 이유는 그랬다: 딱히 누군가에게 설명한 적은 없는 부분이지만 난 충분히 비정상이었기 때문에, 가는 게 맞다고 판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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