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울 때 엄마 생각이 많이들 난다고 한다. 내겐 엄마가 곁에 계시지 않으니 그 빈자리가 허전한 것은 당연하듯 무심하게 된 지 이미 오래다. 가끔 사무치게 그 결핍이 느껴져 혼자 눈물 삼킬 때도 있지만 대부분 씩씩이란 가면(?)을 쓰고 여태껏 잘 살아왔다.
아이를 낳고 가장 허전함을 느꼈던 것은 이 아이들이 아무 조건 없는 사랑스러운 눈빛과 다정한 손길을 엄마 외엔 느낄 수 없다는 외로움이었다. 누구라서 남의 새끼에게 꿀 뚝뚝 눈빛을 보내주겠는가. 엄마가 가장 그리울 땐 그럴 때였다.
요즘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선택사항"으로 여기어 짝짓기 프로그램에서도 대화의 한 축으로 자리하는 모습이 왠지 낯설다. 아기가 선택이라니... 아기를 죽도록 원해도 내게 그런 기회가 닿지 않아 맘고생하던 때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정서적 거리감을 느낀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아이를 기르느라 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자리한다고 하니 더 받아들이기 힘들다. 미디어나 SNS등에서 보고 듣는 간접 체험으로 마음을 정해버리는 젊은 층들이 생긴다는 것은 더욱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어찌 보내야 한다는 수많은 매체들의 권고 사항에도 그 길을 피하는 사람은 극히 드문데 어찌하여 아이가 선택사항이 된 것일까.
사실 아이 낳고 기르는 일이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다. 출산 초기에는 잠 못 자는 어려움, 아직 익숙하지도 않은 그 울음소리, 처음 아플 때 허둥지둥 대던 모습부터 이유식 시작하면 잘 먹니 안 먹니...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뭐 하나 수월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수많은 행복의 순간 또한 놓치고 싶지 않은 보물 같은 것이다. 그런 마음의 충족감은 누구에게든 전파해 주고 싶을 지경이다. 힘듦 사이사이에 숨겨진 행복.
아이가 자라니 새로운 문제에 마주치게 되었다. 내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차원을 넘어선 선택의 문제들이다. 헤쳐나가야 하는 수많은 '첫 경험'은 매번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쳤다가 숙련되지 않은 상태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닐까. 미숙한 채로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한 가지에 숙련되기도 전에 들이밀고 들온다. 두 아이를 기른다 해서 똑같은 상황에 같은 대처방법이 통하지 않음도 한몫이다. 매번 새로움과 마주한다.
내가 생각하는 어려움 중 하나는 아이를 때에 맞게 독립시키는 것이다. 난 아직 독립시키는 방법에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이다. 큰아이의 사춘기 적응기도 그렇고 작은 아이 샤워 독립 문제도 그렇다.
'대충대충'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일까. 작은아이가 4학년이지만 샤워를 시켜주고 있다. 밝힐 수 없는 우리 집 욕실 사정을 감안해서라고는 하지만 혼자서 구석구석 깨끗이 씻겨야 맘이 놓이는 내 성격과도 연결된 듯 보인다. 큰아이가 혼자서 샤워하게 되니 그리 수월할 수가 없었다. 일단 놓아 버리고 나니 마음은 정리되었다. 단지 샤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답답함이 남아있긴 하지만 제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시작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아이들 어릴 땐 두 녀석을 씻기느라 힘이 들었다. 힘이 들 때면 엄마 생각을 했다. 그 당시엔 집집마다 욕실이 있는 집구조가 아니었고 목욕탕을 가야만 목욕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온 가족이 갈아입을 옷 보따리를 들고 목욕탕으로 갔다. 대충 비누질을 하고 탕에 들어가 때를 불렸다 나와서 초록색 타올로 열심히 밀어 상쾌함을 갈아입었다. 엄마는 내 기억으로 거의 매주 빠짐없이 목욕탕을 갔다. 아프고 귀찮은 날도 있었을 텐데.. 새삼 엄마의 노고에 마음이 쓰였다. 근데 난 처음 어떻게 혼자서 목욕을 하게 되었지? 그때가 몇 학년쯤이었지? 손에서 빙빙 돌아가던 타월을 어떻게 고정시켰지? 요 녀석도 잘할 수 있겠지? 어차피 스스로 겪어내야 하는 일이야.. 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어제는 작은 아이를 씻기다가 그만 손에 상처가 났다. 머리 감겨주다가 내 손톱에 반대쪽 손의 한쪽살이 벗겨져 나간 것이다. '독립시킬 타이밍도 못 잡고 손톱 깎는 타이밍도 못 잡은 셈인가'. 우스갯소리를 해 본다.
곧 작은 아이도 샤워 독립을 시켜야겠다. 물론 본인은 오래전부터 혼자서 할 수 있다고를 외치긴 했지만 엄마가 떠나보낼 준비를 못하고 있었다. 서서히 준비를 해야겠다. 아이들의 독립은 엄마의 놓아주기가 그 출발점인 듯하다. 놓아줌.. 이것은 연습이 필요하다기보다 당장 실천이 필요하겠지?
[아직도 걸음마 중인 엄마 윤정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