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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

by 날마다 하루살이

얼마 전 냉장고가 고장 나서 새로 구입하는 일이 있었다. 전자제품에게도 수명이 있음을 생각하고 처음에 구입하지는 않았었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 내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구입하면서 기분 좋은 행복감에 젖어 있었지 이 물건이 언젠가 수명을 다할 테니 그때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던 때였다.


그런데 살다보니 하나 둘 씩 고장나서 교체하거나 수리를 해야할 것들이 생겨났다. 그 사이 전기 압력 밥솥을 세 번 교체하였고, 세탁기를 한 번 교체했고, 냉장고 수리에 에어컨 수리.. 여러 일들이 지나갔다.


큰 아이가 어릴 적이었다. 냉장실 맨 아래층에 보관중인 것들이 어는 문제가 생겨서 수리 기사님을 부른 적이 있었다. 그때 만난 기사님이 너무 친절하고 일처리도 깔끔하게 해 주셔서 그 뒤 에어컨 수리 때도 일부러 지명하여 같은 기사님으로 신청을 했었다. 이번에도 냉장고에 문제가 생기자마자 그 수리 기사님을 떠올린 것은 당연했다.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했고 상담사님께 바로 그 기사님으로 신청을 요청했다.


신청이 완료되자 기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예전에 사시던 집 맞으시죠?"


기사님도 우리 집을 기억하고 계셨다. 약속된 날짜를 앞두고 몇 차례 전화를 미리 해주셔서 냉장고 뒷면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전원을 꽂아 보라거나 간단히 점검사항을 일러주시곤 예정된 방문 날짜보다 하루 전 들러서 상태를 정확히 보러 늦은 저녁에 방문하시게 되었다.


똑똑똑~


"삼성 서비스 기사입니다~~~"


순간 문이 열리고 낯이 익은 듯 낯선 얼굴이 문 앞에 서 계셨다.


'아~~~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아저씨를 마주한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간 첫번째 생각이었다. 몇 해전 냉장고며 에어컨 수리를 부탁했을 때보다 한껏 나이 드신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계셨다.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저씨 또한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문을 열어주는 나를 한참 바라보셨다.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냉장고를 사러 집 근처 대리점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방문했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매장의 여직원은 그대로였다.


"얼마까지 해주실 수 있으세요. 저희는 언제나 여기 매장만 찾고 있는데요. 좀 더 깎아 주세요~~"

"아, 네.. 알고 있죠~"


알고 있다..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나의 신혼 시절 에어컨과 컴퓨터, 선풍기를 사러 방문했을 때부터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매장에서 만난 그 여인은 예전의 모습과 똑같이 차분하고 친절하며 호들갑스럽지 않게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은 여전했지만 나처럼 나이가 훨씬 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도 날 보며 같은 생각을 했겠지.


세월이 흘러 여기까지 왔구나. 그 사이 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거울 속의 내 얼굴엔 기미도 주름도 생기고 흰머리는 늘었고 허리는 의식하지 않으면 구부정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연스러운 과정임에도 매일 보는 내 모습에서 느끼지 못했던 세월의 간극을 몇 해만에 만나게 된 사람들의 변화된 모습에서 눈치채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외모야 어떻든 변하지 않는 나의 내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과연 내가 지켜낼 수 있을까. 변하는 주변 상황에 조금씩 흔들리더라도 중심까지 흔들리지 않길 바란다. 날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을 간직해 두었다가 보여주고 싶다.


[세월 따라 외모가 변하는 윤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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