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단 맑음

by 날마다 하루살이
제 아이는 지금 중1 성장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녀석이 학교 수업을 '일찍' 마치고 돌아오는 수요일이다. 수요일은 2시 30분 정도엔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시간에 난 녀석의 친구 수업을 하는 날이다. 물론 녀석은 집에 돌아온 이후 저녁을 먹을 때까지 폰을 보면서 보통 수요일 오후 시간을 낭만적으로 유유히 흘려보낸다.

다른 친구들은 학원으로 바삐 돌아다니는 그 시간에 녀석의 시간은 그렇게 보통 흘러갔다. 녀석은 낭만적이고 난 신경이 곤두서는 시간이 길어지는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수업 마치고 나온 나를 불러 세운다. 내일 수학, 과학 수행 평가가 있는데 엄마랑 같이 확인할 것이 있단다.


이게 무슨 일?

네가 나랑 같이 공부를 하겠다고?

혼자 알! 아! 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저녁 준비하고 저녁 수업 연속 3시간을 생각하면 잠시 쉬고 싶었지만 널 위한 시간을 이 엄마가 못 내어 주겠니. 좋다! 한 번 해보자~!!

이전 상황들을 생각하면 내가 공부를 유도했고 마지못해 끌려(?)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았었다. 물론 만족스러운 수업으로 연결되진 않았고 내 입에선 발설하고 싶지 않았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녀석이 먼저 제안했고 나도 그동안 겪어낸 시간들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절대 서로 맘 상하는 말은 하지 말자!'

'이번에 좋은 기억을 남겨 주고 반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자~'


나의 맘은 다짐의 말들로 가득 찼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녀석은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 자세만으로도 내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말도 부드럽게 나왔고 우려했던 말을 발설하는 일은 없었다. 문제를 잘 풀고 못 풀고는 그다음 문제이다.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보여주니 내 마음과 행동이 그리 변하더라는 것이다. 둘 다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우린 공부방을 나왔다.


저녁을 먹고 난 수업을 3시간 했고 녀석은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같으면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시간이었을 텐데 오늘은 진짜 맘을 단단히 먹은 모양이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10시 20분쯤이다. 피곤하다. 눕고 싶다. 하지만 녀석은 또다시 나를 불러 세운다. 엄마가 필요하단다.

아니 이런 몰입감을 보여주다니! 그래 또 해보자~!! 충분히 연습할 시간은 아니었지만 급한 불 끌 정도의 공부는 된 거 같다. 공부를 마치고 나니 11시 30분쯤이 되었다.


"○○, 담부터는 이렇게 쫓기듯이 공부하지 말고 조금 더 여유 있게 공부해 보자~"

"네~"

녀석이 순딩 순딩한 맑은 목소리로 답한다!


너,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기분 좋은 기대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하지만 내일이면 또 둔탁한 단답형이 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기다리고 참아낼 거야.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오고 바람이 불더라도

언제나 너의 곁을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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