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기도 훈련이 필요해

너가 스스로 깨닫길...

by 날마다 하루살이

4월 말 1차 고사(중간고사)가 끝이 나고 녀석은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기로 했다. 첫날 시험을 망치고 둘째 날시험은 만족스럽게 치렀다. 첫날 수학시험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좀 더 훈련이 필요하겠다는 의견에 서로 공감했다. 우린 새로운 규칙 하나를 정했다. 손톱만큼의 규칙.


녀석은 중1이고 여태껏 학원을 단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야 그러려니 했었는데 중학생이 되면 학습량도 늘고 경쟁도 본격적으로 시작되니 엄마 입장에선 그냥 믿고 지켜보고 있기에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학원을 보내달라 하지 않으니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손톱만큼의 규칙은 다름 아닌 수학 학습에 대한 최소한의 학습량을 정한 것이다. 엄마가 내어주는 숙제를 해보기로.. 녀석이 따라 준다 하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시험 치르고 다음 주 바로 가족행사가 있는 5월 초를 흘려보냈다. 흐트러지기 딱 좋은 핑곗거리이다. 시댁행사, 친정 가족 여행.. 그러고 스승의 날 행사 준비, 학교에서 하는 체력 테스트 (팝스) 등등.. 녀석의 마음을 붙잡는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체력 테스트를 하고 온 날이었다.

"○○, 오늘은 여기부터 여기~"

"네~"

"몇 시부터 할 거야?"

"8시요"


8시 수업을 마치고 나왔는데도 완성이 되어있지 않았다. 1시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는데 8시에 시작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풀고 있는 자세 또한 맘에 들지 않았다.


"왜 이리도 집중을 못하는 거야~

어려우면 엄마가 도와줄게~"

"아니요~!!"

"근데 왜 이리도 느린 건데~"


녀석에게 쉬운 문제라 여겼는데 속도가 붙지 않고, 바른 자세로 앉아 있지도 않고 자꾸만 드러누우려 한다. 한 마디 했더니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온다.


"엄마! 제가 오늘 학교에서 뭐 했다고 했어요~!!"

"팝스 했다고 했지. 그것 때문에 피곤해서 이러는 거야?그러면 오늘은 하지 마!"


대답은 않고 못마땅한 표정은 그대로인 채 계속 책상에 앉아 있는다. 잠시 후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듯 보여 도와줄까를 물으니,


"다 했어요!"


짧고 간결한 그 대답은 '다했으니까 이제 나 좀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말로 내 귀엔 번역되어 들린다. 내 번역기가 작동 오류를 범했길 바라지만 팩트였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녀석과 관계가 회복되고 있었고 작은 트러블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도 조심해서 하고 있었는데... 내 맘을 몰라주는 녀석이 야속했다.


공부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더니 표정이 좋아져 폰 속에 나오는 어떤 정보에 몸이 경쾌하게 반응하는 것이 보인다. 이때다 싶어 말을 붙여본다.


"○○. 아깐 왜 그랬어? 그렇게 말하면 엄마 맘 아파~

'오늘 제가 뭐 했다고 했어요!' 그냥 오늘은 좀 피곤해요..라고 말할 수도 있잖아~"


"죄송해요."


일단 녀석 몸 상태도 기분도 나아진 것 같고 내게 사과도 했으니. 일단 통과~




다음날이다. 바로 금요일. 녀석은 친구들과 놀다가 온다고 톡을 보내왔다. 뒤늦게 돌아와 라면이 먹고 싶다기에 끓여주었다.


"○○, 오늘은 9시에 엄마랑 공부~"

"네~"


일단 긍정의 답을 들으면 난 맘을 놓는다. 그런데 책상 앞에 앉은 녀석의 표정이 영 맘에 안 든다. 녀석은 마음에서 동하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할 때 불편함을 느끼는데 그 거부의 강도가 보통의 아이들과는 좀 다르다. 내가 늘 걱정하는 부분이다.


"오늘, 공부하기 싫어? 그럼 오늘 쉬자~"

머뭇거리더니 책을 덮는다.


잠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잠들기 전 슬쩍 또 한 마디 건네 본다. 이럴 때마다 내가 왜 이렇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야 하는지 약간의 자괴감이 들긴 하지만 건너야 할 강이라고 다지면서 지내고 있는 시간이다.


"○○.. 다른 아이들의 학원을 다니잖아. 걔네들은 좀 피곤한 날, 공부하기 싫은 날도 그 시간이 되면 가서 앉아있는 거야. 그러면서 힘든 상태에서도 견디고 참는 것을 훈련한다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


똑똑한 녀석이니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행동으로 옮겨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 따라주는 것만도 고맙다. 일단 학교 진도보다 뒤처지지 않은 것 같다.




녀석에 대한 폭풍 같은 불안함은 이제 잦아들었다. 지난 3월, 4월 중간고사를 치르기 전까지의 시간을 생각하니 지금 이 순간도 너무 고맙다.


지금은 토요일 오전. 녀석이 일어나 동생과 주고받는 이야깃소리가 들린다.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내 기분도 오늘은 일단 맑음으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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