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재주를 2번 째 준사람은 국어 선생님 일까?
여고 교장선생님으로 퇴임하셨다는 얘기를 들은지 한달 남짓 되었다.
평소 어렵고 어렵기만한 스승님이시다.이런 무거운 감정들을 내려놓고 전화 통화를 했다.
퇴임후 백수라며 여유있는 말씀과 달리 전화기속 들려오는 스승님의 목소리는 기침으로 대화를 더이상 이어나가기가 힘들 정도였다.감기와 몇날 째 씨름중이라시며 몸뚱아리 하나 관리못한 염치없는 사람이지만 오늘도 약속을 지키기위해 강의 스케줄차 이동을 하신다 하였다.
중학교 1학년 총각선생님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국어 과목을 담당하셨다. 국어과목에 관심을 가지게 된것이어른이 되어보니 분명해 졌다.
자기가 좋아서 선택하는 과목은 무언가 이론을 조금 접하여 자신이 있을때 생기는 용기이고,그렇지 않음 그 과목을 담당하는 선생님의 인품이나 능력에 의한 순전히 선생님 노력에의해 따라가는 순리였다.
중학교를 시작으로 여러 분 국어담당 선생님이 스쳐지나 갔다.
첫 사랑이 그러하듯 첫 국어선생님을 잊지못하는 우리는 작은 섬마을 중학교 섬가시내들이다.
중학교시절 1시간의 수업 시간이 너무빨리 지나가 아쉽다는 미련이 남던 그리운 그 기억은,
도시 어느 구석구석 살고 있는 50살이 된 그시절 섬가시내들 마음이다.
용기내어 스승님의 강의를 경청하기로 맘먹었다.
어른이 되어 듣는 인문학 강의라고 자칭하며 설레이는 마음 또한 감출 수 없었다.
'완벽한 타인'이라는 영화를 한번 보라는 강의중 말씀은,
같은 영화 다른시선으로 보게되는 스승님을 통한 나를 발견하게 되는 묘한 접점을 깨달음이 왔다.
인간은 누구나 세가지의 사람으로 살아간다.
공적인나,
개인적인 나,
비밀스러운나......,
하지만,
나만 모르는 나의 발견은 꼭 누구를 통해서 발견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여자들의 통계적인 생각은 연령대와 상관없이
'공부좀 할걸'
자식들에게도 나에게도 배우지 못해 받는 서러움의 고통이 커서인가보다.
사회는 배우는 것을 전문지식에 한계를 둔다 착가하면 교육의 본질과 다른 서열에 우선인 성적순을 학습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배움을 주입해야하는 학습, 좋은 성적을 받기위한 노력이 다인 지금 사회이다.
중요한 것은 학습,좋은 성적을 받기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참고 인내하고 애씀의 습관이 샇여 살아가는데 성공을 이끄는 근육을 붙이는 것이다. 성적보다 중요한 핵심 요인 참 교육이 배움이라는 좋은 단어 뒤에 파묻혀 있는 꼴이다.
기억속 국어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관심과 애정이 삶에 초점이였고 교과목 성적에 학생들을 대입하지 않았다.
성적은 그 학생의 생각이 스스로 바뀌는 습관에 의해 오는 결과의 일부분이지 인생 전체를 논할 결과가 아니라고,
어른이 되어 수많은 강의 청취자 속에서 숨죽여 듣는 나에게 그때의 열강 모습으로 복습하셨다.
난 제대로 된 국어교육을 받고 자란 것인가? 지금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위해 국어선생님 강의를 듣고 있지않는가?
뭣 모를 어릴적, 국어선생님을 따라 어른으로 제대로 걸어갈 교육을 받았다.
정도를 걷고있는 지금이라 믿고 싶고 어른이 되었다고 자랑 하고픈 마음이다.
철이들고 보니 스승님도 제자도 머리에 눈꽃 모자를 똑같이 덮어 써고있다.
어른이 되는 교육,지성인이되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참교육을 가르치셨던 국어 선생님,
어른이된 지금은 그런교육을 스스로 찾아 듣고 깨달아야하는 스스로 교육하는 제자의 모습을 원하셨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마주한 스승님은 농담도 참 고급지게 하신다.
산다는건 어른이되어 어른 다움을 잃지 않는것이고,나이먹어 까먹는 어른다움을 계속 듣고 배우는 열정을 놓지 않아야하는 "너처럼 말이다!"
스스로가 찾고 갖출수 없다면 벤치마킹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