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토록 오랜 시간 고통받았던 이유는 문제를 일으키는 본인과 매일같이 밥 먹고 얼굴 맞대며 지내는 일상에 있기도 했지만, 그 중간자들이 취하는 입장에 있었다. 이른바 가정 내 '중재자'들이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싸움을 못 견뎌한다. 신경이 지나치게 예민해서 갈등 상황 한가운데 놓이는 것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 숨이 막힐 정도다. 본인과 손톱만큼도 관련이 없는 일이라도, 그들은 문제가 터졌을 때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노력한다. 얼핏 평화주의자처럼 보이는 이들의 진정한 목적은 사실 갈등의 회피다. 본인이 말리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악화될 거라고 믿는 중재자들 덕분에 본질적인 문제는 수면 아래서 더욱 덩치를 불리게 된다.
갈등 상황이 벌어지면 이들은 일단 둘 사이를 가로막고 양측을 비난한다. 급한 불을 끄고 제삼자로써 둘 다 잘한 거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여 당사자들을 주춤하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 당신은 애한테 왜 그렇게 말해
- 너는 아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 일단 진정해
- 진정하고 앉아
- 그만해 너도
어떻게든 아슬아슬한 순간을 저지시킨 뒤에는 속이 상한 발언자-비결정권자를 위로하러 간다. 최고 결정권자(가정 내의 실질적 권력자)는 그대로 둔다. 그 고집과 성깔을 감당한 자신이 없고, 괜히 한마디 건의했다가 찾아올 파란이 두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차피 씨알도 안 먹힐 거라는 것을 잘 알아서다. 결과적으로 '중재'는 약한 쪽을 구슬리는 형태가 된다.
어느 쪽이든 한 편을 옹호한다거나 비난하는 행위는 철저히 배제된다. 둘 다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표면상 중립을 지키려는 그들의 신념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양측을 동시에 옹호하거나 동시에 비난하는 선택지뿐이다. 누가 그들의 의견을 묻더라도 두루뭉술하게 대답을 회피하고, 최대한 양측을 공평한 위치에 끼워 맞춘다.
- 내가 보기엔 둘 다 똑같이 잘못했어
- 솔직히 너도 잘한 거 없잖아
- 성격이 욱해서 그래 고쳐야 돼
- 너가 먼저 말해, 가서 잘못했다고 해
- 그럼 평생 아빠랑 말 안 할 거야?
핵심은 가정 내 중립이 진정한 의미의 중립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중재자'는 사실 '침묵의 옹호자'라는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구성원으로서 불합리한 결정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은 곧 따르겠다는 의미가 된다. 딱히 열렬히 한쪽을 지지하지는 않으나, 다른 쪽에게는 은근하고 집요하게 변화를 요구하는 행위 자체가 그들이 내세우는 입장을 대변한다.
중재자들은 일대 일의 갈등에 휘말려 피해를 보는 부외자들이 아니며, 갑의 편에서 을에게 사과를 종용하는 다수를 이루는 구성원이다. 둘의 의견 충돌이 다수결의 문제가 되면서 상황은 소수 의견이 자연스럽게 묵살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다시 강조하지만 중재자들의 목적은 갈등의 해소가 아니라 불편한 상황의 일시 중단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두 가지가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실제로 갑의 의견에 그닥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단지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것뿐이라도 갑을 위해 일하는 것이 된다.
이 중재자들의 행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최고 결정권자 또는 독재자의 입장을 공고히 다져준다는 데 있다. 싸운 사람 말고는 본인에게 아무도 트집을 잡지 않으므로 역시 본인 생각이 맞다는 확신을 준다. 비슷한 트러블이 몇 번이나 일어난다면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각할 법도 하건만, 그때마다 중재자들이 상대를 제지하고 상황이 극적으로 치닫기 전에 멈춰 준다. 비슷한 상황을 몇 번씩 겪는대도 배우는 것도 없고, 깨닫는 바도 없다. 이 한 사람만 괴로운 상황은 한쪽이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계속 연출된다.
그런데, 중재자들의 말대로 과연 '너만 성질 좀 죽이면 우리 집은 아무 문제도 없어'질까?
시간이 흐르고 최초의 을이 (미치기 전에) 가정을 떠나 버리고 나면 보통 중재자들과도 문제가 생긴다. 을은 갑을 필요로 하지 않으나, 갑은 을을 필요로 하기에, 남은 구성원인 중재자들 안에서 새로운 을이 선출되게 마련이다. 비슷한 상황이 흐르고 남은 사람들까지 마음을 돌려도 갑은 고쳐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오랜 시간 본인이 옳다고 믿어 왔다. 모두에게 반박을 받아도 갑자기 이제 와서 왜 그러냐고 하는 사람으로 늙었다. 다 끝난 일, 언제적 일을 이야기 하느냐고 한다. 그건, 언젠가 중재자들이 을에게 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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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동안 내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내가 욱하는 성격만 고치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내 성격이 문제라고 하니까.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데 일단 내가 사과해야 한다고 하니까. 하지만 한 번도 진심으로 사과할 수가 없었다. 큰 아량을 베풀어 용서해 준다는 듯이 말하는 당사자, 사과하고 화해하니 얼마나 좋냐는 중재자들과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것은 미쳐버릴 것 같은 시간이었다. 탁구공들의 집안에서 태어난 성게 새끼가 되어 공이 되기 위해 내 모든 가시를 잘라내는 일처럼 괴로웠다.
철이 들고 내 세상이 넓어질수록 나는 그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그건 바보 같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린 것이 분할 따름이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갑을 포기하는 동시에 중재자들을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중재' 때문에 우리의 문제가 해소될 기회가 몇 번이나 날아갔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이 문제가 십수 년간 풍선처럼 덩치를 불려 왔을 거라고 믿는다. 더 작은 풍선이었을 때 터트릴 수 있었더라면 모든 게 지금처럼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해보기도 한다. 글쎄, 누구도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덜 상처받았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 가족의 관계가 크게 변하게 된 후 중재자들은 나를 만류하곤 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그들이 나를 말렸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동을 방치했기 때문에, 지금의 사태에 이른 것 같고 이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물론 그게 내 마음을 가볍게 해 주지는 못했지만 나는 하나의 위안을 얻게 됐다. 그때의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사춘기라서, 성격이 욱해서, 아직 어려서, 생각이 깊지 못해서, 그저 트집 잡고 싶어서 소리 지르던 어린애가 아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