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주말 루틴

간섭하지 말자

by 날마다 하루살이

수요일부터 시작된 2박 3일의 수련회를 다녀와선 피곤했는지 금요일 저녁 녀석은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잘 놀고 왔으니 이제 공부 계획 좀 이야기 나눠볼까?'라고 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때는 아닌 것 같아 접어두었다. 집이 먼 친구의 엄마는 관광버스 도착 시간을 기다렸다가 캐리어를 받아 온 모양이다. 반가운 톡이 어제 오후에 날아왔다.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선생님~ ○○이 캐리어 받으러 갔다가 애들 같이 밥 먹으러 간다고 하길래 사진 찍었어요ㅎ 컸다고 찍기 싫어해서 나름 귀한 사진이라 공유합니다^^

엄마들의 짝사랑은 끝날 줄 모르고 녀석들은 그 사랑이 자꾸 다른 모습으로 변해주길 바란다. 엄마는 아쉽고 녀석은 귀찮을 뿐이다. "귀한 사진"이란 표현에 위로가 되었다. '나뿐이 아니구나...' 나만이 아쉽고 당황스러운 것이 아님을 같이 느끼는 감정 속에서 공유하고 보니 마음이 안정되는 요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녀석은 친구들과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을 친구들과 양껏 즐기고 예상보다 일찍 귀가했다.


수련회는 어땠는지 간단히 (진짜 간단히) 몇 마디 나누었다. 주로 내가 질문을 하고 녀석은 단답형 주관식 시험 문제도 아닌데 아주 짧고 간결하게 답했다. 그 짧은 대화도 가짓수가 늘면 길어지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굳이 묻지 않아도 되는 질문들을 묻곤 녀석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엄마가 아침 운동 가는데 용두공원 앞에 관광차 3대가 딱 서 있는 거야. 니들 차였나 봐. 그치?"

(당연한 말씀! 왜 물은 거지?)

"네!"

"니들은 모두 5반까지 있잖아. 3대에 나눠서 탔겠네?"

(이것도 당연한 말씀!)

"네!"

"그럼 넌 몇 호차 탔어?"

"1호차요!"

"아.. 1반이니까 1호차 탔겠네~"

(당연한 말씀의 연속이다..ㅠ)

"비누 가져갈지 망설였었는데 썼어?"

"네!"

"다행이다. 그럼 샴푸는 빌려서 썼겠네?"

(이것도 당연한 말씀!)

"네!"

"그런데 엄마가 보낸 톡은 왜 확인 안 했어?"

"했는데요!"

"숫자 1이 안 지워졌던데?"

(너도나도 영문을 모르는 건 일단 통과)

"밥은 맛있었어?"

당연히 2박 3일 동안 먹게 되는 식단표까지 다 공유된 상태이니 알고도 남을 일이지만 녀석과 한 마디라도 더 나누고픈 맘에 자꾸만 들이대어본다.

"엄마가 중2 때 수학여행을 갔는데 말야~~~"


라떼의 그 무어라 설명할 수 없었던 괴상한 수학여행 식단까지 끌고 와 이야기를 이어가 보다 보니 어느새 아빠의 군대 생활 이야기까지 넘어갔다. 근데 두 녀석 다 남자라고 어라? 관심 갖는다?


어찌 됐든 다 같이 오랜만에 모여 먹게 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 뒤에 보니 녀석은 잠들어 있었다.




토요일 오전. 알람소리에 깨어보니 녀석이 일어나 폰을 보고 있다. 어제 일찍 잠들더니 일찍 눈이 떠진 모양이다. '그래.. 여독은 좀 풀어야지.'


휴일 아침답게 여기저기서 카톡과 통화가 이어진다. 아무래도 곧 준비해서 나갈 기세..

"○○, 오늘은 몇 시에 나갈 거야?"

"12시쯤 나갈 거 같아요~"


화장실 들어가 한 30분 보내고 나와서 아침 먹고 뒹굴뒹굴... 한참 본인만의 오전 시간을 즐기다가 무슨 일인지 공부방으로 들어간다. 살짝 엿들어보니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11:43이다! 도대체 곧 나간다는 놈이 뭘 하고 있는 건지... 책을 펼 거면 좀 더 일찍 펴든 지.. 암튼 알 수 없는 놈! 속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는 절대 입 밖으로 발설하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며 기다려본다. 잠시 후 폰이 울리고 녀석은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


"오늘 멤버는 누구누구야? 나가봐야 알겠지?"

"네!"

"저녁은 같이 못 먹겠지?"

"너무 늦지 않게 와~"


세상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녀석을 보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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